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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휴가
반찬걱정 조회수 : 574
작성일 : 2008-08-04 19:31:23
내 집 아니고는 도무지 잠을 못자는
보기보다 예민한 저. (평범,털털, 통통 사이즈라 암도 안믿지만)
군대에 있는 외아들 면회 한 번 안가본 게 걸려서 큰 맘을 먹었지요.
춘천 102보충대로 신병입소할 때도 터미널에서 바이바이한 무심한 엄마입니다.
그 때는 사실 만셀 불렀다니까요.
뒹굴뒹굴 어찌나 가는 날까지 징하던지....
전라도 광주에서 강원도 화천까지 주말에 다녀왔습니다.
주말이 제일 바쁜 제 직업상 이번 휴가 아니면 내년 5월 제대할 때까지 면회 못가거든요.
9월에 gop(철책 근무)들어가버리면 아예 면회가 안된다네요.
서울도 평생 몇 번 안가봤는데 강원도라니요.
울 남편도 젊은 날 양심수로 군대신 감옥살이를 한 사람이고, 제 결혼이 빨라서 군 면회에 대한 정보를 줄 사람이 없어요.
며칠을 고민하다가 결국 모성의 힘(이 말이 아주 중요합니다)을 믿고 준비를 했습니다.
사업이 바빠서 주부 휴직한 지 어언 십여년.
뭣부터 어떻게 해야하는지 머릿속이 하얗대요.
빛바랜 찬합, 보온병을 꺼내 씻다보니 정말 새삼스러워서 어색하기까지....
중부지방엔 비가 많이 온다기에 밤새 걱정하느라 자는 둥 마는 둥,
새벽 5시에 남편이랑 바리바리(압력솥까지)싸들고 집을 나섰습니다.
호남고속도로- 중부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 중앙고속도로로 계속 이동하면서
화천군 '와수리'라는 마을에 도착하니 오후 1시 30분이더군요.
휴가 피크까지 끼어서 더욱 정체되기도 했지만 제 생전 이리 긴 여행은 첨 해 본 것 같아요.
울 아들 좋아 죽고 못삽디다.
늘 그렇듯이 엄마 볼에 뽀뽀부터...
낮 12시에 와수리정류장에서 만나기로 했으니 얼마나 속이 탔겠어요.
셋이서 고깃집에 들어가 삼겹살 6인분 해치우고 냉면으로 가볍게 입가심한 후
본격적으로 잠잘 방을 구하러 다녔습니다.
비는 주룩주룩 오는데 문제가 붙었어요.
주말에는 미리 예약을 하지않으면 아예 방을 구할 수 없다는 것!
아들은 입이 바짝바짝 타는 눈치로 빗속을 뛰어다니고, 남편은 황당해서 어쩔 줄 모르는데
'모성의 힘'은 이때 발휘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들말로는 저는 pc방에서 밤을 보내도 되니 부모님은 춘천에서 주무시고 내일 아침 만나자네요.
'외박'이기때문에 이 마을 밖의 초소를 벗어나면 영창 간다더군요.
남편은 달리 도리가 없다는 표정인데 엄마인 저는 말도 안되지요.
아들 먹이려고 십년만에 도시락 싸왔는데, 더구나 아들이랑 손잡고 자야지 무슨....
"두 남자야, 걱정마. 여관 주인 쫓아내고 그 방이라도 잡아올게. 나 믿지?"
그 작은 동네를 좌악 훑어본 다음, 키 180이 다 된 멀대같은 두 남자를 재치고 153인 제가 들어간 곳은 '커피숍'이라고 써진 다방!
사정이야기를 하니까 (저 먼 전라도에서 여기꺼정 왔다는 것을 힘주어!) 어디다가 전화를 하시더니 방문제 개안하게 해결!
너무도 고마운지 그 곳에서 제일 비싼 마즙을 우리 두 남자 주저없이 시키더구만요. (한 잔에 6천원)
참고로 군부대 근처 가게들은 주말과 주중 가격이 완전히 다르네요.(삼겹도 1인분에 9천원)
여관방에 들어가서는 '모성의 힘' 2탄 발사!
식당 딸린 여관인데 어쩔 수 없었어요.
욕실에 앉아서 야외용 버너 불 피워 압력솥에 촌닭 백숙 만들고, 전복 6개 데치고,
가져간 한겨레 신문 방바닥에 깔고 멸치젖국 찐한 전라도 김치(물론 사왔지만) 이것 저것
열심히 부채질해주며 먹였죠.
잘 먹는 울아들 황홀하게 쳐다봤답니다.
밤에는 노래방에 갔습니다.
요즘 군대는 노래방 기계도 있다나요.
노래는 또 월매나 잘 하던지.
아빠랑 듀엣으로 윤도현의 '사랑two', '너를 보내고' 부르는데
크! 울 아들 바이브레이숀...저 넘어갔습니다.
아빠가 강산에의 '아웃사이더'를 샤우팅 창법으로 부르니 아들 왈,
"역쉬 아빠는 넘지 못할 산이야."
이 센스쟁이 아들말에 울 남편도 넘어갑니다.
갓난 애기일때,
항상 아들을 제가 끼고 잤습니다.
남편이 혹시 술 김에 그 무쇠같은 다리를 애기한테 턱 걸칠까봐서요.(취중에는 항상 제 배게도 가져가버리거든요)
토요일 밤도 그렇게 잤답니다.
아빠, 엄마. 아들....운전에 지친 남편이 먼저 떨어져버리니까 우리 둘이 밤새 얘기하느라고.
아침에는 "모성의 힘 3탄"
아들이 가장 좋아했던 - 그래서 여름내내 물고 살았던 비빔면 두 개를 끓였습니다.
이번에는 삼양 열무 비빔면입죠.
"너무 맛있어서 눈물이 나요. 이게 제일 먹고싶었어요."
물론 군대도 라면 있답니다.
근데 이렇게 차분히 제대로 끓여서, 전라도 김치 얹어가면서 먹을 수는 없대요.
헤어질 때 또다시 작별의 뽀뽀 잊지않은 우리 아들!
모처럼 행복했습니다.
정말 뽀땃한 휴가였지요.
20리터짜리 쓰레기 봉투에 ,
혹시 아들 손톱 엉망일까 손톱깎기까지 준비해 간 저를 보고 남편이 칭찬 대따 해주대요.
사실 준비는 제가 해갔지만 백숙, 라면 모두 '아들과 남편 일'이라는 것은 눈치들 채셨죠?
군대에서 의무대에 딱 한 번 갔대요. 변비에 걸려서.
1년이나 있으면서 의무 카드 없는 놈 처음 봤다고 신기해 하더랍니다.
"제가 워낙 황금변을 보걸랑요. 두께 5센티에 30센티 이상 긴 놈으로."
의무관 왈,
"그래 그래 . 니 똥 굵다."
공부는 시원찮았지만, 긍정적이고 분위기메이커인 울 아들과 함께 한 휴가,
광주 오는 길에 들른 아침고요수목원, 남이섬, 북한강....
우리나라 곳곳이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행복만땅한 이번 휴가, 평생 못잊을 것 같아요.
저보다 신나는 휴가 보낸 분 있으신가요?
IP : 121.179.xxx.132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돼지네
'08.8.4 8:36 PM (203.170.xxx.52)와우.. 읽기만 해도 행복이 뚝뚝 떨어지는 글입니다. 광주에서 춘천까지.. 여행은 목적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가는 길이 더 중요하다는데, 길도 좋으셨을 것이고 가서도 그리 재밌었는 데에다가 그 미팅 당사자가 아드님이라... 아마도 천금을 주어도 바꾸고 싶지 않으셨을 여행이겠습니다. 아드님 건강하게 잘 군대생활 마치고 오시기를 기원합니다. 제 아들도 언젠가는 그렇게 보내야 하는데. ㅋㅋ. 갑자기 먼 미래가 눈에 선하네요. ^^
2. 인천 아줌마
'08.8.5 6:18 AM (119.148.xxx.222)길고 긴 좋은 여행이셨네요. 우리 둘째도 와수리에 있었어요. 우린 첫 면회를 논둑에서 고기 구워 먹였지요.우리 아들도 gop에서 제대 하였답니다. 혹시 백골부대이신지?남자들만 군대얘기 하는게 하니네요. 아들들 면회간 얘기도 재미 있어요.
3. ..
'08.8.5 9:24 AM (221.154.xxx.144)끝까지 잘 읽었습니다.
모정의 힘을 맘껏 발휘하셨네요...ㅎ
정말 보기 좋아요.^^4. 반찬걱정
'08.8.5 1:16 PM (121.179.xxx.118)댓글 올려주신 님들 감사합니다.
인천님, 제 아들은 승리부대라는 것 같았어요.
미리 여관 예약하라고 , 안그러면 저처럼 낭패당할 수 있다고 정보 겸 올린 글이었어요.
빗속에서 보낸 아들과의 하룻밤,
지금 생각해도 스릴있었어요. 울 남편이 더 행복 무드를 즐기고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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