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일) 10시 죽령 출발해 연화봉 거쳐 비로봉 정상까지 오릅니다.
하산은 천동계곡 따라 단양으로.총 18키로, 7시간 예상.
원주~제천~단양 지나 죽령 나들목으로 빠져나오니 5번국도.
구불구불 고갯길을 오르니 죽령 고개마루네요.
죽령(竹嶺)~~
충청북도 단양 ~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경계의 고갯길입니다.
도솔봉(1,314m)·연화봉( 1,394m)·비로봉(1,440m) 국망봉(1,421m) 으로 이어지는
20여키로 소백산 줄기 중 고도 689m의 가장 낮은 고갯길.
문경새재, 추풍령 함께 영남의 삼관문의 하나.
삼국사기에는 ' 신라 아달라왕(阿達羅王) AD 158년에 죽죽(竹竹)이라는 기인(奇人)에 의해 개척되었다' 고 했고 .
어느 도승이 짚고 가던 대지팡이를 꽂은 것이 살아났다 하여 죽령이라 불렀다는 전설도.
삼국시대부터 죽령에는 나라에서 주관하는 제사를.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봄가을로 나라에서 향과 축문을 내려보내 작은 제사를 지낸다'고 했고.
'죽령사'(竹嶺祠) 세워 산신에게 제를 올렸는데 이때는 단양·제천·청풍·풍기·영춘의 다섯 고을 수령이 제주가 되었다네요.
죽령 옛길 '용부원'(단양군 대강면)의 기슭에는 목이 부러진 대형 석상이 있습니다.
용부원( 龍夫院 )은 관리들의 숙소인 院.
대형 석상은 불두 ( 佛頭 ) 까지 하면 5.5m는 되는 ' 장육불상( 丈 六 佛 像)'입니다 .
나말여초 9 세기 것으로 그만큼 죽령이 국가 기간도로로 중요시 되었던 것.
소백천문대까지는 포장된 임로를 따라 걷습니다.
왼쪽으로 귀룽나무들이~~
https://www.youtube.com/watch?v=uFLurzBNXuU
모짜르트 피아노 소나타 5번
리히터,피아노
귀룽나무는 생명력이 아주 강합니다.
평지는 물론 1500미터 고산 지대에도 잘 자라고.
가지를 꺽어 코에 대면 역한 냄세가 나지만 꽃향기에 벌 나비들이 들끊습니다.
개인적으로 봄 꽃나무 중 좋아하는 나무 중 하나.
큰 키나무 중 가장 빨리 향기로운 봄꽃을 피웁니다.
함박꽃나무는 꽃을 머금었고~~
물론 저 아래 계곡에는 활짝 피었습니다.
꽃도 꽃이지만 줄기,잎 등 전체적으로 귀품이 넘칩니다.
태백산,설악산 등 높은 산에 서식하는 나무 중 가장 기품이.
북한 국화인데,국화 하나는 정말 잘 뽑았네요.
천문대 까진 이리 포장 임도.
소백산은 서에서 동쪽으로 걸쳐있습니다.
우측은 남쪽으로 경북 풍기,왼쪽은 북쪽으로 충북 단양.
비가 우측으로 떨어지면 낙동강으로,좌측으로 떨어지면 남한강 거쳐 한강으로.
흰 병꽃나무~~
꽃이 꽃병을 닮아서.
붉은 병꽃나무~~
머금을 때부터 활짝 펼 때까지 붉은색이라 붉은 병꽃입니다.
붉은 병꽃나무는 이리 머금을 때부터 붉은색
삼색 병꽃나무~~
삼색병꽃은 삼단계 변천을 거칩니다.
처음 꽃을 피울 때는 녹색빛이 가미된 연한 노란색으로 꽃을 피우고 점점 붉게 변해갑니다.
이 때문에 한 꽃에서 두가지 색 이상을 볼 수 있다는.
꽃말은 '전설'입니다.
붉은 병꽃과 삼색 병꽃의 병존~~
쇠물푸레나무~~
물푸레나무과 물푸레나무속.
바위틈에서 잘 자라서인지 나무가 강합니다.
야구방망이로 사용하는데 예전에는 호미나 낫 손잡이로.
무겁기도 해 참나무처럼 뗏목을 만들 수 없었다네요
자주제비꽃~~
제비꽃 종류가 하도 많아서 개인적으로 그냥 자주제비꽃이라 명명을.
'아,이렇게 아름다운 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고.
노랑재비꽃~~
소백산 비로봉1400미터,가장 높은 곳에도 군락을 이루고 있는 꽃입니다.
도심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맑음의 상징이자 소백산의 '봄 얼굴'이라 할만합니다.
소백산은 열 가지 이상의 제비꽃이 사는 제비꽃의 나라,그 중 샛노랗게 빛나는 노랑제비꽃이 단연 으뜸.
호랑버들~~
호랑버들의 씨방이 맺혔고~~
'호랑이의 버들' 이란 뜻인데 아래 참고 사진을 보면 그 이유를 잘 알수있습니다.
겨울눈이 자주 빛으로 뚜렷하고 광채가 나는게 호랑이 눈 같네요.
길가 풀섶은 야생화 천국~~
큰 키 박새들 사이로 홀애비 바람꽃,피나물,모데미풀,연영초,개별꽃 등등이.
인위적인 수목원은 거의 가지 않습니다.
원예종들과는 달리 야생화에 눈길이 가는 이유는???
저 안으로 들어가 보시면 압니다.
힐링이 따로 없죠.
홀아비 바람꽃~
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 보호종.
꽃대가 1개씩 자라 홀아비라는 이름이 붙었고.
홀애비바람꽃 & 피나물
연한 줄기와 잎을 꺾으면 피와 비슷한 적황색의 액이 나와 피나물이란 이름이.
식물 전체에 약한 독성이 있지만 어린 잎은 삶아서 나물로.
관중~~
왕관처럼 생겨서 관중이려나...??
그런데 꿸 관(貫)이네요.
줄딸기~~
탱자,꾸지뽕나무,엄나무,산초나무 등 가시가 있는 식물은 독성이 없습니다.
너머가 풍기읍 & 영주시~~
소백산은 충북과 경북을 가르죠.
동서로 펼쳐진 소백산을 남북을 잇는 '걸어 산길은' 죽령이요,
찻길은 5번 국도요,
땅 아래는 기타 중앙선 터널,
2001년에는 중앙고속도로의 터널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예전 죽령은 오르막 10리,내리막 10리 한나절 걸렸지만 지금은 2분이면 됩니다.
70%가 산악 지대인 한반도의 역사는 고갯길의 역사입니다.
영남지방은 백두대간으로 갇혀진 형국이죠.
강원도는 태백 소백산으로, 충북은 소백 월악 주흘 조령 속리산으로,
충남은 추풍령으로, 전북은 덕유산 지리산으로, 전남은 지리산으로 갈라진다.
그래서 신라의 역사는 백두대간 개척의 역사이기도 했네요.
먼저 열린게 AD 156년 문경~충주를 잇는 계립령(하늘재~지릅재)이요,
2년 뒤 풍기~단양을 연결하는 죽령 ( 689m) 이 열렸습니다.
문경새제는 조선 초,이화령 신작로 길은 일제 강점기에.
쥐오줌풀~~
이름과 달리 만개하면 형형색색으로 멋집니다.
제2연화봉~~
편한 능선길 따라 4.6키로 왔네요.
미나리 아재비~~
아재비란 아저씨의 낮춤말로 미나리와 비슷한데 실은 전혀 성질이 다르다는 뜻.
긴 줄기 중 아랫쪽 잎과 윗쪽 잎의 형태가 전혀 다릅니다.
아랫 잎이 미나리 잎과 비슷해서 미나리아재비라.
윤기가 유별나 시선을 오래 끄네요.
할미꽃~~
나중에는 저리 할머니 산발로 변하고.
민들레처럼 솜털로 덮인 열매들이 흰머리처럼 보이는 점도 할미꽃으로 불리는데 한몫했겠죠.
할미꽃은 양지 쪽 풀밭에서 잘 자랍니다.
특히 야산 무덤가에 많아 다양한 스토리 텔링을 낳았는데 벌초를 자주 해준 이상적인 서식 환경 때문이겠죠.
석회 성분을 좋아하는 데 봉분 만들 때 사용한 석회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고.
구상나무~~
제주도가 원산지로 유럽서는 최고 츄리목으로 인기.
일제 강점기 때 선교사들이 가져가 개량.
구상나무 수꽃~~
서식환경,형태 등이 주목과 너무 비슷하지만 조상이 완전히 다릅니다.
암꽃은 이리 생겼습니다.
암수가 같은 나무에서 열리는데 암꽃 상위시대를 살죠.암꽃은 나무 위쪽에 수꽃은 아랫쪽에.
그럼 제주도 한라산 등 고산지대에만 남아있는 이유는??
대표적인 한대 식물로 빙하기 이후 온도가 올라가면서 저지대 구상은 멸종하고 고산지대만 살아남았다는.
그래서 멸종 보호종입니다.
구상나무가 다른 침엽수들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특징은 암꽃,수꽃 모두 색깔이 화려하다는 점.
암수 모두 성장단계에 따라 확연히 색깔이 변하는데 이러한 다양성은 다른 침엽수에서는 볼 수 없는 현상이라네요.
북사면 단양~
단양쪽으로 앞으로 남한강이 흐릅니다.
북쪽 사면은 비교적 경사가 완만하여 높은 곳까지 개간되었으나 남 쪽 사면인 풍기쪽은 급경사.
철쭉 군락지인데 아직 피지않았고.
저 아래 흰색 부지 보이시죠??
이땅 최고 석회암 채석장입니다.야산 몇개가 잘려나갔습니다.
제천,단양은 이땅 최대 시멘트 생산지.
단양은 석회암지대라 고수동굴,천동동굴,온달동굴 등 석회암 동굴이 많습니다.
산자락에 가렸지만 남한강은 영월에서 단양읍으로 흐르고.
우측 능선길 따라 천문대 향해 ~~
1300미터 고지대 신갈나무들~~
벌깨덩굴~~
벌들이 좋아하고 잎이 깻잎같아서
딱총나무~
줄기의 속이 독특하여 꺾으면 ‘딱’하고 ‘총’소리가 나서 딱총 나무라~
부러진 뼈를 붙이는 효능이 있다해서 접골목이라고도 .
'숲 속의 잡초'라 불릴 정도로 잘 자라며 가을 빨간 열매는 관상용으로 많이. 식용으로도.
소백산 천문대~~
75년 한국 최초의 현대적 천문대입니다.
최초로 소백산에 세워진 이유는??
국립공원 중 소백산 지역의 연평균 강우량,적설량이 보다 월등히 많다네요.
그러나 청명일수는 70~80일로 국립공원 중 가장 많고.
저 능선길 따라서 가야죠.
고지대라 아직은 연두빛이 대세이네요.
풀섶엔 갖은 꽃들이. 참 매력적인 길입니다.
어린 마가목인듯한데???
야생화 군락지~~
얼마나 싱그럽고 맑은 기운이 넘치는지 쉽게 발을 옮기지 못합니다.
모데미풀~~
한국에서만 자라는 고유식물.
1935년 지리산 운봉 쪽 모데미라는 곳에서 발견되어서.
고산지대의 습한 그늘에서 자라기 때문에 어두운 배경에서 더 환하게 빛나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홀애비들이 왜 이리도 많은지~~
꽃잎이 다섯이니 개별꽃~~
별똥별이 숲으로 떨어져 별꽃들이 되었나??
이건 여섯이네요.
그럼 개별꽃이란겨,큰개별꽃이란겨???
큰개별꽃은 꽃잎이 많으면 10장까지도 난다네요.
큰개별꽃은 이리 줄기가 깁니다.
피나물~~
연화봉~~
7키로 왔네요.정상 비로봉 까진 4키로 남았습니다.
표지석 밭침대가 참 볼품없네요.
시각 경험상 자연석이 최고입니다.
내 부러울 것 하나 없지만,
쌈장에 쌓아놓은 상추,쑥갓을 보노라면 군침이 돌고 작은 비애같은 걸 좀(ㅋㅋ써놓고 보니 웃기네)
정상 비로봉 향해~~
사스레나무~~
대표적인 고산 목으로 언제부턴지 참 좋아하게 된 수종.
가지 성장이 이리저리 자유분방 자체입니다.
설악산 정상 인근의 대군락지는 정말 매력적이죠.
하얀 껍질은 종이나 불소시개로 사용되는 데 소리가 사스락거린다해서 사스레 나무라.
한겨울 표피를 벗어낸 흰 사스레 군락지를 보노라면 집단 군무를 연상.
귀기에,산사람이 죽어 사스레나무가 되었을 거라는 생각도 해보고.
사스레&신갈나무 군락지~~
그 아래는 야생화 천국.
는쟁이 냉이~
는쟁이 냉이~~
'는쟁이'는 명아주 방언으로 잎은 명아주 잎을,꽃은 냉이꽃을 닯아서 는쟁이 냉이가 되었습니다.
이건 미나리 냉이~~
잎은 미나리를,꽃은 냉이꽃을 닯아서
미나리 냉이 군락지~~
잎이 미나리 잎과 비슷하지 않나요?
연령초~~
連齡草,,,수명을 연장시켜 준다는 뜻이지만 독성이 있습니다.
독도 잘 다스리면 약으로 쓰기에 한방서 약재로 쓰이고.
박새~~
으악새가 새가 아니듯 박새도 새가 아닙니다(으악새는 억새).
꽃은 흰색에 가까운 연한 노란빛이 도는 백합목과로 높 은 산 습지에 무리 지어 살죠.
진한 초록 바탕 위로 1미터 이상 기다란 꽃대가 올라오는 7~8월에 피는 대표적인 여름 야생화.
조릿대~~
뒤돌아보니~~
소백산은 비로봉(1,440m)이 주봉.
말이 소백(小白)이지 태백산(太白山,1 567m)보다 규모도 크고 산세도 더 장엄합니다.
단지 127 미터가 낮을 뿐.
풍기는 인삼 고을이죠.
읍내를 걷다보면 오나 가나 인삼 가계는 넘치고 이따금 인견(人絹) 가계도 보이고.
강화,금산과 함께 남한 3대 인삼산지로 꼽힙니다.
다량 생산 금산에,품질의 풍기인데
강화는 한국전쟁 때 개성 사람이 옮겨와 시작되었지만 풍기는 그 연륜이 깊습니다.
삼국사기에 소백산을 중심으로 한 풍기 지역에서 많은 양의 산삼을 캤다는 기록이 나오고.
또 신라 성덕왕 33년(734년)에는 당 현제에게 하정사를 보내 산삼 200근을 올렸다는 기록이.
그런데 중종 때 풍기군수 주세붕이 소백산 자락의 산삼 씨를 이용, 민가의 인삼 제배에 성공했다죠.
풍기 사람들은 이를 근거로 최초 인삼 재배지로 자부심이 크고.
그러나 이시진(李時珍)의 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14세기 말부터 개성 부근에서 인삼을 재배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저 계곡 일대가 정감록에서 이땅 최고 십승지로 뽑은 풍기 금계촌입니다.
민눈양지꽃~~
많은 양지꽃 중에서 가장 곱고 화려하다는
큰개별꽃~~
풀솜대~~
춘궁기에 절에서 어린 순과 곡식을 섞어 죽을 쑤어 인근 나누어 주었다 하여 '지장보살'이라 불리우기도.
칼퀴 현호색~~
꽃받침이 갈퀴 모양으로 가늘게 갈라져서 꽃 몸통을 감싸고 있는 모습이 특이하죠.
갈퀴 보이시죠?
현호색은 이처럼 변이가 심합니다.
1300미터가 넘는 곳에,,,,뭘까요??
함박꽃나무 입니다.
바람 찬 능선 위라 줄기 식물처럼 땅을 기며 자라고 있네요. .
철쭉 사이로 등산로가~
아직 피지 않았고(10일 전이니 지금은 폈겠죠)
비로봉이 우측으로~~
퇴계는 소백산 남,북쪽에서 군수를 엮임했습니다.남쪽 풍기군수,북쪽 단양군수.
그가 450년전 소백산에 오른 후 기행기 '유소백산록'(遊小白山錄)을 남겼죠.
봄 철쭉 시기에 올랐는데,
/석름,자개,국망 세봉우리 간의 거리가 서로 8,9리쯤 되는 사이에 철쭉이 숲을 이루었으며,
마침 한창 피어나서 울긋불긋한 것이 꼭 비단 장막 속을 거니는 것 같고 호사스런 잔치 자리에 온 기분이다/ 했습니다.
소백산은 참 길고,높고,포근하죠.
높고 깊고 넓은 지리산의 경외감하곤 또 다르고.
형제봉~국방봉~비로봉~제1연화봉~제2연화봉~도솔봉으로 이어지는 1천미터 이상의 연봉들이 장대합니다.
형제봉에서 두솔봉 까지 이어지는 20여키로 연봉(連峰)은
부드러운 선의 연속이라 연봉 위를 걷다보면 여인네 라인이 연상됩니다.
그래서 소백산은 종종 여성 산의 상징으로 불리운다는.
비가 우측으로 떨어지면 낙동강,좌측이면 한강으로~~
비로봉이 보이고~~
하얀 점들 보이시나요?
노랑무늬붓꽃입니다.
대 군락을 이루고 있네요.
노랑무늬붓꽃 특별보호구역으로 관리되고 있고.
뒤돌아 보니 소백산 천문대도 보이고~~
1400미터 귀룽나무~~
정상 주변 주목군락지~~
정상 비로봉<가져온 사진>~~
비로봉이라는 이름을 가진 봉우리들이 많습니다.
금강산 비로봉(1638m), 오대산 비로봉(1563m), 치악산 비로봉(1288m), 속리산 비로봉(1057m) 등등.
모두 부처의 산인 거죠, 그러고 보니 명산은 죄다 비로봉.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의 준말로 '지혜의 빛이 법계에 두루 비치어 가득하다'는 뜻.
정상서 서쪽을 바라보니~~
오던 길로 천문대가 보이네요.
저분들은 남쪽 풍기 금계촌 비로사 쪽으로 하산중.
소백산은 서에서 동쪽으로 걸쳐있습니다.
금강산,설악산,오대산,,,남북으로 치닫던 백두대간은 태백산에서 급격히 서쪽으로 휘는데
소백산에선 완전히 동,서에 걸쳐서 100미터 이상 연봉들이 20여키로를 달립니다.
동에서 서로 아스라이 달리는 그 연봉들을 잘 볼수있는 곳이 봉황산 부석사!
안양루 위나,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에 서서라면 더 폼나겠네요.
북쪽을 바라보니~~
소백산은 신라와 고구려의 삼팔선이였죠.
신라군과 고구려군은 소백산을 수시로 넘나들며 싸웠으니.
광개토대왕,그리고 아들 장수왕 기마병은 죽령을 넘어 청송,평해까지 진출했고 실제적으로 신라는 한 때 속국.
이후 진흥왕은 백제 성왕과 나제동맹으로 죽령 이북의 10여 고을을 빼앗았고.
이에 고구려 평원왕의 사위인 온달은 평강공주에게 맹세하고 출전을.
/신라에 빼앗긴 계립령과 죽령 사이 땅을 회복하지 않고는 돌아오지 않겠다!/ 라는 출사표를.
(계립령은 월악산 자락에 있는 문경~충주 간의 지름길로 죽령보다 2년 전에 열렸음)
그러나 온달은 전사하고 마는데 그곳이 바로 단양군 영춘면 남한강 가 온달산성.
사진에서 보듯 온달산성은 소백산 북쪽 자락에 위치합니다.
온달산성 앞으로는 남한강이 흐르고 뒤로는 소백산 국망봉이 받치고 있고.
온달산성 앞 남한강 상리나루는 온달을 장사지낸 곳이라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남쪽을 바라보니~~
남한 최고 십승지(十勝地)라는 풍기 금계촌 일대가 보이네요.아래로 금계호수도 .
아랫 계곡이 금계계곡으로 비로사도 거기에 있습니다.
금계촌은 풍기인삼의 첫 재배지이기도.
조선 후기를 이해하는 키 워드가 몇있죠.
정감록 등 비기(秘記),비결(秘訣)들도 그 하나입니다.
비결서에 대한 사회적 이해없이 조선 후기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
유럽의 파라다이스,남미의 엘로라도,중국의 무릉도원이 있다면 우리엔 '청학동'(靑鶴洞),'십승지'(十勝地)가 있었습니다.
/ 조선 왕조가 망하리니 살고 싶은자 십승지로 들어가라.
곧 정씨 진인이 나타나 계룡산 아래 새 왕조를 열리라/
정감록의 요체입니다.
오늘날 계룡산이 유사종교,무속의 총본산이 된 것도 정감록 영향이 크죠.
19세기 대부분의 민란도 정감록과 관련되어 있고.
또한 동학 등 신흥종교에 사상적 기반을 제공해 조선후기 사상계에 강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정감록은 정감(鄭鑑)과 이심(李沁)이라는 두 인물의 대화 형식으로 되어있습니다.
1) 난세에 복정(卜定)된 피난처에서만 복을 누릴 수 있으며,
2) 정씨(鄭氏)의 성을 지닌 진인(眞人)이 출현하여 李씨 왕조는 망하고 새로운 세계가 도래하며,
3) 그 왕조는 李씨의 한양(漢陽), 정(鄭)씨의 계룡산, 조(趙)씨의 가야산, 범(范)씨의 완산(完山) 이라는 것.
그런데 정감록은 내용이 산만하고 신비주의적입니다.
도선(道詵) ,무학(無學) ,토정(土亭), 격암(格庵) 등의 예언서를 발췌한 모음집 수준이죠.
조선후기 민간에서 몰래 유통되던 금서들이라 인쇄본은 없고 모두 필사본으로 한자로 쓰였고.
그러다 보니 수차 가필되고 체계도 없습니다 .
그러나 때묻지 않은 백성들의 숨결이 들어있으니 생명력이 강할수 밖에.
'거처를 옮긴다'는 생각 자체가 '농경국가'인 조선의 권력에게는 큰 위협이였으니 정감록은 금서!
정감록이란 제목에서 보듯 메시아로서 정(鄭)씨에 대한 믿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메시아가 '정씨'인 이유는 무었일까?
혹자는 조선조 개국부터 유달리 정씨들이 역모같은 거를 주동했기 때문이라고 보고있네요.
정몽주 , 왕자의 난에서 죽음을 당한 정도전,평등주의자 정여립,영조의 군주 자격에 시비를 걸고 반란을 일으킨 정희량 등등.
정감록의 핵심은 '세상은 변화한다'는 것.
하늘은 봄,여름,가을,겨울로 순환하듯 땅의 기운은 곤륜산(중국)에서 백두산으로 이동한다는.
다시 금강산에서 태백,소백산을 거쳐 계룡산으로.
조선 후기 핍박에 시달린 백성들의 이런 택리(擇里), 피지(避地)에 대한 환상을 정감록을 통해 표현한 거죠.
정감록 십승지(十勝地)는 다음의 10곳.
1. 풍기 차암 금계촌 (경북 영주시 풍기읍 금계리 일대)
2. 봉화 춘양 일대 (경북 봉화군 춘양면 석현리 일대)
3. 보은 속리 난증항 일대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과 경북 상주군 화북면 화남리 일대)
4. 공주 유구 마곡 두 강 사이 (충남 공주시 유구읍 사곡면 일대)
5. 영월 정동 상류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연하리 일대)
6. 예천 금당동 북쪽 (경북 예천군 용궁면 일대)
7. 합천 가야산 남쪽 만수동 일대 (경북 합천군 가야면 일대)
8. 무주 무풍 북쪽 덕유산 아래 방음 (전북 무주군 무풍면 일대)
9. 부안 변산 동쪽 호암 아래 (전북 부안군 변산면 일대)
10. 남원 운봉 두류산 아래 동점촌 (전북 남원시 운봉읍 일대)
정감록에서 뽑은 십승지 으뜸은 어띨까요??
네, 저 아랫골짜기 일대 풍기읍 금계촌(金鷄村)입니다.
남사고의 십승지론에도 피란지로 소백산을 으뜸이라고 했죠.
태백산~소백산 일대가 육산인데다가 물이 많고 중앙권력과도 격리되어서 겠죠.
인삼,사과,인견은 풍기에 있어 풍요(豊饒)의 基였는데 풍기가 인견의 본고장이 된것도 십승지와 관련되네요.
인견(人絹)이 풍기의 특산물로 된 것도 명주의 본고장인 평안도 영변과 덕천에서
청학동,십승지를 찾아 1930년 직물기술자들의 이주해서입니다.
수탈을 피해 정감록에서 난세의 피난처라 한 이곳을 찾은 것이죠.
지금은 유입 인구가 늘어 비로봉으로 바짝 붙어 욱금리,삼가리 마을이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십승지니,청학동이니,정감록이니,,,,,일종의 병든 꿈입니다.
십승지 중 으뜸이라는 금계촌이지만 지금 일대는 난개발 중.
마을 여기 저기에 양계장과 목우장이 들어서 있고,
의상대사가 창건한 비로사도 삼재를 비켜가지못하고 수차례 불탔으니.
정감록의 허황을 엿볼수있는 게 하나 있네요 .
정감록은 뭔가가 비밀스럽게 존재한다는,이른바 '비결(秘訣)'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정감록에서 전하는 핵심 메시지는 보통 한자를 파자(破字)해서(애너그램) 암호처럼 씌어있습니다.
한자에 대한 식견을 갖춘 사람도 쉽게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거.
그 수수께끼가 풀리면 그 메시지가 마치 진실인양 믿게 되죠.
파자 형식을 빌었기에 적어도 결론 도달에는 논리성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비결(秘訣),감결(鑑訣)은 매우 효과적인 정치적 프로파갠다였다는.
북쪽을 바라보니 국망봉(1420)이~~
백두대간은 멀리 선달산,구룡산,태백산으로 이어지고.
양백지간(兩白之間)이라 하죠 태백산과 소백산 사이를 일컬습니다.
그 중간에 구룡산(1345),선달산(1236)이 있죠.
부석사 바로 뒷산이 봉황산이요,뒷뒷산이 선달산입니다
국망봉에서 우측 계곡이 죽계구곡으로 죽계천 변 동네가 바로 금성단,소수서원,부석사가 있는 순흥(順興)입니다.
豊基에서 順興,,,이름부터 소백산의 풍요가 느껴지지않나요.
비로봉 아래는 풍기,국망봉 아래는 순흥인거죠
순흥은 도호부였을 정도로 한때 격이 높았는데 고려 때 충렬왕,충숙왕,충목왕의 태를 뭍었기 때문.
'북 송악,남 순흥'이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죽계천을 타고 국망봉에 오르는 것은 '역사의 타임 머신' 타는 것이기도 합니다.
국망봉에서 발원한 죽계천은 순흥면을 가로지르며 흐릅니다.
죽계천은 인문적으로 장대합니다.
1) 부석사의 시원이 되는 초암사,그리고 성혈사가 죽계천 상류에 있습니다.
2) 고려시대 경기체가인 '관동별곡'으로 유명한 안축은 죽계천에 기거하며 '죽계별곡'을 지었다.
안축은 안향과 더불어 이곳 순흥 출신.
3) 퇴계도 풍기군수로 있으면서 죽계계곡을 자주 들렀고 '죽계구곡'이라 명했고.
4) 단종복위운동 때에는 세조의 동생인 금성대군 등 많은 이가 이곳 죽계천에서 죽어갔습니다.
그때 죽계천 하류 40리 까지 피로 물들어 '피끝'이라는 마을도 생겨났고.
그리고 이들을 추모하는 제단이 숙종 때 만들어지니 '금성단'입니다.
6) 최초 서원인 소수서원이 죽계천 가에 들어섰고.
7) 또한 신라 지역에 발견된 고분 벽화는 딱 두곳인데 죽계천 인근의 고구려 고분벽화가 그것입니다.
(이곳이 한때 고구려 속지였다는 의미)
8) 금성단 옆 죽계천을 넘는 다리를 '청다리'라고 부릅니다.
청다리는 아이들을 놀릴 때 쓰는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말의 진원지가 되는 곳이다.
하산합니다.
올라오는 행인 얼굴들을 보니 세상 모든 고뇌란 고뇌는 다 안고있는 듯한 표정들이네요.
난 저들을 뚫고 룰루랄라 흥겹게~~
단양 다리안 관광단지가 있는 천동계곡으로 6,2키로 하산합니다.
주목군락지 아래로 싱그러움이~~
연영초~~
좌측으로 풀솜대도 보이고~~
아래 노란 불가사리 같은거 보이시죠??
삿갓나물입니다.
잎들이 삿갓같아서.
꽃잎이 떨어져 씨방이 맺은거 같이 보이지만 노란 바늘 모양이 꽃입니다.
삿갓 맞죠?
풀솜대~~
북사면 음지라 박새들 사이로 갖은 꽃들이~~
박새,여로,동의나물(곰취와 비슷),삿갓나물은 봄나물로 오인하기 쉬운 대표적인 독초.
식용 나물과 겉모습이 매우 흡사하다는.
피나물~~
모데미꽃~~
주목~~
주목 고사목~~
왜 살아 천년,죽어 천년인지를 증거하고 있네요.
손으로 때리면 텅텅! 울릴 정도로 여전히 강인합니다.
구상나무 호위 받으며 하산~~
박새 군락지 사이로~~
미나리 냉이~
미나리 냉이~
꽃이 냉이꽃처럼 앙증맞고
천동계곡 하류엔 함박꽃나무가 만개~~
꽃도 잎도 줄기도 기품 넘칩니다.
서식시도 맑은 계곡 변.
이런 미인에 나비 벌들이 안안길리가요.
드디여 천동 다리안관광단지 도착~
18키로 7시간 걸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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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책부록 죽령야사(1),,,,오대산 상원사 범종이 유두 하나를 잃은 사연
오대산 상원사엔 에밀레종과 더불어 이땅 2대 범종인 상원사 범종(국보)이 있습니다.
에밀레종 보다 더, 이 땅에서 가장 오래된 종.
생과 공후를 연주하고 있는 두 비천상이 특히 아름답습니다.
원래 안동 누각에 있었으나 세조의 명에 의해 상원사로 이동중이었습니다.
안동서 평창 오대산을 가려면 죽령을 넘어야 했죠.
죽령에 이르자 갑자기 슬픈 소리를 내면서 움직이지 않았고.
책임자는 '옛 집을 떠나기가 서러워서'라고 여기고 범종의 젖꼭지 하나를 떼어내 안동에 보냈답니다.
그제서야 범종은 움직였고.
그래서 상원사 범종에는 지금 유곽 내 9개 종유(鐘乳) 중 한개가 없습니다.
힘든 고갯길이라 운송 잘못으로 유두 하나가 떨어졌을 터.
문책이 두려운 책임자는 고민 끝에 책임회피를 이리 서사적으로 풀었을 겁니다.
별책부록 죽령야사(2),,,,향가 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 모태는 죽령
단양군 대강면 용부원2리에 위치한 보국사지 장육불 모습.
불두가 존재하지 않는다
죽령 옛길 '용부원'(단양군 대강면)의 기슭에는 목이 부러진 대형 석상이 있습니다.
용부원( 龍夫院 )은 예전 관리들의 숙소인 院이 있어서죠.
대형 석상은 불두 ( 佛頭 ) 까지 하면 5.5m는 되는 ' 장육불상( 丈 六 佛 像)'입니다 .
양식으로 보면 나말여초 9 세기 것으로 보고 있는데 그만큼 죽령이 국가 기간도로로 중요시되었던 거죠.
향가 모죽지랑가와 관계된 장육불상이요,죽령입니다.
'삼국유사' 에는 이리~~
/ 술종공(述宗公)이 서쪽 지역의
지방관으로 임명되어 임지로 가던중 죽지령(죽령)에 이르러
한 거사를 만났다.
그리고 술종공은 임지에 이르러 달포를 보내고 밤에 꿈을 꾸었는데
일전에 죽지령에서 만난 거사가 집으로 걸어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같은 시각 술종공의 아내도 똑같은 꿈을 꾸고 있었다.
괴히 여긴 술종공이 알아보았더니,
꿈꾸던 날에 거사가 죽었다는 것이다.
술종공은 거사가 자신의 아들로 환생하는 것이라 믿고,
죽은 거사를 죽지령 위 북쪽 봉우리에
장사 지내게 했다.
그리고 미륵불을 만들어 무덤 앞에 세워주었다.
과연 아내는 태기가 있고
아이를 낳았는데 죽지령의 고개 이름을 따서 '죽지'(竹旨)라 했다.
죽지는 자라서 인품있는 화랑이 되었는데,
낭도인 득오가 죽지랑의 고매한 인품을 사모하여
‘모죽지랑가(慕竹旨郞歌)’를 지었다. /
별책부록 죽령야사(3),,,,죽령터널 또아리굴 1942년 대형참사
중앙선은 1942년에 개통되었는데 4년만에 죽령 터널서 대형 참사가~~
열차는 자동차와 달리 급경사의 고갯길은 오르지 못하죠.
보통 1천미터 이내서 35미터 이상을 오를 수 없다네요.
그래서 융플라우 처럼 톱니바퀴 궤도를 이용하거나, 리프트 아니면 나선형으로 빙빙 돌며 조금씩 고도를 올려야합니다.
단양 지나 죽령역 또아리굴이 그런 난선형 궤도입니다.
이곳 또아리굴의 길이는 6km, 열차는 터널 속을 뱀똬리처럼 빙돌며 나아가죠.
해방 이듬해 서울에서 출발한 안동행 열차는 객차 6량을 달고 있었습니다.
기차가 또아리굴에 진입하고 얼마 되지않아 고장으로 멈춰섰고.
기관사들은 기차가 움직이질 않자 출력을 높이기 위해 영화 타이타닉 기관사처럼 더 많은 석탄을 화덕에 집어넣었습니다.
금방 터널 속은 이산화탄소와 연기로 가득차고 말았죠.
비까지 심하게 내려 결국 45명의 사람들이 질식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