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환 미술관에서 나오니 이제 베네세 뮤지움에 갈 차례입니다.
처음 이 뮤지움에 대한 정보를 읽을 때만 해도 베네세 호텔안의 그림 컬렉션이 대단하지만 호텔 투숙객에게만
관람이 허용된다고 나와 있었습니다. 아니, 호텔 투숙객이 아니라도 나오시마 섬까지 일부러 미술관에 온
사람들에게 조금 심하지 않나, 그림만 보여주는 그런 제도는 없나 하고 화가 났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서 이 곳에서
그림을 볼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을 들은 순간 아주 기뻐했지요.
들어가자 마자 로비에서 자코메티의 조각과 만나면서 앗 심상치 않네 하는 기분이었는데요 지중 미술관
이 우환 미술관에 비해서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화가들의 작품이 많아서 정말 신이 났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안을 둘러보다가 밖으로 통하는 문이 있어서 나왔더니 벽을 둘러싼 사진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미술관 밖으로 보이는 풍경에 잠시 눈길을 돌리니 역시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장면이네요.
전시장 바깥 공간에 돌을 놓고 누워볼 수 있도록 한 곳이 있었습니다. 그 안에서는 한창 일을 하고 계시는 분이
있었는데 얼굴 사진은 사양하더군요.
그 곳에서 바라본 하늘입니다.
밖에서 살짝 안을 찍어보았습니다, 공간의 느낌을 기억해보고 싶어서요.
삶과 죽음 사이의 다양한 언어가 씌여져 있었습니다 .삶의 반대말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 그것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는 무감각, 무엇인가 하고 싶은 열정이 전혀 생기지 않는 상태, 지나친 절망 이런 것들이 죽음보다는
오히려 더 삶과 반대편에 존재하는 감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시간이 기억나네요.
공간이 구석 구석 볼 곳이 많았습니다 .마치 숨바꼭질 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같은 조각앞이라도 어떻게 그 모습을 찍을 것인가 고민하면 상당히 다양한 사진이 나오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그런 생각을 할만큼 여유가 생긴 것일까요?
조금 전 있었던 공간이 위에서 내려다보니 새로운 느낌입니다.
이 곳의 작품이 마음에 들어서 그냥 나가기 아쉽더군요. 그래서 다시 한 번 마음에 드는 그림들을 보러 가기도
했습니다. 특히 리차드 롱의 작품은 그 곳에서 만나리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해서 더 반가웠지요.
그 다음 간 곳이 베네세 뮤지움의 야외 미술관인데요, 이미 배가 고프다고 배꼽 시계는 우리들 모두를
괴롭히고 있지만 그냥 떠나기는 너무 아쉬운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
역시 조각은 야외에서 보는 것이 제 맛이로구나 감탄하면서 보러 다녔지요.
버스 시간을 놓치게 될까봐 조마조마하면서도 조금 더 조금 더 마음을 끄는 작품들을 따라다녔습니다.
여행중일때의 저 자신은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느낌입니다. 갑자기 행동이 빨라지고 어디서 생기는 에너지인지
상상하기 힘든 집중력과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대상과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기도 하고요.
언젠가 보람이랑 함께 여행할 때 아이가 하는 말, 엄마 여행중의 엄마는 정말 행복해보이네 .
그러게 평소에도 불행하지 않지만 이상하게 여행중의 엄마는 더 행복한 사람이 되는 모양이야
보람이는 이번 겨울 뉴욕 여행을 마치고 , 언젠가 뉴욕에서 일하고 싶다던 마음을 조금 더 굳히게 된
모양이더군요. 어떤 형태로 일하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서 엄마에게 부탁이 있노라고, 미국 드라마 듣는
것으로 듣기는 해결이 어느 정도 되지만 제대로 글을 쓰고 싶은데 한 달에 에세이 두 편 정도 써서 보내면 봐
줄 수 있겠는가 하고요. 이런 부탁이라면 당연히 환영이지요. 무엇을 쓰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고 해서 여러가지
소제목을 줄줄이 적어서 보냈더니 아직은 개인적인 이야기는 쓰고 싶지 않노라는 답장이 왔습니다 .그렇다면
하고 다시 여러가지 가능성이 있는 것들에 대해서 적어보내면서 드는 생각, 이 아이도 여행할 때마다 조금씩
크는구나 하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위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결국 다 못 보고 일단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오는 방향으로
해보자는 이야기가 끝났습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주변을 둘러보니 앗 저쪽에 조금만 더 가면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이 있네요. 그런데
언제 버스가 올지 알 수가 없어서 모험을 할 수 없습니다 .
멀리서 한 장 찍었지만 역시 느낌이 살지 않는군요.
이 순간, 배는 고프지만 버스가 조금 더 늦게 도착하길 바라는 마음이 되어버렸습니다.
문제는 버스가 도착하고 나서의 일인데요, 겨울이라 더 이상 운행을 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한참 기다려야
다음 버스가 온다고요. 이럴 수가, 그렇다면 혹시 택시를 불러 줄 수 있는가 물었더니 운전하시는 분이 그 정도는
가볍게 해 줄 수 있다는 듯이 이 곳 지리를 말하고 다섯 명이 탈 수 있는 택시를 불러주었습니다.
덕분에 아침에 보아둔 우동집을 찾아서 갈 수 있었지요.
이렇게 일찍 문을 닫는 우동집이 있다는 것이 신기해서 저절로 찍게 되네요. 이런 식으로 영업을 하면 두 가지
삶이 다 가능하지 않겠나 문득 드는 생각이었습니다. 현실적으로는 어떤지 잘 모르지만 우선 일하는 시간이
적으면 상대적으로 피로가 덜하고, 가족과 더불어 사는 삶, 개인적으로도 가끔은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는 삶이
가능할 것 같아서 자꾸 영업시간에 눈길이 가더군요.
너무 늦은 점심, 거의 다섯 시 다 되어서 들어갔으니 물론 꿀맛이었습니다 . 문제는 7시에 민박집에서 일식으로
저녁을 차린다고 했는데도 우리는 누구 하나 반대의사없이 일단 먹자는 것에 합의를 보았고 다 먹고 나니
다섯시, 베네세 뮤지움의 야외 조각공원에 다시 가는 일은 물건너 가버리고 말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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