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발디를 들으면서 마네의 그림을 본다고 적어놓고 보니 별로 연관성이 없는 조합처럼 느껴지네요.
그렇다면 갑자기 왜 비발디와 마네가 ? 이런 궁금증이 생길 수 있겠지요?
사실은 비발디는 어제 문화사 수업하는 중에 차례대로 음악가에 관한 글을 읽고 유투브에서 바로 음악을 찾아서
읽는 중에 마침 비발디를 읽는 날이라 아이들에게 음악 올리는 법을 알려주었답니다. 그랬더니 한 번의 설명으로
바로 척척 찾아서 올리고 한 번 더 올려도 되는가 아주 적극적으로 달라들어서 음악을 올리는 바람에
행복한 왕자의 카페에 비발디 음악이 풍성하게 깔리게 되었지요.
살아야 할 이유라는 제목으로 한국어로 번역된 강상중 교수의 책을 작년 일본 여행에서 일본어 책으로 구했었습니다.
올해 드디어 일본어 시간에 함께 읽고 있는 중인데 마침 소세끼, 베버, 그리고 오늘은 마네와 벤야민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람이 동시에 언급이 되어서 그렇다면 다음 번에는 벤야민의 글을 일본어로 읽어보면 어떨까? 의견을
냈는데 적극적인 반응이 없어서 주춤하게 되더군요. 아마 벤야민은 한국어로 읽어도 어렵다는 선입견이 작용한
것이 아닐까 싶네요. 사실은 외국어로 읽으면 오히려 몰라서 더 정신을 집중해서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을 수도 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강상중 교수의 글에서 만난 두 명의 화가, 첫번째는 뒤러였습니다. 그의 자화상을 독일의 미술관에서 보았을 때의
소감이 인상적으로 남아 있었거든요. 물론 마네의 경우는 그런 개인적인 인상을 피력한 것은 아닌데 제 안에서
19세기 모더니티의 수도인 파리에 관한 글을 읽어보고 싶다고 마음을 먹고도 아직은 이상하게 시도하지 못하고
있는 여건이 신경쓰이던 차에 마네가 나오니 앗 하고 연결이 된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화가의 그림과 인연이 생기는 것도 사람마다 다른 경로를 통하는 것이겠지요?
제게 마네는 로마에서의 우연한 만남으로 연결됩니다. 로마에 여행갔을 때 시간이 빠듯한 중에 우연히 길에서
마네 특별전의 포스터를 만났습니다. 앗, 로마시내를 더 다녀야 하나, 아니면 이 전시를? 고민하다가 언제 이런
전시를 볼 수 았겠나 싶어서 과감하게 들어간 전시장, 초기부터 대표작에 이르기까지 전시장을 가득 메운 그림에
놀라서 정말 오랫동안 그 곳에서 마네를 처음으로 제대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 번 진하게 만나고 나니 마네는 이제 더 이상 제게 낯선 화가가 아니라 만나면 반가운 그런 화가가
되었지요. 오늘도 글속에서 아주 잠깐 언급된 것이지만 제겐 마치 오랫만에 만난 친구처럼 갑자기 다시 그의
그림을 찾아서 보게 되는 묘한 공명이 생기는 겁니다.
이 그림을 보니 그녀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 생각나는군요. 지난 번 책방에서 만나고 망서리다가 언제 이 책을
읽을 여유가 생길까 싶어서 슬그머니 내려놓았는데 오늘 이렇게 그림속에서 만나고 보니 이런 , 언제라도
소설이 읽고 싶은 날, 꺼내서 읽을 수 있으련만 그 때는 왜 내려놓았을까, 다음 번에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는
보장도 없는데 하는 아쉬움이 생기는군요.
비발디와 마네를 이어서 듣고 보다 보니 앗, 오늘 밤 실제로 들어보고 싶었던 곡은 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브람스의 인터메쪼였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