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늘 나이에 관해서 다시 생각해볼 기회가 생겨서일까요?
갑자기 호로비츠 연주를 찾아서 듣고 있습니다.
한 가지는 어제 밤 잠깐 집에 들렀다가 간 동생 부부, 그 중에서도 제부가 한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시골에서는 50이 조금 넘은 그에게 총각 혹은 젊은이라고 할 만큼 80이 넘은 어른들도 현역에서 어떤 식으로든
일을 한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제게도 만약 나이가 들었다는 의식이 들어서 신경이 쓰인다면 시골로 내려오라고
언제라도 환영한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던 동생 왈, 그런데 언니는 일을 못해서 곤란하다고 딱 잘라서 말을 하더군요. 그건 그렇구나
손으로 하는 일에 무능한 제겐 농촌은 어떻게 보면 어울리지 않아서 폐가 되는 그런 곳이 될 수 있을 것 같긴 하네
그래도 그런 말을 들으면서 한가지 느낀 것은 몸이 아프다고, 몸이 회복되는 기간이 길어진다고 지레 마음이
위축되는 이런 현상의 근저에는 무엇이 있을까 깊게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12월 첫 주 금요일 음악회가 있어서 기분좋게 기다렸지만 오늘 하루 먼 길 다녀오면 나아가던 몸이 덧날까 걱정이 되어서일찌감치 표를 노니님께 선사하고, 하루를 조금은 느긋하게 보냈습니다. 중간에 지혜나무님, 수빈샘 만나서 진하게 도서관의 앞 날에 대해서 상의하느라 다시 진을 빼긴 했어도 언젠가 꼭 해야 할 이야기였으니 그건 꼭 필요한 시간이었지요.
오늘 여러가지 일이 있었군요. 생각해보니
아침에 걸려온 전화 070인데 낯선 번호라서 누굴까 궁금해하면서 받은 전화는 미국에 있는 민경이 어머니
옥아씨였습니다. 오랫만에 안부 전화겸 1월 말이면 들어오게 되어서 혹시 필요한 책이 있는지 물어보려고
전화하신 것 같더라고요. 외국에 가는 사람들에게 책 노래를 부르다보니 아무래도 기억을 하시게 되는 모양이고요
그래서 민경이나 민준이가 한국에 와서 보게 될 만한 책, 그런 것을 구해오시면 함께 볼 수 있다고 하다가
갑자기 생각이 나서 부탁하게 된 것은 아이들에게 철학, 과학, 그리고 음악에 관해서 재미있게 설명해주는 책을
구해다주십사 부탁을 했습니다. 어떤 책과 만나게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물론 전화를 통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 것도 좋았지요. 돌아와서 민경이네 가족이 풀어놓을 이야기보따리
여행담, 서로 다른 시스템을 비교하면서 그들이 느꼈을 충격이나 감회등도 기대가 되고요.
함께 보고 있는 그림은 지난 번 게인즈보로와 더불어 영국 회화의 거봉이라고 할 수 있는 레이놀즈입니다.
다시 이야기를 나이로 돌이켜보면 오늘 쉬엄 쉬엄 이런 저런 일을 처리하고, 드디어 집으로 들어오는 길
혹시나 해서 염색하는 곳에 가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막 문을 닫을까 말까 망서리던 중이었던 주인장께서
마음을 정하고 들어오라고 하더군요. 그녀와는 일년 정도 그곳에서 만나서 머리를 맡기고 있는 중인데요
손님이 없어서일까요? 갑자기 이야기삼매경에 들어가서 한 사람의 인생이 확 펼쳐지는 날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압권이었던 것은 제가 목사 사모나 목사가 아닌가 생각했다고 말하던 지점이었지요.
어, 목사 사모라니요, 혹은 목사라니요?
아마 가끔씩 차례를 기다리면서 읽고 있던 책들을 그녀는 성경책이라고 느꼈던 모양이더군요.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그건 그렇고 그녀는 50대 중반인 지금도
70 중반인 어머니가 즐거운 마음으로 담궈주는 김치를 받아서 먹는데 어머니가 아직도 농장일을 거뜬히 해내고
계신다고 하더군요. 아무리 기계가 도와준다고 해도 상당히 많은 땅을 일구어내시는 것을 보면 농촌에서의
나이에 대해서 어제 밤, 오늘 계속 연타로 얻어맞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하고 저도 정신이 확 나더군요.
며칠간 빌빌거리다가 역시 소설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골라본 것이 단테의 비밀서적이었습니다.단테 학자가 학문적으로는 다 담지 못한 내용을 소설로 썼다고 하는 처음 보는 제목의 소설을 단테라는 이름 하나로구해놓고 못 보고 있다가 어제 낮 시간 자는 일도 힘이 들어서 사부작 사부작 읽기 시작했는데요 역시 처음에는 몽롱한약기운에 제대로 읽기 어렵다가 갑자기 어느 순간 잠이 확 달아나면서 책에 몰입하게 되었습니다.결국 오늘 아침까지 다 읽고 나니 오랫동안 덮어두었던 단테의 신곡 강의를 다시 들추어서 읽게 되었지요. 몸이 회복신호를 보낼 때 이상하게소설을 통해서 길이 보이는 몸이라니 이래서 사람의 몸 깊이 새겨진 흔적이란 무서운 것일까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되는군요.
금요일 밤의 마지막 선물은 쪽지를 통해서 그리고 행복한 왕자 카페를 통해서 제게 인사를 전한 museaes님이었습니다
작년 옆 샘을 통해서라고 하는 것을 보니 그녀는 선생님일까요? 아직 잘 모르지만 글을 소개받고 그림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갖게 되었다는 그녀, 이번 겨울에 나오시마에도 가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묘한 인연이 느껴지더군요.
제가 좋아서 쓰는 글이 누군가에게 그림과 친해지게 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신기합니다.
40살이 되기 전에는 미술관이라곤 제대로 가 본 적도 없었던 사람이 그림에 멀미가 날 정도로 많은 미술관에서
당황하고 힘들었던 기억으로 인해 그림을 보기 시작한지 벌써 15년 세월, 그동안 참 다양한 그림을 보고 그림에 관한
책을 읽고 미술관에 다니던 날들이 떠올랐습니다 .늦은 것은 과연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날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또 한가지 생각나는 것은 염색방에서의 긴 이야기중
별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 제 쪽에서 ) 상대방의 이야기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한없이 이야기가 이어질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덕분에 가래떡까지 얻어먹고, 즐거운 시간이 되었습니다.
기질적으로 너무나 다른 사람들 둘이 앉아서 그렇게 오랜 시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도 놀라운 경험이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