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미술관에서 나와서 다음 코스로 정한 것은 이우환 미술관입니다.
한국에서는 가끔씩 한 두 점씩 보는 경우가 있었어도 특별전에서 한 작가의 작품을 다 보거나 그런
경우가 없어서 늘 궁금한 사람이었지요. 마침 나오시마에 그의 미술관이 안도 다다오의 솜씨로 지어졌다고 하니
당연히 관심이 갈 밖에요.
버스를 타러 내려오는 길에 눈길을 끄는 장면이 있어서 일단 멈추었지요.
평소라면 그냥 지나치고 말았을 장면인데 아마 미술관 주변이라서 더 눈길이 갔는지도 모릅니다.
사람의 심정이란 참 묘하네요. 언제 이 곳을 다시 와보려나 싶으니까 미술관 표를 구입하던 장소에서
구석 구석 돌아다니면서 구경을 하게 되더라고요.
드디어 이우환 미술관에 도착했습니다.
오래전부터 제가 알아왔던 화가와는 상당히 달라진 모습의 작품이 야외에 전시되어 있더군요.
처음 보는 사람들에겐 당혹감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게 뭐야 도대체 !!
들어가는 입구가 묘한 공간 체험을 하게 되어 있어서 재미있었습니다. 몇 번의 경험으로 안도 다다오의 방식을
익혔다고 생각했지만 살짝 변형을 주어서 다시금 공간을 생각하게 하는 힘이 느껴졌다고 할까요?
이 앞에 서는 사람들에 따라서 각각이 하나의 새로운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닌가 재미있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어 저건 뭐지? 올려다보니 그것도 역시 이 우환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어라, 지중 미술관과는 달리 이 곳은 촬영이 허용되나 이렇게 생각하면서 계속 사진을 찍었는데 알고 보니
관리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것이라고 하네요.
이 순간의 기분이 지금도 새롭게 밀려옵니다. 갑자기 시간이 변한 듯한, 낯선 느낌, 그래서 더 설레던 시간이라고
할까요?
같은 시간대인데도 방향을 조금만 바꾸어도 하늘은 다른 얼굴을 보여주더라고요.
나오시마에서 모델이 되는지도 모르거나, 가끔은 의식하면서 모델이 되어준 두 분과의 시간이 새록 새록
느껴지네요.
안에 들어서니 이 우환의 초기 작품에서 후기까지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미술관을 누가 세우게
되었나, 개인이 자신의 미술관을 위해서 의뢰를 한 것인가, 이 작업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나 이런 관심사를
물어보려고 하자 처음 만난 여직원은 자신은 오늘 처음 근무를 하게 되어서 잘 모른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을
불러다 주었습니다. 그녀는 훨씬 상세하게 답변을 하더군요. 그래서 큐레이터인가 물었더니 이 미술관 재단의
직원이라고 합니다. 자신은 근무한지 일년째라고요. 하루와 일년의 차이가 이렇게 크구나 실감하던 날,
그녀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이 우환자신의 발의로 된 미술관이 아니고 일본에서의 모노 크롬 회화의 선구자로서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 만들어진 재단이라고요. 그러나 이 우완 자신은 미술관 건립에 썩 우호적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작품을 대하는 사람들이 선입견을 갖는 것도 싫어하여 제목을 비롯한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는
방식을 요구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지요. 이 이야기가 제게 준 기쁨이란 말로 표현하기 어렵네요.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서 오는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오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미술관을 나와서도 바로 다른 곳으로 가기가 내키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여행객은 떠나야 한다는 것
항상 갈등을 느끼는 지점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