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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에서 용 나온 얘기

개천 조회수 : 1,987
작성일 : 2007-06-18 01:50:08

아버지라는 사람은 요즘 보기 드물게 문맹. 작은 철물점을 운영하면서 점포는 아내에게 맡기고 자신은 일반 가옥의 보개수하는 일에 종사. 각종 연장이 든 커다란 가방을 오토바이에 싣고 돌아다니는 모습이 자주 눈에 뜨였다.

무쇠처럼 강인했다. 자정이 넘었는데도 미장이 일을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고 한다. 이튿날 새벽에는 다른 곳 일을 또 해야 했으니까. 그를 신뢰하는 사람이 많아서 그에게는 늘 일이 줄지 않았다.
철물점에 달린 방에서 온 식구가 기거. 아들이 둘이었다. 자신은 일자무식이고, 건축 일을 하면서도 자식 공부시키는 데는 누구보다도 열심이었다. 원어민 선생을 그 가겟방으로 초빙하여 영어를 꾸준히 가르쳤다고 한다.

아들이 뛰어났던 모양이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는데, ㄷ외고에 합격. 그 중학교 졸업생 중에서 그해 단 한 명만 합격했다고 한다. 고생한 보람이 있다며 아버지는 기뻐하고.

기쁜 마음에 아들을 뒤에 싣고 오토바이를 달려 아들이 다니게 될 고등학교에 같이 가보았다. 학교에 도착하여 내려보니 자신은 괜찮은데 아들은 동태가 되어 있었다. 한겨울에 오토바이 뒷자리에 타고 1시간 가량 달렸으니 오죽했으랴. 아들은 꽁꽁 얼어 땅에 제대로 내려서지도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난감하더란다. 집이 멀었으므로 버스를 태워 통학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고, 그래서 오토바이에 태워 아침마다 학교에 보낼 작정이었는데, 아이가 동태가 되어 있는 꼴을 보고는 다시 못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비오는 날이나 눈 오늘 날엔 또 어떻게 데려다줄까 막막했다고 한다.

문맹이던 이 아버지 그날부터 한글을 배우기 시작. 목표는 운전면허 취득. 그날부터는 일도 맡지 않았단다. 해 저무는 줄도 모르고 밤이 지나가는 줄도 모르며 뼈가 부서지도록 일하던 사람이 집안에 틀어박혀 일절 밖에 나오지 않았다고.

결국 운전면허를 따더니 무쏘라는 자동차를 덜컥 샀단다. 오로지 아들 통학 때문에.
세 해 뒤 외고 졸업하기 전 아들은 들어가기 어려운 학교라고 소문난 학교 가운데 하나에 합격. 전공은 의학. 지금 군의관으로 근무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뒤늦게 글을 깨우친 아버지라는 사람, 운전면허증 땄으면 됐지, 그 바람에 공부에 맛이 들었단다. 검정고시를 연파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예전처럼 죽어라 일하지 않고 슬렁슬렁 일하면서, 요즘엔 오토바이 뒷자리에 책이 한두 권씩은 꼭 올려져 있다는 얘기.
IP : 124.63.xxx.31
9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como
    '07.6.18 5:47 AM (59.27.xxx.68)

    아들에게 보상바라고 공부시키는것은 아니지만, 돈벌어다 집에 보태주고 장가가지 않은 이상 ,대학졸업 아니 인턴같은 어려운 시기에 연애해서 결혼이라도 하면, 없다는 이유하나만으로 며느리한테 대접못받고 와이프등쌀에 부모와 거리가 멀어져 부모가 내쳐지는 현실이 너무 슬프네요.....개천용 .....부모에게는 뿌듯한 존재이지만 결혼할 와이프에게 있어선 반갑지 않은 존재인거 같아요.

  • 2. 소문에
    '07.6.18 8:12 AM (211.104.xxx.175)

    개천이 말랐다던데......ㅠㅠ

  • 3. 잠오나공주
    '07.6.18 9:07 AM (59.5.xxx.41)

    실화인가요?
    무지 감동적이예요...
    아버지의 저 무한한 사랑...
    게다가 아버지 공부를 시작하시기까지..

  • 4. .....
    '07.6.18 9:39 AM (210.94.xxx.51)

    저렇게 열심히 사는 분이라면 아들에게 기대지는 않을 거 같은데요..
    개천용의 최대단점이 부모님이 아들에게 의지하는건데, 그렇지 않으면 괜찮죠..

  • 5. ....
    '07.6.18 9:50 AM (211.216.xxx.126)

    글쎄요..
    저경우는 개천이 아닐것도 같은데....
    (전 개천의 의미를 단순히 경제적인거나 부모님 학벌로만 평가하고 싶지 않아요)
    개천은 아버지중 한명은 생업을 포기하였다든지....
    아니면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학원에 보낼 형편이 안된다던지 그런거 아닐까요???

    저분은 학업에 필요한 경제적 지원은 누구보다도 많이 하셨는데요...

  • 6. ....
    '07.6.18 9:52 AM (211.216.xxx.126)

    오따가 생겼네요. 아버지나 어머니중

  • 7. 스마일
    '07.6.18 1:15 PM (222.238.xxx.3)

     

    개천이 그냥 개천이 아니고

    맑고 깊은 개천이네요

  • 8. 감동
    '07.6.19 2:46 AM (220.124.xxx.30)

    감동적이네요.
    진짜 윗님 말씀대로 맑고 깊은 개천..

    돈 있다고 많이 배웠다고 개천이 아닌가요?
    저도 저 경우는 100% 개천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분 같은 아버지 밑에서 보고 자란 아들의 경우 참 반듯할 것 같은데요.
    아무리 돈이 없어도 마음으로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라면 또 그 부모 밑의 자식이라면 까잇거 생활비 좀 더 드려도 행복할 것 같네요.
    세상에 돈도 인품도 꽝인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요...

  • 9. 감동
    '07.6.19 2:48 AM (220.124.xxx.30)

    근데 댓글 보니,, 바로 저분 같은 아버지가 저희 아빠네요
    힘들게 고생하고 자식만 바라보고 이제 붓글씨도 배우고 하고 싶다던 아빠........

    우리 아빠가 맑고 깊은 개천이었는지, 몰랐네요.
    새삼 원글님께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살아야겠어요.
    우리아빠처럼만 산다면, 성공한 인생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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