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턴이란 제목으로 그림을 그렸던 화가가 있습니다. 휘슬러, 그의 그림중 눈길을 끄는 한 점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나들이 왔더군요. 그 앞에서 한참을 서성거렸던 시간을 지나고, 오늘 책속에서 그의 그림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여파일까요?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고 자려고 하는데 그림을 더 보고 싶기도 하고 쇼팽의 연주를 듣기도
하고 싶어지더라고요. 자야 한다는 것은 이성의 명령이지만 역시 감정의 힘이 센 것일까요?
사람의 마음이 움직여야 변화가 있다는 것을 !!
어려운 것은 그것이 언제 오느냐,그런 변화가 올때 어떻게 그것을 에너지로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
수명이 길어지고 한 사람이 일생동안 여러 가지 일을 해야 할 지도 모른다는 시대, 그렇지만 과연 어른들은
아이들을 키우면서 그렇게 멀리 내다보고 아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찾도록 기다려주고 있는가 많이 생각을
하게 되는 요즘입니다 .
그래서일까요? 조금 긴 호흡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어른이 참 귀해보이고, 그런 경우 제가 먼저 다가가게
되더라고요. 거기서 무엇이 나올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런 힘이 타인들에게도 변화를 초래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면서요.
오늘 휴대폰에 중국어, 스페인어, 독일어, 프랑스어, 이런 식으로 무료 앱을 받아달라고 함께 공부하는 아이에게
부탁을 했지요. 중국어를 시작하시려고요? 아이가 놀라서 물어봅니다. 아니 시작한다기 보다 함께 살게 된
조카가 중문과에 들어갔어. 그러니 최소한 4년은 함께 살 조카가 중국어를 공부하게 되었는데 이런 기회를 그냥
보낼 수는 없지, 그래서 하루에 한 문장이라도 들어볼려고. 그러니 찾는 김에 다른 언어도 찾아서 넣어줄래?
덕분에 수업 끝나고 달래하고는 스페인어, 의행이하고는 독일어 앱으로 조금 놀았지만 오면서 생각해보니
넣어달라가 아니라 찾아서 넣는 법을 알려달라고 하는 것이 더 바른 방식이 아니었을까 후회가 되더라고요.
요즘 아이들이 선생님이 못 하고 도망다니는 것에 대해서 한 번 변신해보라고 부추기고 있는데 왜 나는 그것에
응답을 못하고 있는 것일까 싶어서요.
중국사를 읽을 기회가 자꾸 생기고, 중국미술에 관한 좋은 책을 선물받아서 자주 들추어보다 보니 역시 중국여행
중국어, 이렇게 마음속에 여러가지 궁리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이런 끈들이 함께 모여
새로운 계획이 피어나겠지요? 오늘 상해임시정부 이야기를 아이들과 하다보니 뉴욕 여행가는 길에 상하이에 잠깐 체류한 경험으로 그렇게도 관심없던 중국어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보람이가 궁금해졌습니다 .그 아이를 그렇게 변화시킨
상하이, 무엇이었을꼬?
이제 프로젝터를 혼자 힘으로 작동할 수 있게 되었고, 스마트폰에 앱을 찾아서 넣는 것을 배우고, 이렇게 한 가지
한 가지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늘려가다보면 그냥 아무 것이나 만져보세요, 그러면 어느 새 새롭게 익히게 되는데
왜 선생님은 기계를 그렇게 무서워하나요? 그렇게 안타깝게 여기는 아이들의 걱정을 덜 날이 올 수 있겠지요?
마지막 두 작품을 보고 나니 오늘은 이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