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없지만 예전에 소장하고 있던, 한국현대사 시리즈 중 제5권 <광복을 찾아서>
마지막 장에, 이 책을 마무리 지으면서 사학계의 원로이셨던 전 고려대 김성식
교수가 쓴 글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무척이나 인상 깊었던 구절이라, 그 부분만을
따로 메모했었는데 그대로 옮겨볼게요.
‘일제 강점기’ 35년여 간의 역사를 기술하면서, 민족을 배신하고 변절한 지식인들을
회고하며, 《바이블》에 기록된 특정 단어의 종교적인 의미를 빌어 지식인의
정체성과 그 시대적 소명을 다시 확인해보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지극히 종교적인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지만 한 번 의미를 되새겨 볼만한 내용이라서 소개합니다.
『고난과 잔존자殘存者』........
영어에 <렘넌트Remnant>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보통 대자大字로 씌어 지기 일쑤인데
뜻은 ‘잔존자’ 또는 ‘남는 자’를 의미한다. 남는다고 하여서 몇 사람이 나가고 남는다는
뜻이 아니라, 좀 더 깊은 종교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말이다.
이스라엘 종교나 그리스도교에 있어서는 환란과 핍박 중에도, 또 모든 사람이 바알Baal
신神에 절한다 하여도 하느님의 뜻을 굽히지 않고 신앙에 변절하지 않는 사람이 남게
마련인데, 그 수는 지극히 ‘적은 수’라고 하였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 <잔존자>, 남는 자를 높이고 영광의 자리에 참여케 한다는 것이다.
주를 위해서 ‘남는 자’ 그는 구원의 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다.
<고려대 교수, 김성식>
야곱아, 나는 기어이 너희를 모두 모으리라.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반드시 모아들이리라.
《구약, 미카서 2장:12절》: 가톨릭 성경
Yes, I am going to gather all Jacob together,
l will gather the remnant of lsrael,
.......................
《MICAH 2:12》
THE JERUSALEM BIBLE: 가톨릭 공인 영어성경
잔존자! .......
영어의 ‘Remnant’를 말하며 ‘나머지, 자투리, 우수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도 하지요.
신학은 영역이 넓고 깊은 학문으로 저는 영성신학(靈性神學, Theology of Spirituality)
에는 관심이 있지만, 《성서신학》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기 때문에 이 단어의 신학적인
의미와 배경에 대한 설명은 무리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
― 성서의 ‘남은 자의 사상’에서 유래된 말로 모든 풍파風波와 시련과 박해와 함께 온갖
고통을 견디어내고 끝까지 ‘남아있는 자’, 즉 온 세상이 그리스도를 버려도 끝까지
그 곁에 ‘남아있는 자’ 를 말한다.
― 하느님은 그 백성인 이스라엘이 스스로 지은 죄악과 우상숭배 때문에 재앙과 멸망을
받게 되었을 때 과거 그들 조상과의 약속을 기억하고 언약의 사람들을 남겨 두셨다.
이들 몇몇 ‘남은 자’들을 통해 이스라엘은 회복되었는데, 바로 이게 성서에 흐르고 있는
‘Remnant사상’이다.
― 성서는 미래를 위한 ‘후대’, 시대와 국가의 어두운 앞날을 책임지고 나아갈 ‘남은 자’,
‘흩어진 자’라는 뜻을 가진 단어를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이 ‘Remnant’이다.
(이상은 퍼온 글을 다시 간결하게 정리하고 보충한 것임)
◆ 이 시대의 진정한 <렘넌트> ―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
새누리당에 국정원 대선개입의 진상을 밝힐 국정조사에 나설 것을
청원한 온라인 10만 명의 <서명지>를 전달. (2013년 6월 19일)
“시대의 선구자는 아무나 될 수 없지만, 시대의 방관자는 아무나 될 수 있다.
그 ‘아무나’에 속하지 말자.” 《무명씨》
지난 6월 28일 광화문 촛불 집회에서 대중 연설을 하는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
“지혜로운 사람은 미혹되지 않고 인(仁)한 사람은 근심하지 않으며,
용기 있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知者不惑 仁者不憂 勇者不懼”
《논어 자한子罕 편 28장》
역사에는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 상존하며 강물처럼 흐릅니다. 정의의 길에는
기존세력의 거센 반작용이 있고, 불의의 독주에는 항상 정의의 견제가 있어온
것이 역사의 과정이었으며 언제나 현재진행형입니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신비스러운 물리적 현상 가운데 ‘양극성의 원리’가 있다는데요,
자석의 양극이 서로를 끌어당기듯이 어떤 일이든 자주 되풀이되다 보면, 그
반대 극성極性도 함께 나타나기 마련으로 아마도 균형을 이루고 ‘항상성’을 유지
하기위한 자연계의 법칙이요, 질서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 시대에서 시대로, 기회주의적 변절자들이 생겨나듯이 시대의
어둠을 뚫고 ‘국정원의 대선 불법 개입’을 규탄해서 국민들을 깨워준 선지자적
한 <렘넌트>가 있었지요.
지난 대선 전부터 양심의 사자후를 토해냈던 전직 경찰대 교수 출신 지식인에게서
책에서만 읽었던 선비의 ‘파사현정破邪顯正’ 정신을 생생히 볼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평생 몸담아 왔던 국가조직에서 이탈해 대의를 따르는 <국가 공무원>이
이렇게 진리의 편에 서서 광야의 목소리로 진실을 외친 적이 있었던가요?
음지는 마다하고 햇볕이 잘 쪼이는 양지만 골라 찾아다니는, 기회주의 지식인들이
사회의 정기精氣를 흐려놓듯 이런 참된 지식인의 때에 맞는 용기 있는 행동은
‘빛과 소금처럼’ 한국사회의 부패와 부정한 선거운동을 막아주고, 역사의 방향을
바꾸는 큰 힘을 발휘하게 합니다.
지금 지식인들에게는 <하여가何如歌>가 아닌 <단심가丹心歌>가 시대적 정신이자
요청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바이블》이 말하는
늘 깨어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고, 기성 정치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대중이
새벽처럼 깨어나는 것입니다.
바이런(George Gordon Byron, 1788~1824)
고대 그리스 정신을 사모했던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의 아름답고 함축성 있는
시적인 말에서도 ‘렘넌트Remnant 사상’이 엿보입니다.
“겨울바람에 잎이 다 떨어져 나간 나무에 유일하게 붙어서
버티고 있는 나뭇잎이 고대 ‘그리스 정신’이고, 모자이크
벽화에서 다 붙어있는데 붙어있기를 홀로 거부하고 떨어져
나간 타일 한 조각이 고대 ‘그리스 정신’이다.”
<삼나무 숲>
나무 한 그루, 풀잎 한 잎이 ‘자연생태계’를 스스로 조성해가듯이, 사람 개개인들도
가정과 사회에서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한 존재입니다. 삼나무 숲에서는 <칡넝쿨>
조차도 삼나무 결대로 곧게 뻗어 올라가겠지요.
그러나 숲속의 나무들처럼, 사회의 근간을 구성하고 있는 기성세대들이 만들어놓은
사회생태계가 혼탁하고 비틀려 있다면, 후세대의 ‘새내기’들도 비슷한 가치관을
가지고 굴절된 길을 따라서 자라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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