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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

며늘 조회수 : 1,870
작성일 : 2007-05-07 00:18:54
한때는 시어머니를 싫어한 적이 있어죠.
툭툭 내뱉는 말투, 무뚝뚝한 성격, 나와 맞지 않는 여러가지 생각과 가치관...
휴일 아침부터 전화하셔서 나들이 가자고 하시고, 시댁행사에 며느리 대동하고 가시는거 좋아하시고,
하나부터 얘기하자면 밤을 셀수 있을정도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더랬습니다.

아기를 낳고, 내가 엄마가되고, 나이를 조금더 먹어가니..어쩌면 제가 어머님께 동화가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좀 더 마음을 열고 이제껏의 자취를 돌아보니 참으로 철없고 속좁은 며느리였단것도 알게되었구요.

오늘, 어버이날을 기념하여 시부모님을 모시고 근교로 나가 저녁을 대접하려고 했어요.
어머님은 얼마전 위수술을 하셔서 따로 죽을 싸가지고 가셨구요.
딸아이 때문에 다른사람들이 편하게 식사하질 못하는것 같아 데리고 나가 돌아다니다보니 어느덧 어머님께서 나오셔서 당신은 식사를 마쳤노라고 어서 들어가 먹으라고 하시더군요.
식사가 거의 끝나갈때쯤 계산을 하려고 보니 벌써 어머님께서 계산을 하신거에요.
어버이날이라 저희가 대접해드리려고 했는데 어머님께서 선수를 치셨지요.

용돈이 담긴 수줍은 봉투도 완강히 마다하셨어요.
수술비보태느라 힘들었을텐데 마음만 받겠다시며 ....
그 봉투는 카네이션 꽃바구니 밑에 어머님 모르게 얌전히 놓여져 있네요...

집에 다녀갈때마다 이런저런 먹거리들, 잡다한 물품들 너무 많이 챙겨주시는 분이지요.
시아버님 앞에서 제 딸아이 억지로 이쁜짓 시켜 용돈타게 하시는 분이구요.
때론 아들내외 숨 좀 트라고 손주도 며칠씩 봐주시는 분이랍니다.
표현이 인색한대신 속정이 무한한분이시구요.
생각이 깊고 현명하며 공정하신 분이십니다..
평소에 굉장히 알뜰하시고 십원한장 허투루 쓰지 않으시지만 자식들이나 손주에겐 참으로 아낌없는분.
아는것도 일부러 모르는듯 여쭤보면 신이나서 대답해주시는,,때론 귀여우신 우리어머님..

신혼때는 시댁가는것 스트레스고 어머님과 같이 있으면 서먹하고 불편했는데,
지금은 시댁가면 집에 오기가 싫어요.^^
오히려 신랑이 빨리가자고 하면 저는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더 있다가 옵니다.
너무 편하고, 어머님과 이런저런 얘기하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겠어요.
가끔 안마도 해드리고 고스톱도 치고요.^^
어머님과 함께있는 시간이 참 즐겁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어머님께서 돌아가시면 얼마나 허전하고 가슴아플까하는 생각에 가끔 몰래 눈물을 흘립니다. 모쪼록 건강하게 오래오래사셨으면 좋겠어요.
결혼 6년만에 제가 어머님을 참으로 좋아하게 되었나봐요.
이세상 어떤 시어머님과도 바꾸고 싶지 않습니다.

다음주에 서울에 있는 병원에 검사받으시러 가시는데 또 모시고 가려구요.
신랑한테 차 놓고 가라고 해서 어머님 저 딸아이 이렇게 셋이 바람도 쐴겸 다녀올거에요,
저번에 병원 모시고 갔다오는길에 코엑스 아쿠아리움에 들러서 구경시켜드렸는데 너무 좋아하셨거든요.
(아이고, 이 많은 물을 어떻게 가지고 왔을까? 어머나 저 상어좀 봐라, 얘,, 63빌딩 수족관은 댈게 아니구나..ㅎㅎㅎ)

가끔,,,아주 가~끔...시어머님다운 발언을 하실때도 있지만,뭐, 저라고 다 마음에 드시겠습니까..

아,,쓰고보니 두서가 없네요. 그냥 오래전부터 누구한테라도 제 어머님 얘길 하고 싶었어요.
좋은밤 되세요.



IP : 222.98.xxx.247
9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07.5.7 12:29 AM (61.66.xxx.98)

    저도 시어머님 자랑 하고 싶을 때가 많아요.
    염장 지른다고 그럴까봐 꾹 참지요.
    여기서 이런저런 이상한 시댁이야기 보다보면
    우리 시어머님은 맨날 업고 다녀야겠다란 생각이 들 정도지요.
    그리고 자꾸 시어머님께서 잘해주시는거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고
    고마운 마음을 잊지말자고 되뇌입니다.
    (그런이야기 자꾸 올라오쟎아요.잘해주는거 몰라주고 당연하게만 생각한다고...
    제가 그런 사람이 될까 조심스러워요.)

    원글님 시어머님도 저의 시어머님도 오래오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원글님도 좋은밤 되세요.

    뱀발:
    밑에 82보면서 결혼하기 겁나신다는 분,
    사실 잘 살아가는 분들도 많으실겁니다.
    다만 이런게시판에 올리기 쑥쓰러워 그냥 지나치는 경우도 많을 거예요.
    불행한 결혼이 전부는 아니라는거....

  • 2. 며늘
    '07.5.7 12:50 AM (222.98.xxx.247)

    에고, 저도 글 써놓고 아래 보니 결혼하기 겁난다라는 글이 있네요.
    괜히 돌맞는거 아닌가 모르겠어요.^^;;

  • 3. 아뇨
    '07.5.7 3:10 AM (219.240.xxx.122)

    이런 글도 자꾸 써주세요.
    더더 써주세요~~

  • 4. ...
    '07.5.7 6:50 AM (122.43.xxx.75)

    아무 관련 없는 제가.. 다... 고맙 습니다.
    님의 마음 씀씀이가... 시 어머니 마음도..

  • 5. ^^
    '07.5.7 8:36 AM (61.83.xxx.35)

    글쓴님의 착한 마음 보고갑니다
    복 받으실 겁니다.

  • 6. 정말
    '07.5.7 8:46 AM (125.241.xxx.98)

    좋으신 고부간이네요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니
    저는 어버니날도 싫습니다
    보기도 싫으니
    이일을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씁니다

  • 7. 행복해
    '07.5.7 9:01 AM (124.55.xxx.196)

    보이고 좋아보입니다, 결혼6년만에 더불어사는지혜를 터득하셨다니 굉장히 현명하신분같습니다

    일방적인관계는없기에 두 분이서로 얼마나 노력하셨는지 미루어짐작해봅니다

    저는 님이걸린 시간두 배는걸린것같은데,저는 시댁가면 더있다올려고 미적거리고
    남편은 빨리가자고 보채고 ㅋㅋㅋ

  • 8. 꽃을 던지나이다..
    '07.5.7 12:55 PM (121.141.xxx.113)

    예쁘고 행복한 글인데요.. 많이 써주세요.. 보는 저도 정말 기분이 좋아집니다.

  • 9. ...
    '07.5.7 1:53 PM (125.177.xxx.21)

    저도 한다고 해드렸지만 병으로 누워 잇는분 생각할때마다 맛있는거 먹을때마다 더 해드릴걸 그래요

    근데 시부모님이 좋으니 형제들이 속썩이는 건 뭔지..

    시집쪽은 아주 편할순 없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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