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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엄마들에 관한 몇 가지 단상
아이가 초등 2학년이다.
학기초에 아이가 임원에 선출되고 학부모 총회가 열린 후 얼결에 반대표가 되었다.
직업상 알고 지내는 몇 선배 엄마들은 그 자리가 얼마나 힘든 자리인지, 잘 해도 못 해도 얼마나
비난 아닌 비난을 듣는 자리인지 이야기해 주곤 했다. 그래서.. 그런가보다 했다.
사실 난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도 또 초등 1학년일 때도 엄마들과 큰 교류 없이 지내왔다. 가장 큰 이유는 비록 프리랜서지만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엄마들 만날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했다는 점에도 있지만 동네 엄마들과 집단을 형성하여 사귀는 것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것에도 있었다.
교육이나 이런 건 내가 평소에 생각하던 것들 -아이가 자율성을 갖도록 도와 주는 것, 아름답고 소중하고 배려를 실천할 수 있게끔 해주는 다양한 책들을 읽게 도와 주는 것, 그 책들에 관해 함께 이야기하는 것, 아이를 믿고 이끌어 주되 강요하지 말 것-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었지 이 나이 또래엔 이것, 저 나이 또래엔 저것을 해야 한다든지 하는 얘기나, 훌륭한 성과를 내는 여러 학습 프로그램들에 관한 정보(?)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기특하게도 아이가 두각을 나타내어 이런 나의 자만(?)이 계속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년에 가끔 반 엄마들이 모여 차를 마시거나 할 때는 혹시 마음에 맞는 엄마들이 있을까 기대를 갖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모임 전체의 분위기는 따뜻함과 열림과는 거리가 멀었다. 웃고 있어도 모임 속에 흐르는 묘한 경쟁심과 경계심은 계속 되었다. 그 속에서 나 또한 사람들에게 나를 열지 못했던 것 같다.
이번에 일을 맡게 되면서 엄마들을 새로 만났다. 다행히 엄마들이 처음부터 편안하고 느슨하게 서로를 대했다. 그래서 예전에 없이 엄마들과 적극적으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런 생각은 이런 세계(?)를 전면적으로 접하게 된 초보자인 나에게는 너무나도 순진한 것이었다.
새로운 관계들이 연속으로 생겨났다. 같은 반 임원 엄마들, 다른 반 대표 엄마들, 여러 학년의 대표들을 알게 되면서 모임도, 의논할 것들도 많아졌다. 학교와 관련된 많은 일들, 평가들, 계획들은 엄마들 사이에서 왜곡되거나 손쉽게 비난되기 일쑤였고 갑자기 너무나 많은 것들을 생각해야 하는 머릿속은 너무 복잡해졌다.
이제는 관계들이 편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각각의 사람들은 비슷한 구석도 있지만 모두 다르고 또 나와도 다르기 때문이다. 작은 것에도 자기에게 어떤 부분에서 손해가 날지 생각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는 눈씻고 찾아 볼 수도 없이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이 엄마들 중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소수인가? 몇몇의 예의없는 사람들이 문제를 일으킨 것인가? 학교 분위기에 따라 다른 것인가? 아니면 요즘 초등 엄마들의 과열 경쟁과 교육열이 이런 현상을 불러온 것인가?
그런데 이 세계에 초보인 나는 명확한 답을 내리기가 어렵다. 다만
엄마들의 세계와 엄마들의 집단화에 대해 좀더 생각해 보고 싶다는 것. 그리고
작은 일에 상처 받고 오랫동안 되씹는 이 끔찍한(?) 성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것.
마지막으로 사회와 세계에 대해 아주 본질적으로 탐구하려 했던 젊은 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돼지책이나 뜨개질 할머니와 같은 그림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며 하루하루의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 어떤 진실의 끈을 놓지 않으려 끊임없이 성찰하려고 노력하는 그런 엄마를 만나고 싶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 엄마를 만날 수 있을까? 내가 너무 큰 기대를 하고 있는 걸까? 그런데 이런 갈증은 해소가 되지 않는다. 죽을 때까지 계속되지 않을까 싶다.
1. 저도
'07.4.20 4:08 AM (220.72.xxx.71)초등 2학년 아이가 있습니다.
제가 유달리 운이 좋은 것인지 제 주변엔 정말 훌륭한 엄마들이 꽤 있거든요.
제 아이는 두각을 나타내는 아이도 아니건만 저도 원글님만한 자만(?)으로 아이를 키우는 겁없는 엄마지요. 그래서 친한 엄마들은 종종 도대체 뭘 믿고 그러냐고 할 때가 많습니다. ^^
친구 엄마중에 사교육에 정통해서 아이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끌어가는 엄마도 있습니다. 저와는 다른 교육관을 가지고 있지만 그 분 존경스럽답니다. 오로지 아이한테 올인한다고 비난하는 엄마들도 있지만 그렇게 정성을 쏟는다는 것 아무나 하는 거 아니거든요. 그리고 인성에 관한 교육마저도 확실하게 시키시는 분이기도 하고요. 서로 다른 교육관을 가졌다는 것이 말이 안통하거나 마음에 안 맞는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타인에 대한 배려없음은 단지 초등 엄마들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뭐 그렇게 따지면 세상 남자들 중에 배려할 줄 아는 남자는 과연 몇이나 되던가요? ㅋㅋ) 조금 더 마음을 여시고 관계를 만들어 나가시면 분명히 좋은 엄마들이 많이 눈에 보이실거에요. ^^ 대부분 나서지는 않는 분들이라 쉽게 찾기 어려운건 맞지만요. ㅎㅎ
그리고 학교 분위기, 반분위기는 결국 어떤 엄마들이 만드느냐에 달려있는 것 아닐까요? 작년에 우리아이 반은 다행히 저같은 엄마들이 많다보니 그런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어서 1년 참 편하게 보냈답니다. 2학년은 아직 저는 반대표도 아니고 모임도 안 나가봐서 모르겠지만 일단 작년에 형성된 관계들이 많이 힘이 되어주고 있네요.
어디나 말많은 사람, 예의없는 사람들은 있는 법입니다. 또 반면에 안 그런 사람들도 꼭 있고요. ^^ 눈을 크게 뜨시고 찾아보셔요. 없으시면 저라도 만나실래요? ㅋㅋㅋㅋ2. 결국은
'07.4.20 10:04 AM (211.229.xxx.63)나도 그사회의 일원일 뿐입니다.
내 입장에서 누군가가 거슬렸다면 누군가도 나에 대해 거슬릴수잇는
뭐든 그렇지만 좋은 사람을 만나는것도 많은 노력과 운이 필요한 일이더군요
내가 마음을 열고 다가가서 먼저 손을 내밀어야 가능한..
서로 자기이야기만 하고 배려받기만 바라는그룹이있다면 그그룹은 서로의이익을 위해 잠시 유지될지는
모르겟지만 결국은 깨져버려요
어떠 그룹이 오래가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거라면 그건 거기구성원전체가 다 같이 그만큼 노력하고 꽤 많은 시간 정성을 들이기에 가능한거예요
저는 작년 1학년때 성격도 잘 맞고 생각 도 비슷하고 취미도비슷한 엄마들을 만나서 나름대로 즐겁고
유익한 시간들을 보냈어요 그리고 학교생활내내 혹은 그이후까지도 아이를 키우며 든든한 울타리가 될것 같아요
저절로 그리된건 아니고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고 그 모임에 정성을 들였기에 가능한거지요
어느날 비로소 내가 관심이 생겨서 엄마그룹에 들어가고 그 자리에서 내 맘에 드는사람을 한번에 만나기는어려워요
세상만사가그렇듯 내맘에드느것을 찾으려면 시간과노력이 필요한 법입니다.
그리고 저도 직장맘이라 다른 사람보다 더 힘들었지만 다른 엄마들이 많이 배려해주고
저도 제입장에서 할수있는일들에 최선을 다했어요3. 원글이
'07.4.20 10:05 AM (211.245.xxx.249)저도님/네...잘 읽었습니다.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셨다니 부럽습니다. 또 저와 비슷한 교육관을 가지신 것 같아 반갑기도 하고요. 우리나라 같은 교육 현실에서 아이 교육에 관해 여러 가지 다른 생각들을 할 수 있을 것 같고 그런 생각들이 저와 다르다고 비난하지는 않는답니다. 다만 지금까지와는 다른 특별한 경험들을 하면서 관계를 맺는다는 게 정말 힘들구나를 느끼고 있어요.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많으니 좋은 분들도 만날 기회가 있겠죠. 그 분이 저도님 일수도 있겠구요.^^
그래도님/아..죄송합니다. 제가 어제 어떤 사람한테 언어적인 상처를 심하게 받아서 너무 기분이 우울했었습니다. 저는 어떤 일이 있을 때 글을 쓰면서 마음을 정리하곤 하는데 그러다보니 독백체가 되었어요. 다음에 또 어떤 생각들을 쓰게 되었을 때는 어떤 분들이 읽으실지도 고려해서 쓰도록 해야겠습니다. ^^4. 원글이
'07.4.20 10:13 AM (211.245.xxx.249)결국은님/제가 답글을 다는 동안 결국은 님이 리플을 달아 주셨네요. 네. 공감합니다. 올해 되어서는 마음과 생각이 잘 맞을 것 같은 엄마들도 몇 분 만나게 되었는데 좋은 관계를 맺어갈 수 있도록 노력을 많이 해야겠지요. 저도 다른 분들을 더 배려하도록 하겠습니다.^^
5. 그림책맘
'07.4.20 11:44 AM (220.72.xxx.144)우선, 반갑습니다...마치 저의 일기를 읽는듯 해서요.
저 역시 아이에게 책 많이 읽히고 같이 이야기 나누는 걸 최고의 교육으로 생각하고 있고,
학원 보내는 일은 아직도 우습게 생각하는 자만이 하늘을 찌르며,
아이들 사교육 정보에 서로서로 귀를 쫑긋 세우기보다는
좋은 책 얘기를 두런두런 나눌 수 있는 관계를 만들고 싶는 사람입니다.
지난 2년간 참석해 본 엄마들 모임에서 저 역시 비슷한 좌절감을 느꼈었습니다.
뉘집 애는 뭘뭘 배운다더라, 어떤 학원이 좋다더라, 어떤 선생님은 이렇고 저렇고...
소위 "Big Mouth"인 한 두 엄마가 온갖 정보를 전파하고
나머지는 끄덕끄덕 잊을세라 외워가는...그런 분위기이거나
서로서로의 아이들에 대한 경쟁심리 때문에 속을 터놓치 못하고 겉도는 분위기더라구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친구...혹은 내맘에 맞는 사람 사귀기란 원래 어려운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학교 다닐 때에도 60명 가까이 되는 한반 아이들 중에
진짜 친한 친구는 한둘 있을까 말까 하잖아요.
어른이 되어 다들 자기 세계가 뚜렷해지고 마음이 더 닫혀있으니 더 어려운게 당연하겠지요.
그래서 전 많이 기대 안 하기로 했습니다.
그냥 나는 내 스타일 대로 가기로...
맘에 맞는 동지 엄마 만나면 운좋은 거고 아님 말고.
내식대로의 "극성떨지 않는" 교육방식이
우리 아이들 2류 시민으로 만드는 건 아닐까 슬쩍슬쩍 불안했었는데,
원글님 같은 분들 있어서 반갑고...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