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개편이전의 자유게시판으로 열람만 가능합니다.

못말리는 할머니, 할머니의 메주, 깍쟁이 손녀

인우둥 조회수 : 1,199
작성일 : 2003-11-30 00:59:19
어제 서울 갈 일이 있어서 인우둥이 외박을 했걸랑요~! ^^
전화 받으시는 할머니 목소리가 노한 목소리라 마음이 계속 껄쩍지근 했었는데...
글쎄, 어제 교통사고를 당하셨던 거였어요.
그러면서 저한테는 메주 밟다가 삐끗했다고 거짓말을 하신 할머니!

매우 가까운 친척분 중에 몹쓸 병에 걸리신 분이 있는데
어제 중환자실로 들어가셨다는 연락을 읍내 나가셨다가 전화로 받으셨답니다.
할머니 표현으로는
'시어머니 돌아가실 때 말고 그런 적이 없었는데
가심(가슴)이 버얼벌 떨리고 다리가 후둘거려 네 정신인지 내 정신인지 모르고'
버스를 타러 가시는데
마석읍내에 있는 K-mart앞에서(딴따따따... 목격자 및 운전자 공개수배 ^^)
좌회전해서 들어오는 차가 마트앞을 지나는 할머니 뒤로 돌아오면서 발등을 밟고 간 거에요.
(저는 처음에 얘기를 듣고 도저히 각도가 나오지 않는 상황이었는데 자세히 알아보니 정말 위험한 상황이었더군요. 생각만 해도 오싹~)
차는 그냥 마트쪽으로 올라가고 할머니는 쓰러지셨는데
'경황이 없고 챔피(창피)스러워'
어느쪽으로 쓰러지셨는지도 기억 못하시고 툭툭 털고 자리를 뜨셨답니다.
옆에서 사고를 본 아저씨들께서 차 번호를 적으라고, 저기 차주인 내려온다고 하면서
사고처리에 대해 한 마디씩들 도와주셨는데
'웬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무슨 충동을 하듯이 이래라 저래라 떠들어대는 게 더 정신없고 무서워서'
빨리 자리를 뜰 생각만 나시더랍니다.
운전자가 사고사실을 알고 다시 돌아 내려와서는 괜찮으시냐고 물으니
'좀 아프긴 해도 괜찮다. 걱정 말라(그 상황에 웬 남 걱정)'고 하셨답니다.
곁에 있던 아저씨들이
'교통사고란 게 오늘 안 아프다고 내일도 안 아픈 게 아니다'며 사고처리에 대해 계속 충고를 하셨지만
운전자도 별 행동을 안 하고 할머니도 자꾸 괜찮다, 난 어디 빨리 가야한다 하시면서 자리를 피하려드셔셔
'그럼 할머니 약값이라도 한 오만원 드려라'고까지 충고를 하셨답니다.
그런데 운전자가 달랑 지갑에서 만원을 꺼내주는데
'아유 됐다'며 '나도 아들메누리 차 끌고 다니는데 그냥 넘어가자'고 하셨다는 거에요.
(이 대목을 말씀하실 때는 약간 자존심 상하셨던 기분도 내비치시더군요.)

그 상태로 집에 오셔서는 또
친척분 일에, 제가 저녁에 못 들어오니 적적하고 섭섭한 생각에, 속이 하도 상하니
스트레스 풀 듯 그 다친 발로 메주를 꾹꾹 밟아 빚어놓으셨더라는 겁니다.

오늘 억지로 병원에 모시고 가서 뢴트겐을 찍으니
발에 있는 작은 뼈 하나가 부러져서 깁스를 하고 오셨습니다.
'아, 글쎄 뼈는 안 부러졌다니까. 내가 알아요.'를 연발하시며
완강하게 병원행을 거부하시고 속을 썩이시더니
병원에 가셔서도 '이게 웬 챔피냐' '난 그 지팽이같은 거(목발)는 안 한다' '네 애비한테는 말하지 말라' '택시비가 도대체 얼마가 나왔냐'...
못말려도 한참을 못말리는...할머니입니다.

이제 저녁 차려드리고 요강 갖다드리고 잠자리를 봐드리고 제 방에 와서는 이렇게 글을 써요.
어제 함께 있어드리지 못한 생각 때문에 아까 병원에 모시고 갈 때는 정말 죽을 맛이었는데
직장에서처럼 무서운 얼굴을 하고 아이 혼내듯 할머니를 대하며 병원까지 억지로 모시고 가니
그래도 교통사고치고는 큰 상처가 아니라서 다행이에요.
눈물을 글썽이며
'제가 죽을맛이에요, 그러니 말 좀 들으세요.'하니까
'무슨... 내가 괜히 허둥대다가... 수가 나빠서 그런거지. 그 운전한 여자도 수가 나빴으니 그랬고...'
그러시네요.

그렇게 빚어놓은 '웬수같은' 메주가
지금 할머니방에서 슬슬 메주 냄새를 고약하게 풍기며 잘 뜨고 있습니다.
첫째날 둘째날 하신 것은 반듯하고 단단하여 이쁘게 달려있는데
친척분 걱정에 정신없이 만드신 셋째날 그리고 사고 후 만드신 어제것은 쩍쩍 갈라지고 조금 부스러지기도 합니다. 단단하게 밟아 야물차게 빚어야하는데 마음이 그러셔서 결국 티가 난다고 하십니다.
'그러니 여자 마음이 다~, 안 그럴 것 같지만 음식이며 빨래며 살림에 다~ 드러난다. 저 메주 좀 봐라.'
그러시네요.

저희집이 메주 얼만큼 띄우냐고 물으신 분 계셨지요?
콩으로 두 말 정도가 저희 식구 먹을 분량이고
이 집, 저 집 해주시는 것까지 해서 모두 한 가마(열 말)씩 매년 하셨답니다.
올 해는 한 가마가 좀 안 될 것 같아요. 이제 더 이상 메주를 빚지 못하시니까요.
오늘 할머니한테 알아낸 바로는
콩 두 말을 잘 씻어 안치고(물기를 빼며 소쿠리에 받친다는 뜻)
가마솥에 '밥물 잡을 때보다 넉넉하게' 물을 부어 삶는데
너무 삶으면 단내가 난다고 하십니다.
삶은 콩을 절구에 넣어 찧은 다음에 (알갱이가 살짝살짝 보이는 정도)
메주틀에 '두부 누르듯' 면보를 깔고 콩 찧은 것을 넣고 면보를 감싼 후에
위에 깨끗한 수건을 접어 올려놓고는 발로 '힘을 꽁꽁 쓰며' 밟아야 한다네요.
면보를 풀어 손으로 모양새를 좀 다듬고는 짚 위에서 한 두 잠 재워 꾸득하게 말린대요.
짚으로 새끼를 가늘게 꼬아 메주를 엮고 방에 미리 마련해둔 메주 너는 봉에 둘씩 짝을 지어 조로록 널어놓으셨습니다.
(짚이 아니면 절대 메주가 뜨지 않습니다. 바실러스 서브틸러슨가.. 뭔가 그 메주 띄우는 균은 짚을 좋아하기 때문에 꼭 짚으로 해야한다고 TV에서 보았거든요)
청국도 띄웠는데 이건 실패인가 봐요.
어디선가 밥통에서 띄우면 된다는 소리를 듣고 실험삼아 해보셨다는데
(평소엔 아랫목에 놓고 이불보쌈을 해서 만드시죠)
균이 생기질 않네요.
제 혼자 분석으로는 균이 들어갈 틈이 없어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단 하루라도 균이 생긴 뒤에 넣었다면 밥통 보온으로 증식이 되겠지만
삶자마자 밥통에 넣으셨다니 균이 아예 생기질 못한 것 같아요.
이제 다리까지 다치셨으니 올해는 청국 못 얻어먹게 생겼습니다.
(네가 하면 되잖아... 이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전 내공이..딸려서... 안됩니다)

누가 못생긴 얼굴을 메주에 비유했는지 모르지만
할머니 손으로 매만져 매꼬롬한 메주는
솜씨 좋고, 인심 넉넉하고, 인물까지 훤한, 이쁜 색시가 생각나는 모양새였습니다.
메주로 간장과 된장을 담그고 한 두 덩이는 고추장 담글 때 가루로 빻아서 넣어 달큼한 맛을 낸다고 하니
넉넉하고 쓸모있는 그 존재가...

어느 시인은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말라'고 했지만
저는 '메주 앞에서 얼굴 찌푸리지 말라, 너는 누구에게 그렇게도 넉넉해본 적 있냐'
그런 우습지도 않은 패러디가 떠오르더라구요.
그러면서도 몸에 냄새 밸까봐...
고민 끝에 깁스하신 할머니 곁을 떠나 자기 방에서 자기로 결정한,
깍쟁이 인우둥...입니다. ^^
IP : 218.148.xxx.200
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김새봄
    '03.11.30 1:22 AM (211.206.xxx.171)

    인우둥님...할머님 얼른 나으시기 바랄께요.
    그만하시기 다행인데 그 운전자 참 밉네요..
    노인분이 다치셨으면 어찌됐건간에 병원에 모시고 갔어야지.

    인우둥님 지금 사는 모습 참 부럽습니다.

  • 2. 꾸득꾸득
    '03.11.30 1:31 AM (220.94.xxx.16)

    그 운전사 정말 나빠요.
    할머니 빨리 와쾌하시길....

  • 3. 고참 하얀이
    '03.11.30 2:58 AM (211.203.xxx.95)

    인우둥님은 조근조근 글을 참 잘 쓰시는 거 같아요. (부러워라)

    할머니 빨리 나으셔야 될텐데...

  • 4. 김혜경
    '03.11.30 9:09 AM (218.51.xxx.92)

    맞아요..아무리 어르신이 괜찮다고 해도 병원에 모시고 가서 확인을 하거나, 연락처를 드려야 하는 건데...운전자가 사고처리를 미숙하게 했군요.
    그나저나, 할머니 불편하셔서 어떻게 하셔요? 인우둥님이 잘 보살펴 드리세요.

    그리고 명언입니다, 메주 앞에서 얼굴 찌푸리지 마라...

  • 5. 스마일
    '03.11.30 10:11 AM (218.48.xxx.145)

    저의 시어머님은 밥솥으로 청국장 매년하시는데요..
    이번에도 가서 조금 얻어왔는데..
    밥솥에다 물을 붓고 보온으로 해서 그 솥위에다 바구니 놓고
    이불덮어3일을 둡니다.
    이번에 제가 가서 콩을 으깼었는데
    실이 짝짝 나오더군요.

  • 6. khan
    '03.11.30 11:04 AM (61.98.xxx.98)

    할머니 빨리 나으셔야 할텐데...
    노인네라 뼈가 아무는시간도 많이걸려서 고생 하시겠습니다.
    메주가 눈에 선하네요. 그많은 콩을 할머니 혼자서 다쑤신거군요.
    메주 잡숫는 분이 부럽습니다.

  • 7. Ellie
    '03.11.30 11:31 AM (24.162.xxx.151)

    합.. ㅠ.ㅠ 제맘이 다 아픔니다..
    우리할무니는 잘 계시려나...
    얼른 나으시도록 제가 기도 드릴게요... ㅡ.ㅡ

  • 8. 꽃게
    '03.11.30 3:27 PM (61.43.xxx.144)

    아무리 몇번에 걸쳐서 하신다고 해도 콩 한말을 메주로 하시는 것은 정말 힘드신 일인데...

    할머님 다치신 쪽 발을 높게 해주시면 통증이 많이 줄어요.
    빨리 회복하시길...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5103 신랑얼굴에 있는 피지를 보며 6 죽순이 2003/12/01 1,009
15102 현대공예나 이천에 그릇사시러 가시는 분~~ 송은선 2003/12/01 876
15101 어제밤 꿈에요. 1 조순옥 2003/12/01 881
15100 12월의 첫날이네요 4 화이트초콜렛.. 2003/12/01 891
15099 내집장만 어떻게들 하시나요? 9 석촌동새댁 2003/12/01 1,052
15098 연말모임에 어떤 차림으로 나가시나요? 21 김혜경 2003/11/27 2,922
15097 울 애기!! 기침 심한데 민간요법 없을까요?? 3 미씨 2003/12/01 935
15096 종합검사 하려면요,... 3 재은맘 2003/12/01 877
15095 고시공부 뒷바라지 어떻게 해야하는 건가요? 9 ... 2003/12/01 1,731
15094 막대사탕을 무료로 준다네요.. 10 저녁바람 2003/11/30 880
15093 완전한 사랑의 애 끓는 대사들.... 22 jasmin.. 2003/11/30 1,476
15092 여러분!!! 저 주말 여행 다녀왔어요!!! 4 도전자 2003/11/30 883
15091 달빛 아래님!!! 자취생 번개는 어찌 되었나요? 2 도전자 2003/11/30 878
15090 김장준비 2 이향숙 2003/11/30 899
15089 아기를 가지려면 1 궁금맘 2003/11/30 887
15088 라면에 걸린 주문... 6 솜사탕 2003/11/30 945
15087 가치관에 혼란을 느낍니다. 16 .. 2003/11/30 1,533
15086 기자경력23년 대선배님의 노하우 2 강주연 2003/11/30 1,024
15085 정말 82cook 너무 좋은 거 같아요! 1 김지영 2003/11/30 885
15084 11월 마지막 날 아침에... 3 빛의여인 2003/11/30 881
15083 그냥 질문인데요..궁금해서..ㅡㅡ? 5 pink r.. 2003/11/30 876
15082 선생님께 질문~~~드려요~ 2 크리스 2003/11/30 903
15081 30년 가까이 뜻도 모르고 먹다니 - SPAM 6 한해주 2003/11/30 1,545
15080 1년마다...... 5 신경성 위염.. 2003/11/30 901
15079 못말리는 할머니, 할머니의 메주, 깍쟁이 손녀 8 인우둥 2003/11/30 1,199
15078 대전번개요... 10 훈이민이 2003/11/29 1,019
15077 [re] 부산 번개 후기.. 아루 2003/11/29 874
15076 부산 번개 후기.. 26 초은 2003/11/29 1,554
15075 반건시(곶감) 판매 5 이두영 2003/11/29 1,336
15074 건표고 판매 5 이두영 2003/11/29 1,0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