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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책을 많이 읽게 해주세요

바램 조회수 : 1,485
작성일 : 2007-11-10 11:00:48

안녕하세요? 오래전부터 82cook에 가입해서 눈팅만 열심히 해온 회원입니다.
몇개월 전부터 학원에서 영어강사를 하고 있는데, 아이들을 보면서 느낀 점이 많아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저는 종합학원에서 근무하고 있는데, 대상은 예비중1부터 중3까지예요. 보통 수업이
5시 30분부터 10시 15분까지 연이어 있고, 중간에 애들에게 8시 10분부터 30분까지 저녁을
사 먹던지 하라고 쉬는 시간을 줍니다. 보통 맞벌이를 하셔서 어머니들이라서 바쁘시고,
학원까지 도시락을 싸갖고  다니기도 뭣해서인지 아이들은 챙겨먹는 경우에 과자같은걸 먹고
대부분 굶곤 해요.
다 학원근처에 살아도 20분 동안 집에 밥먹으러 갔다오는게 귀찮아서 가질 않죠.

시험기간에 들어가기 한달전부터는 토요일/일요일도 모두 나와서 주요과목 외에 암기과목을
공부하느라 한달 내내 학원에 나오고, 시험기간이 아닐때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엔
학교에 갔다가 오후엔 무조건 학원에 오죠. 학원이 끝나고나서 집에 가서 씻고 자면 하루 끝.

전 아이들을 보면서 참 안타깝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때는 세상을 아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느끼고, 스스로 생각하면서 자아를 만들어가야하는 시기잖아요. 그런데
학교-학원의 끝없이 이어지는 이런 사이클속에서 아이들이 과연 것을 할 수 있는 틈이 있을까
싶어서요. 물론 애들은 틈틈히 TV를 보고, 컴퓨터 오락도 합니다. 하지만 그건 아이들에게
일방적이고 순간적인 흥미유발일 뿐이지, 그런걸로 아이들안에 가치관이나 자기가 되고싶고
하고싶은 일에 대한 꿈이 생기는 일은 많지 않으니까요.

얼마전에 학원아이와 얘길하다가 '찰리와 초콜릿 공장'얘기가 나왔어요. 아시다시피 영화로
만들어져서 인기를 끌었는데, 원작은 미국에서 아주 유명한 어린이 동화죠. 제가 한번 책으로
읽어보라고, 아주 재밌다고 했더니 애들이 엑-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책 읽는거 싫어요. 욜리
지루해요.'이렇게 말하더라구요. 그 말을 들으며 조금 맥이 풀렸습니다.

인터넷이 세상을 지배하고, 모든 정보가 초고속으로 소통되고 있는 정보사회에 살고있는
아이들은 점점 더 참을성이 없어지는것 같습니다. 스스로 노력해서 책을  읽고, 사고하고, 탄탄한
사고구조와 가치관을 만드는 노력이 고리타분하고 지루하게 느껴지는거죠. 그냥 TV나
광고에서 보여주는 '외모 지상주의, 물질 만능주의'같은 것을 저도 모르게 가치관으로 삼고있죠.

그러면서 애들은 점점 더 손쉽게 얻으려고만 하고 노력하고 싶어하질 않아요. 그걸 학원에서 공부하는 애들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성실하게 하는 학생도 있지만, 태반이 선생님이 제시하는 자료
조차도 주어담으려는 의지가 없어요. 본인이 하고싶어서도 아니고, 왜 해야하는지도 모르는채
그냥 해야된다고 하니까 수동적으로 학원에 오고, 수업시간에 앉아있는거예요. 집중을 하지않고
붕 떠있는 채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도 많구요.
또 점점 더 다른 사람에 대한 진지함이나 예절도 없어집니다. 화를 벌컥벌컥 내고, 말도 함부로 하구요.
이건 제가 가르치는 입장에 있어서 편견을 갖고 바라보는거라 생각될지도 모르지만, 확실히 저희 때보다
아이들의 성향이 점점 더 그렇게 가고 있는것 같아요.
깊게 생각하고 싶어하질 않아하고, 외적인 것에 관심이 많으며, 반항적이고 허무주의적이 되는거요.
어른들이 알고 있는 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영악해지되, 타인에 대한 따스한 감정이나 자기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 같은 개념자체에 대해 무감각해지는 것 같아요.

저는 중고등학교때 학원에 다니지 않고 혼자 공부를 했어요. 영어같은 경우엔 교과서 시험 준비를 할때면
자습서를 붙잡고 2일에 나누어 혼자 공부해서 시험을 봤고, 아시다시피 내신같은 경우는 혼자 준비해도
제대로만하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잖아요.
저희 학원에선 한달전부터 애들 내신을 챙겨줍니다. 다른 학원은 중등부가 계속 교과서로만 수업하고 또
시험기간에도 교과서 다시 재복습을 해줘서, 정말 완벽하게 내.신.만 해주는 곳이 있는데 그건 애들에게
도움도 되지 않고 애들도 질려해서, 저는 평소엔 골고루 듣기, 읽기를 해주다가 시험기간이 되면 그때
내신체제로 가요.
매일 하루에 1시간에서 2시간씩 한달 내내 3단원을 설명해주고, 단어숙제를 시키고, 문제풀이를 시킵니다.
하는애들은 해서 성적을 잘 받지만, 안하는 아이들은 그냥 무기력하게 수업시간을 때웁니다. 설득도 하고
혼내지만 본인이 의지가 없는걸 어쩌겠어요. 그리고 그런 아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많습니다.

그애들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당장에 하는 공부보다도, 책을 많이 읽고 생각할 수 있다면,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이고, 내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긴 삶이 있고, 그 안에서 내가 어떻게 미래를 준비하고,
어떤 것을 하고싶은지에 대해 알 수 있다면, 그렇다면 이렇게 무기력하게 대강대강 시간을 떼우면서
청소년기를 보내지 않아도 될텐데- 하고 말입니다.

이젠 더이상 명문대가 앞으로의 삶을 보장해주는 시대가 아니잖아요. 물론 명문대에 갈 수 있을정도의
재목이라면, 더욱이나 그것이 끊임없는 주변의 강요나 기대때문이 아니라 본인의 의지와 노력이라면
그 아이는 어디가서든 잘 살아갈테지만요. 앞으로 다가올 시대는, 창의력, 적극성, 어떤 프로젝트를 만들어서
그것을 실행해가고, 사람들의 감성을 마케팅하는 일이 가장 큰 고부가가치를 창조하는 시대일텐데
학교 교육과 학원의 현실은 여전히 성장위주의 산업사회를 위한 수동적인 아이들을 키워내는 것 같아서
마음이 답답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더 넓은 창을 통해 세상을 보고, 자기 삶과 자기가 살아갈 세상에 대해서 더 진지한
태도를 가질 수 있도록, 청소년기를 '억압과 타율'이 아니라 '자립과 자율'로 살아나가야 한다는 그
'인식'자체를 가질 수 있도록, 책을 많이 읽게 했으면 좋겠어요.
소설 뿐 아니라, 사회학 관련 책이요. 세상이 지금 어떻게 흐르고 있고, 앞으로 다가올 세상을 잘
살아가기 위해 우리 아이들이 어떤 준비를 해야할지요.
아이들이 이런책을 읽기가 버겁다면 어머님들이 읽으시고, 아이들에게 설명해주셔도 좋을것 같구요.

아이들의 눈에서 더 많은 이상과 희망의 반짝임을 보았으면 하는 바램에서 주저리주저리 글을 풀었습니다.






IP : 211.178.xxx.210
9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좋은글
    '07.11.10 11:09 AM (61.66.xxx.98)

    감사해요.
    동의 하고요.

    진정으로 아이들과 미래를 생각하시는 분 같아요.
    원글님 같은 분이 학교 교사가 되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 2. ..
    '07.11.10 11:20 AM (221.154.xxx.249)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 3. ....
    '07.11.10 11:27 AM (58.233.xxx.85)

    참 좋으신님 .맞는 말씀입니다.그런데 말초적이고 자극적인 유혹(컴게임.보여지기가전부인메스컴)이 너무 많아 쉬움이 아니더군요 .큰아이때는 그런것들이 그나마 보편화가 아니었던지라
    엄마인 제가 책껴안고 살때 큰아이도 보며 따라 할것이라고는 그런것이 쉬워 아주 쉽게 접하던게 책이었는데 ...

    작은녀석때 컴이 일상화가 되버려 그기회를 놓쳣습니다 .
    다행이 아이가 무기력이라든지는 아니지만 본인도 큰아이처럼 어릴때 책많이 접하지못한것을
    후회하며 (어휘력이라든지 이해력 문장력등등에서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 4. ..
    '07.11.10 11:53 AM (222.232.xxx.139)

    초등 1학년이지만, 좋은 글 감사합니다. ^^

  • 5. 정말
    '07.11.10 12:14 PM (211.210.xxx.71)

    좋은 말씀이세요
    그리고 어머니들에게 부탁하고 싶은거 제발 학습만화 좀 읽히지 말았으면 해요
    아이들이 그거 읽느라고 정말 책은 안 봅니다 우우

  • 6. ..
    '07.11.10 2:38 PM (58.121.xxx.125)

    정말 좋은 말씀입니다.. 저를 돌아보게 하네요. 감사합니다.

  • 7. 깊이
    '07.11.10 4:50 PM (116.122.xxx.94)

    마음에 새깁니다^^

  • 8. 이니스프리
    '07.11.10 7:05 PM (125.136.xxx.212)

    동감합니다

    전 고 2때까지 시험기간이어도 안본 책이 있으면 그것 보느라 날샐 정도로 책을 좋아했는데
    그덕에 국어는 공부 안하고도 항상 점수가 잘 나왔고
    주관식 문제의 오류에 대해 국어 선생님과 토론할 정도였죠
    영어도 따로 공부 안하고
    쉬는 시간에 여러 지문을 뜻 짐작해가며 읽는 것이 전부였는데
    시험 볼때면...읽어보아 자연스러운 것이 답이라고 생각하면 다 맞더군요

    역사나 사회,문화 등등...책 일읽으면서 얻은 간접 지식이
    학교에서 배운 것보다는 훨씬 많았다고 생각하구요

    제 아이도 그렇게 키우고 싶습니다만

    요새같으면 그렇게 했다간...어떤 결과일지 잘 상상이 안됩니다

  • 9. 아.
    '07.11.11 2:32 PM (122.34.xxx.3)

    정말 좋은 말씀이세요.
    그 귀한 시간들이 오직 성적만을 위해 타율과 강제로 채워지는 현실에서
    어떻게 주체적이고 열정적인 사람이 나올수 있겠어요...
    주위 환경이 점점 더 삭막해지고 있는데
    우리 애만 그렇게 키울 수 있을지 자신이 점점 없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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