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데리고 오후에 집근처 호수가로 산책을 나오면
그곳에 마련된 벤치에 앉아 신문이며 책가지 등을 읽고 있는
할머니 한 분이 나와 있습니다.
그 앞을 지나칠 때마다 이제 15개월 된 아들녀석을
이뻐해 주시는 것이 계기가 되어 오늘은 벤치에 나란히 앉아
잠시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
할머니: 독일엔 어떻게 오게 되었수?
나: 전 목사인데 종교학을 공부하러 왔습니다.
할머니: 그럼 기독교에 대해 공부하실 생각이신가?
나: 아닙니다. 전 동양 종교쪽에 관심이 있습니다. 특히 노자.
할머니: 어... 그거 나도 즐겨 읽는다우. 내 책상 위에 항상 놓여져 있지.
1장이 아주 인상적이야.. "도라고 할 수 있는 도는 진정한 도가 아니다..."
나: (속으로 놀라고 있음)
할머니: 그건 그렇고, 그건 왜 공부하려는 게요?
나: 동양 종교에 대해 전반적으로 관심이 있기도 하지만, 그게 지금 한국에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는지도 같이 연구해보려구요. 지금 한국 교회(개신교)는
아주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거든요.
할머니: 그건 나도 잘 안다우. 특히 작년에 티비를 통해 많이 봤지(샘물교회 청년들
아프카니스탄에서 납치되었던 사건)..
나: 네.. 근데 더 심각한 건 교회 스스로 지들이 뭐가 문제인지를 모른다는 겁니다.
할머니: 그렇군요. 암튼 종교는 대단히 중요해요.. 독일이 통일되는 데 종교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지.. 좋은 결과가 있길 바라우. 당신을 알게 되어 무척 반가웠소.
나: 감사합니다. 또 뵙겠습니다.
(참고로 제가 살고 있는 곳은 라이프치히로 과거 구 동독에 속했던 곳입니다.
또 이곳에 있는 니콜라이 교회에서 독일 통일의 시발점이 되었던 '촛불 기도회'가 열렸었습니다.
이것은 니콜라이 교회 벽에 항상 걸려있는 당시의 사진.)
그리고 집에 돌아와 서울광장에서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이 집례한 미사가 있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또 이를 통해 많은 분들이 맘의 위로를 받고 새로운 용기를 얻었다는
고백을 들었습니다.
독일 속담에 '한쪽 눈엔 미소, 다른 눈엔 눈물'란 말이 있습니다.
오늘 서울의 소식은 한 편으론 저에게 역시 위로와 감동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론
죄책감과 자괴감으로 인한 참담함이기도 합니다.
위에서도 밝혔고, 아고라 여려 글에서도 밝힌 것처럼 저는 목사입니다.
소위 말하는 '(개)(독)' 목사입니다. 한 하나님을 믿는 두 집단이 한 가지 사건을 놓고
어쩜 이리도 한겨레와 좃선의 거리만큼이나 다를까요.
한쪽에서 '좌빨'이니 '사탄의 무리' 운운할 때, 다른 한 쪽에선 그냥 말없이 나타나
아픈 이들을 어루만져 주네요. 그래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오늘 미사를 주관하신 신부님께서는 이명박의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저 역시 촉구합니다.
하지만 그 전에, 제가 먼저 회개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여러분들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보겠습니다.
그리고 매일 기도하겠습니다.
촛불이 꺼지지 않길
우리 모두에게 어둠을 물리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시길
촛불을 밝히는 모든 이들에게 마음의 안식과 평화를 주시길
뜻이 하늘에서 이뤄진 것 같이
대한민국에서도 이뤄지길...
그리고 명바기가 돌이키지 않는 한
저는 차라리 '좌빨사탄'이 되어 쥐를 잡겠'읍'니다.
여러분,
미안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독일에서 '좌빨사탄' 올림.
===============================================================================
전 종교가 없는 사람이지만
어제 신부님의 "그간 많이 외로우셨죠?" 한마디에
설움이 복받쳐서 참 많이 울었습니다.
개편이전의 자유게시판으로 열람만 가능합니다.
산탄목사와 독일할머니의 대화(펌)
앤셜리 조회수 : 403
작성일 : 2008-07-01 10:23:52
IP : 59.7.xxx.186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HeyDay
'08.7.1 10:26 AM (121.140.xxx.113)어제 신부님의 "그간 많이 외로우셨죠?" 한마디에
설움이 복받쳐서 참 많이 울었습니다.
---> 저도 그랬어요.. 너무 울었습니다...2. 인천한라봉
'08.7.1 10:44 AM (219.254.xxx.89)전 어제 미사 못봤는데...ㅠㅠ 너무 감동적이었겠군요..
3. 조중동아웃.
'08.7.1 10:54 AM (118.45.xxx.153)저두.....설움이...막 북받쳐서..눈물이..그치질 않았어여...ㅡㅡ
4. 서글퍼요
'08.7.1 11:09 AM (124.63.xxx.18)2008년도에 이런 지도자를 갖게 된 우리 모습이 너무 슬프고 억울해서 저도 울었습니다..
어쩌다가 우리가 이런 지경에 빠지게 되었는지..,.최악입니다. 최악의 상황이니까
더 밑으로 떨어질 곳도 없고 우린 올라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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