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작년 초가을쯤 이었어요.
선물로 받은 포도즙을 반도 채 다 먹기전 어느날
퇴근 후 집에 오니
포도즙 상자 옆면이 물에 젖은 듯 젖어 있길래
희한해서 살펴보니 상자 속에도 노란 액체가 흘려져 있더라고요.
비가 와서 물이 샌 것도 아니고
이거 참 희한하다.. 이게 도대체 뭐지?
한참을 이리 생각하고 저리 생각하고
색이 노란빛이라 더 희한해서 킁킁 냄새도 맡았는데
역하거나 심한 냄새도 안나고요.
그런데.
그런데 말이죠.
삐용이 화장실 치우려고 삐용이 화장실 갔다가 알았어요.
출입구가 있는 부분을 뒤로 돌려서 뚜껑을 닫아 놓는 바람에
삐용이가 화장실을 들어갈 수가 없었어요.
(화장실을 입구를 앞으로 해놓고 뒷쪽은 벽에 딱 붙여 놓거든요)
세상에,
하루가 넘는 시간을 화장실도 못가고
참다 참다 맘은 급한데 쉬 할곳은 들어갈 수가 없고,
그렇다고 아무곳에다 막 실수하긴 싫고
찾다 찾다
열려진 작은 포도즙박스 위로 올라가 그 안에다
볼일을 본거에요.
그 포도즙 박스가 넓고 큰 박스가 아니라 좁고 작은 박스인데
그 위를 아슬아슬 올라가서 일을 봤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미안하고 ..
남은 포도즙 다 버렸지만 하나도 아깝지 않았어요.
# 2.
올 봄쯤이었나
4-5월 어느날 이었어요.
퇴근후 집에 오니
화장실 앞 발수건이 얌전히 포개어져 있길래
(평소에는 넓게 펴놨거든요)
이게 왜이렇게 포개어져 있나 하고는
발수건을 들췄더니만
발수건 속에 맛동산을 숨겨놨더라고요.
요녀석이 뭐가 또 꼬여서 이렇게
보란듯이
(물론 얌전히 덮어뒀으니 보란듯이는 아니지만.)
발수건에 실수를 해놨나 싶어
삐용이를 붙들고
" 너 왜그래? 왜 멀쩡한 화장실을 놔두고
발수건에다 이렇게 해놨어~ 왜~!"
하면서 삐용이한테 잔소리를 했어요.
한참 잔소리 하고서는 집 정리도 하고
이것저것 하다가
삐용이 화장실을 보게 되었는데
아차!
작년에 뚜껑 반대로 닫아놓은 실수를
몇개월만에 또 한거에요.
이 실수를 제가 했는지 남편이 했는지는
확이되지 않았으나
결론은 집사때문에 삐용이가 또 고생을 한거죠.
가끔 고양이들이 자기 맘에 뭔가 안맞고 스트레스 받으면
배변 실수를 막 한다길래 그런 건 줄 알고
삐용이한테 잔소리만 했는데
삐용이는 하루종일 또 참고 참다가
아무곳에나 볼 일 볼 수는 없고
고민하다 찾은 곳이 화장실 앞 발수건 이었나봐요.
것도 일 보고 얌전히 발수건을 덮어 놓다니.
집사 부주의로 고생하다 나름 발수건에 실수하고 얌전히
뒷처리까지 해놨더니만
집사는 자기 붙들고 온갖 잔소리 잔소리를 해대니
울 삐용이는 얼마나 억울했을까요.
그런데도 아무소리 안하고 엄마 잔소리 그냥 듣고 있었다니
욘석 진짜 너무 착한 것 같아요.
(물론 뭐 그게 잔소리인지 삐용이는 관심없었을지도...)
# 3.
발수건에 배변실수가 있던 날이 며칠 지나고나서
주말이었어요.
일요일 오전 느즈막히 일어나서
남편과 함께 티비 시청을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거실에서 왔다갔다 하던 삐용이가
자꾸 시끄럽게 울어대는 거에요.
가끔 삐용이는 새벽이나 밤에
우다다 하면서 막 사자가 되는 때가 있는데
그날도 뭔가 자기 맘에 안맞는지
자꾸 울어대길래
남편도 저도
너 왜그래~! 하면서 핀잔만 줬어요.
오후가 넘어서면서
욘석이 방과 거실을 오가면서
자꾸 삐용삐용~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계속 뭐라 하길래
순간!
혹시? 싶은 생각에
후다닥 삐용이 화장실을 가보니
세상에나! 또 문이 뒤로 돌려져 있는거에요.
그날 주말이라고 집사들이 집에 있으니
욘석이 " 나 급해! " 하고 그렇게 말을 하고 다닌건데
집사들이 못알아 듣고 딴소리만 해댔으니.
미안해 미안해 삐용아~ 하면서
화장실문 돌려놓고 어서~ 들어가 하고 들여보내니
삐용이 들어가자 마자
엉덩이 내리고
" 아흐~ 아흐흐~ " 정말 사람이 내는 소리처럼
그런 소리를 내면서 볼 일 보는데
남편이랑 저랑 그 소리 듣고 웃다 울다..
뼛속 깊은 곳에서 참아낸 그 인내의 소리
" 아흐~ 아흐흐~" 라니...
그 후론 남편도 저도 두번, 세번 화장실 확인하고 있답니다.^^
삐용이는 별 일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다섯살이 넘어서 의젓해졌고
여전히 잠자는 포즈는 다양하며
때때로 창문 밖 전깃줄에 앉은 새를 잡고 싶어
냥냥~거리기도 하고
발톱 자르는 엄마한테 하악질도 하고
술냄새 나면 아는척도 하지 않는
도도하면서 호기심많고 겁도 많은
그런 여전한 삐용이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엄마 배 즈려밟고 육중한 몸땡이 올려놓는 것도 여전하고.
엄마 다리 위에 앉아서 피곤한 몸 뉘이는 것도 여전해요.
피곤하시니 고개 떨어지기 시작하고
아주 편한히 잠드셨네요. 삐용님.
푹 주무시고 난 담엔 같이 티비 시청해주는 센쓰도 있고.
그러나 우리 삐용씨는
여전히 잘 자고
잘 자고
잘 자다.
뻗으셨습니다.
지가 진짜 사람인 줄....
그전에 중복된 사진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넘 오랫만이라.^^;
더운 여름이 왔습니다.
건강 조심하시고
늘 행복하고 즐거운 날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