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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회군(심재철 빽도사건)에 대하여.............
번호 125290 글쓴이 이쁜달덩이 (scinn) 조회 732 누리 346 (351/5) 등록일 2008-6-22 20:05
(본글보다 1번 댓글 꼭~~한번 읽어보세요. 너무 좋습니다.)
우리 역사에는 늘 크고 작은 변절자나 반역자에 의해 망가저 온거 같다.
이완용이나 이승만이 박정희 전두환등이 그랬고
지금 맹박이나 뉴라이트 나부랑이도 그렇고........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잘못된 역사의 반복 만큼은
무슨 수를 써서든 막아야 한다.
이명박이 나이가 곧 70이다.
이넘은 어제 청계광장에서 빨갱이 운운하던 늙은이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점이 가장 무서운 점이고 경계해야 할점이다.
말로해서 될 넘이 아니란 말이다.
지금 그걸 mb는 보란듯이 증명하고 있다.
ps-여러분 서울역회군의 심재철이의 고향이 어딘줄 아세요?
광주입니다. 전라도 광주요.....하하하 정말 웃긴일입니다.
민주화를 홀로 후퇴시킨 심재철, 그 반대에 선 유시민(퍼옴)
프라하의 봄은 짧지만 강렬했습니다.
비록 찰나로 끝났지만 1968년의 체코의 봄.
그 순간 만큼은 체코슬로바키아의 국민 모두는
자유와 평등이란 이름 아래 ‘행복’의 꿈을 키워 갔습니다.
스탈린의 붉은 깃발을 앞세운 탱크의 거대한 포 아래 처참히 무너졌어도
드부체크는, 체코 국민들은, 프라하의 봄은 결코 무력에 굴복한 패배자의 이름이 아닌, 영원한 민주화와 자유의 상징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19년여 뒤인 1980년
아시아 동방의 작은 나라에도 여느 때처럼 봄이 왔습니다.
헌데 그 당시 서울에 찾아왔던 봄이란 녀석은 약간 이상했습니다.
극렬한 레드컴플렉스에 빠져 있던 한반도에,
폭압과 군부, 독재라는 녀석에 짓눌려
민주화의 ㅁ, 자유의 ㅈ자도 삐져나오기 힘들던 대한민국에,
1980년에 찾아온 서울의 봄은.. 일종의 돌연변이 였습니다.
하긴.. 국내 정세가 뒤숭숭하긴 했습니다.
희대의 독재자 박정희가 암살당했던 10.26사태가 발발했던 때가 바로 전년도였거든요.
자칭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쏜’ 김재규의 손에 의해 긴긴 독재는 막을 내리고, 그 삭막하던 대한민국에도.. 그 삭막하던 서울에도.. ‘어쩌면..’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슬슬 피어오르던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그 기대감은 따사로운 햇살의 봄바람을 타고 대학가를 중심으로 빠르게 꽃가루처럼 흩날려갑니다.
대학가의 열정적인 민주화 열망..
그 중심에 매파라고 불리던 대의원회 회장 유시민이 있었고,
비둘기파라고 불리던 서울대 총학생회장 심재철이 있었습니다.
자유에 대한 열망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서울대, 이화여대, 연세대, 고려대를 중심으로 서울부근의 대학생들은 피끓는 열기로 민주화를 목놓아 울부짖었고,
구테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화이란 인간은 비상계엄령을 선포하며 이에 대응합니다.
허나 이 같은 특단의 조치에도 그들의 열망은 사그라들 줄 몰랐고,
그 여세의 절정은 1980년 5월 15일로 이어집니다.
1980년 5월 15일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던 서울역 광장에 운집한 대학생들의 수는
무려 10만명이었습니다.
이들이 모인 목적은 오직 하나, 자유 였습니다.
‘전두환 사퇴’와 ‘비상계엄령 해제’를 외치던 그 커다란 에너지는
주위의 시민들조차 감동시키며 흡수시키기에 이르렀고
4.19혁명 이후 광복이래 최대 변혁이 올지도 모른다는 가슴벅찬 희열이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피어났습니다.
어떤 나라라도 국가발전의 필수요소로 혁명을 수반한다고 했습니다.
혁명이 바로 앞에 다가온 듯 했습니다.
그것도 그 어떤 정치적 배후 없이 오로지 대학생들의 힘에 의해, 그 젊은이들의 열정에 동화된 시민들의 힘에 의해서 말이죠.
이러한 모든 것들을 짚어볼 때도 1980년 5월 15일은 절정의 순간 이었고
결단의 순간 이었으며 역사의 순간 이었습니다.
돌이켜 보건대 그 날은 대한민국이 독재와 민주화의 경계선에 한발씩 담근 상태로 어느 한쪽 발만 디디면 정세는 완전히 기울어지는 형국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이 순간, 당시 대학생 지도부였던 매파 유시민과 비둘기파 심재철의 주장은 둘로 나뉩니다.
“솔직히 처음 예상보다 너무나 많은 수의 인원이 군집했다.
이많은 인원수를 통제할 방법이 사실상 전무하다.
이대로 계속 청와대까지 진군하다간 사분오열되어 오히려 더 큰 피해를 볼지 모른다. 일단 각 학교로 해산 뒤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 다시 진군하자”
심재철의 주장이었습니다.
“지금 이상태에서 해산을 명하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여기서 물러나면 모든게 끝난다. 이 많은 인원이 현재 여기서 복귀한다면 신군부는 어떤 보복행위를 할 지 모른다. 결단코 지금 이 자리에서 모든걸 끝내야 한다.”
유시민의 주장 이었습니다.
허나, ‘학생회장’ 유시민의 발언권은 상대적으로,
아니 절대적으로 ‘총학생회장’ 심재철의 발언권보다 파워가 약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 많은 인원을 통제하기엔 결국 어느 한 쪽으로 지도부 세력을 모을 수 밖에 없었고 자연스레 총학생회 회장 쪽으로 주도 분위기는 흘러갔습니다.
유시민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심재철은 서울역 광장에 운집한 수십만의 대학생들에게 각 학교로 복귀하길 명합니다. 이것이 한국 근현대사 역사상 가장 통탄할 순간으로 기억되는 서울역 회군 이었죠.
예상대로 학생들의 거센 반발이 일었지만 결국 그 많은 인파는 해산되고
뜻이 통하는 몇몇 무리들은 각 학교로 복귀 후에도 철야농성을 하며 시위를 계속 했으나, 서울역 광장의 그 어마어마했던 물결에 비해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낮은’ 목소리였습니다.
신군부.. 이때를 놓칠리가 없었습니다.
안그래도 눈엣가시였던 먹물 먹은 대학생들 처리에 골치아팠는데
만날 한데 모여 있어서 통제도 불가능하고 정말 어쩔 수 없이 계엄령만 확대하고 있던 찰나에 알아서 지 발로 해산해 주시니 가장 신바람 난 건 전두환 일당이었습니다.
1980년 5월 17일
자정을 기해 계엄령은 더욱더 확대되고 전국 대학교에 휴교령을 내립니다.
각 학교를 급습해 눈에 보이는 대학생이란 대학생은 모두 군홧발로 짓밟아 연행합니다. 지도부가 모여있던 이화여대 회의장을 급습해 학생대표들을 연행합니다.
그리고...............
1980년 5월 18일 광주는 고립됩니다.
배반의 역사..
거기에는 일신의 영달을 위해 민주주의 외면한 역사의 오점들이 있습니다.
서프라이즈, 조중동척살단님의 글
계엄령을 선포한 전두환은 군법정에서
문익환 이문영 예춘호, 고은, 김상현, 이신범, 이해찬, 조성우, 설훈, 송기원, 이석표씨 등에게 내란음모죄로 실형을 선고. 또 서남동, 김종완, 한승헌, 이해동, 김윤식, 한완상, 유인호, 송건호, 이호철, 이택돈, 김녹영, 김홍일(김대중 아들), 김옥두씨 등이 계엄법 위반혐의로 실형선고..(네이버 백과 펌-_-)
(뭉뚱그려 중형인데 김대중씨는 사형선고를 받았죠-_-)
이 재판에서...피고인 대부분이 자백내용을 부인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다리 저는건 박정희때 받은 고문때문이구요...전두환시절에는 김대중전 대통령 아들들도 제 아부지때문에 고문을 받았다는군요. 김대중전 대통령의 유일한 '흠'인 지나친 자식사랑도 이해가 좀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피고인들이 자신들의 자백내용을 전부 부인하는가운데...
여기서 서울역 철수의 주인공인 심재철씨가... 홀로 자백내용을 죄다 인정해버립니다.
--
그가 진술하는 도중 법정은 시끄러웠다. 그의 공소사실 인정이 가져올 엄청난 결과에 생각이 미치자 방청하고 있던 가족들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고 한다.
"너 미쳤어? 너 왜 그래?"라며 울부짖던 이는 이해찬 총리였다고 한다. 조성우씨도 그의 허위진술에 대해 포효했다. 그러나 김대중 전 대통령만은 "심 동지, 고생 많았지?"하며 그를 위로했다는 전언이다.
-
그 이후...민주화 운동관련자는 변변히 취직도 못하던 그시절에 관련자중에서도 아예 주인공급인 심재철씨는 초능력을 발휘하여 영어교사-문화방송 기자를 거쳐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됩니다. 유시민씨는 지금도 심재철씨가 그때 그 피해자들에게 사과해야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사건관련자들은 2003년에야 명예회복이 되고 김대중전 대통령은 임기가 끝난 2004년에 명예회복이 됩니다.
[출처] 최규석 - 백도씨|작성자 부스스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1&uid=125290
[1/6] 이쁜달덩이 (scinn) IP 218.149.1.x 작성일 2008년6월22일 20시12분
386이여 상기하라.. 통한의 서울역회군을
글쓴이: 송기현 조회수 : 17 08.06.18 09:59 http://cafe.daum.net/sgh591230/6w2C/55
78학번 송기현입니다.
386세대가 못 다한 책임을
우리 아이들에게 떠 넘기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글을 씁니다.
내 아이들이 촛불을 들고 목이 쉬도록 외치는 동안
우리는 과연 어디에 있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촛불시위 43여일
이제 그 동력은 점차 힘을 다해가고 지쳐가고 있습니다.
들불처럼 타오르던 촛불의 함성들도
장마철을 지나면서 그 밝음을 다할 수도 있습니다.
촛불이 지치기를 기대하고 노리면서
눈에는 산성을 치고 귓구멍에는 전봇대를 쑤셔넣고
안보이고 안들린다 주장하면서, 매일 매일 거짓말로 일관하며
느긋하게 시간이 가기를 기다리는 무리들에게
우리의 어여쁜 아들과 딸들의 마음을 송두리 채 내어줄 수는 없습니다.
우리 386세대는 이 땅의 민주화를 이룬 세대라고 말들 하지만
우리는 미완의, 초보수준의 수준 낮은 민주주의를 이뤄냈을 뿐입니다.
조중동의 선전질에 속아
배고픈 민주주의보다는 배불려 주겠다는 사기꾼을 지지함으로서
결국 작금의 현실을 만들어 낸 것도 우리 386세대입니다.
우리가 지지하지 않았다면 결코 이 정권은 탄생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 부모 세대가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죄과로
우리는 조중동과 뉴라이트라는 잡종들을 대면하고 살고 있습니다.
우리 386세대가 민자당-한나라당으로 이어지는
군사독재정권을 확실하게 단죄하지 못했기에
작금의 암울한 현실이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뿌리뽑지 못하면 자라난다는거..우리가 누구보다 잘알지 않습니까?
지난날 통한의 “서울역회군”처럼
또다시 땅을치며 후회하고 소주잔을 부여잡고 눈물흘리며
그날..바로 그날..끝장을 보아야 했다고...
먼저간 영령들에게
미안하다고, 정말 미안하다고..평생을 두고 후회하며 울어야 할일을
이제 다시는 만들지 맙시다.
이제 우리 386세대가 마지막으로
대한민국과 내 가족 내 아이들을 위해 일어설 때입니다.
PS :
아고라의 주역될 내 아들에게 ....
2004년 봄 노무현탄핵 당시 촛불을 들고 집회를 가며
아빠가 들려주었던 “서울역회군”이란 이야기가 생각나니?
아마 지금은 기억조차 못하겠지?
1980년 전두환 군사정권의 야욕에 맞서
유신철폐, 독재타도, 민주주의 쟁취를 외치던 당시의 젊은이들은
지금의 촛불처럼 서울역 시청앞을 십만명 학생들로 메우고
전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와 성원을 받고 있었다.
(아빠는 당시 대학방송국 새내기기자로 선배를 따라 얼떨결에 이화여대에서 열렸던 회의와
서울역 앞 버스 속에서 열렸던 마지막회의를
어깨너머로 참관했기에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10만 학우들이 운집한 서울역에서 멀지않은 효창공원에
공수부대가 도착하여 무력진압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 전달됐고
그 소식을 접한 시위 지도부는 긴급 회의를 진행했다.
“수많은 인원이 지금 여기서 학교로 복귀한다면 전두환 군사정권은 어떤 보복행위를 할 지 모른다.
결단코 지금 이 자리에서 모든 걸 끝내야 한다“는 유시민(서울대 대의원회의장)의 주장과
“우리의 주장은 전달됐으니 잠시 물러나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 다시 움직이자“는
심재철(서울대 총학생회장 - 현 한나라당 국회의원) 주장이 맞서다가
결국 심재철의 주장대로 “서울역회군”이 결정된다.
군사정권이 퇴진할 때까지는 어떠한 희생도 각오하며 결단코 물러설 수 없다던
대다수 학우들의 결의가 외면당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서울역에 모였던 10만의 학우들은
지도부의 지시대로 내일 아침 다시 만나자며
뿔뿔히 각 대학 캠퍼스로 흩어진다.
그리고 그 다음날 저녁 전두환 군사정권은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대학의 문을 걸어 잠그고,
지식인 학자 언론인 종교인등 민주지도자들을 구금 체포하고,
공수부대를 동원하여 수많은 인명을 무자비하게 살상하는
광주항쟁을 시작함으로서
전두환-노태우-김영삼으로 이어지는 군사정권의 기틀을 마련한다.
이게 바로 “서울역회군” 이다.
아빠가 살아온 50여년의 세월동안
후회와 마음 빚으로 남는 한가지를 꼽으라면
서슴없이 서울역회군을 칭할 수밖에 없다.
서울역 광장과 시청을 가득 메웠던 10만의 학우들 중 8-90% 이상은
공수부대원들과 일전을 벌이더라도
박정희 군사독재시절로 되돌아 갈수는 절대로 없다며
공수부대와 맞설 것을 주장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한줌도 못되는 지도부내의 회군파들로 인해
회군은 결정되었고
결국 광주의 수많은 인명이 살상되었고
암울한 군사독재가 계속되었고
다시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
그 얼마나 많은 인명이 희생되었고
최류탄 가스와 군홧발 속에서 얼마나 많은 통한의 눈물을 흘렸는지....
~~~~~~~~
정말 눈에서 피눈물이 납니다...
너무 가슴이 답답합니다..
어찌해야 할지..미치겠습니다..
[2/6] 이쁜달덩이 (scinn) IP 218.149.1.x 작성일 2008년6월22일 20시40분
<전략>
첫번째 기회는 80년 서울의 봄이었습니다.
79년 박정희의 죽음에 이어 박정희의 양자로 자처한 전두환 일당이
12.12 쿠데타를 저지르고 정권찬탈을 손아귀에 쥐기 직전인 80년 5월, 서울역에는
수십만의 대학생과 시민이 군부의 탐욕을 저지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학생들은 서울 각 대학에서 교정을 출발하여 서울역에 집결하였습니다.
서울역 광장은 지금은 주차장과 여러 시설물로 축소 되었지만 당시는 매우 넓었습니다.
광장은 수십만의 학생 시민으로 가득 찼습니다.
저는 생생히 기억합니다.
회현고가도로 위에서도 시민들이 차를 세우고 내려다 보며 박수치는 모습에서
곧 닥칠 군부독재의 종말을 꿈꾸며 가슴 벅찼습니다.
전경과의 충돌이 시작되었고 시청 쪽으로 버스가 불타고 있었고
서대문 쪽 고가 아래에서는 전경과 치열한 공방전이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대학 2년 생이었습니다.
오전에 캠퍼스를 출발하기 직전 교문 앞 집회에서
어떤 학우가 앞에 나와서 이런 말을 던졌습니다.
지금 우리가 나가면 피를 흘러야 할지 모른다, 제2의 4.19를 각오해야 한다,
그래도 나가겠는가, 깊이 생각하자고 물었습니다.
그때 모두가 한 목소리로 대답하였습니다.
그래 나가자, 나가서 피 흘리자 라고 답하였습니다.
모두는 아니라 해도 많은 젊은 우리는 목숨을 걸고 피를 흘릴 각오를 하였습니다.
서울역 앞에 모인 학생 시민들은 제2의 4.19를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상황은 갑자기 급전되었습니다.
당시 서울역 광장에 버스 한대가 있었는데 지도부는 버스 위에서 연설하고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그때 지도부 한 사람이 올라섰습니다.
저는 그 버스 바로 아래에 있었으므로 그의 표정 하나까지 기억합니다.
올라선 그 학우는 말하였습니다.
여러분 제가 누군지 아시죠, 저는 서울대 총학생회장입니다 라고 시작하였습니다.
이어서 효창운동장에 공수부대가 집결하였다고 어쩌고 하면서 내 결정을 따라라 하더니
교정으로 돌아감을 선언하였습니다. 바로 서울역 회군의 순간이었습니다.
여기저기서 반발의 목소리가 드세었지만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당시 서울대 총학생 회장은 심재철이었습니다.
그는 MBC 기자로 있다가 광주청문회에 불러 나와 당시의 상황에
대한 질문에 스스로 패장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패장답게 한나라당에 투항하였고
지난 3.12일 국치일에 탄핵가결 한 표를 던졌습니다.
반면에 같은 서울역 앞에 있었던 당시의 유시민, 이해찬은 온몸을 던져 저항하였습니다.
첫번째 기회는 5월의 봄이었습니다. 그리고 서울역 회군으로 기회를 스스로 내던져버렸습니다.
그것으로 끝장 났습니다. 많은 젊은이가 각오했던 제2의 4,19 피는 흘리지 않았지만,
그것을 심재철 비롯한 지도부는 두려웠겠지만,
곧바로 광주 5.17 선량한 시민들의 학살로 대신하였습니다.
내부역량의 부족, 역사와 상황인식의 안이함 그리고 어떤 단어와 변명을 붙여도,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부끄러운 순간이었고
이어서 대한민국은 길고 긴 혹한의 겨울 속으로 빠져 들어갔습니다. <후략>
http://www.hani.co.kr/section-012100001/2004/03/012100001200403151110001.html
[3/6] 조약돌 IP 58.143.182.x 작성일 2008년6월22일 20시49분
그때의 배신자 심재철이 아직도 숨쉬고 살아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심재철이가 서울역회군을 주장한 것 때문에 나쁜놈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문제는 그 이후에 심재철이가 살아온 인생을 보면....오직 배신이라고 밖에는 갔다 붙일 수 있는 말이 없습니다.
[4/6] 이쁜달덩이 (scinn) IP 218.149.1.x 작성일 2008년6월22일 20시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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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이쁜달덩이 (scinn) IP 218.149.1.x 작성일 2008년6월22일 21시00분
후일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심재철 씨는 그때의 상황을 “5월 15일 서울역 시위는 신군부의 여론 조작으로 시민들의 호응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우리는 퇴각을 결정했지만 그것은 결정적 과오였습니다. 그같은 결정적 오류가 광주에서의 대학살로 이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라고 1988년 11월30일 국회 광주특위 청문회 증언을 통해 말했다.
[6/6] 눈팅 IP 58.77.204.x 작성일 2008년6월22일 21시24분
개편이전의 자유게시판으로 열람만 가능합니다.
심재철서울역 빽도(회군)전말(펌)
여행갈래 조회수 : 1,011
작성일 : 2008-07-10 23:03:33
IP : 220.81.xxx.218
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ㅇ
'08.7.10 11:15 PM (125.186.xxx.132)그러게 말입니다. 유시민과 심재철의 고향이 바뀌었어야--;;
2. 음...
'08.7.10 11:27 PM (59.7.xxx.103)이게 레테에 올려졌다가 심스마일씨가 허위사실유포로 고소한다고 댓글 달았던거 같은데요.
심스마일 여기도 출동하시려나...3. 심스마일씨
'08.7.10 11:38 PM (82.225.xxx.150)광우병소도 살코기만 먹으면 광우병 안걸린다고 허위사실유포한거나 검찰에서 조사했음 하네요.
4. 비겁한넘.
'08.7.11 12:02 AM (210.123.xxx.190)그래서 그런 과거가 있기 때문에 더욱더 오버 하고 있군요. 가증스런넘. 4년뒤 보자. 반드시 역사의 죄를 물어야지.
5. ss
'08.7.11 12:29 AM (116.121.xxx.149)잊혀젔던 그 유명한 서울역 회군! 그 중앙에 심재철이라는 배신자가 있었군요
광주시민은 심재철이 동향이라는 사실에 땅을 치며통탄해야 할일이군요6. 쿠쿠리
'08.7.11 12:32 AM (125.184.xxx.192)매국노면 처단해봐.. 라고 깐죽거렸죠..
7. phua
'08.7.11 1:56 PM (218.52.xxx.104)또 말씀 드립니다. 4년 후 안양에 갈고 있고, 심재철이 국회의원 후보로
공천 되면 컴에 박아 뒀던 " 자랑스런 미국소고기 시식" 사진 들 구 유세장마다
쫓아 다니며 1인 시위 합니다.. 굳은 결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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