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면서 일본 여행기 한 권, 그리고 하이쿠와 우키요에, 그리고 에도 시절이란 책을 골랐습니다.
드디어 도쿄 여행이 가까워지니까 예전에는 무심코 보던 책을 일부러 꺼내서 보게 되네요.
오늘 낮에 한가한 시간에 소리 내서 하이쿠를 읽어보다가 이왕이면 일본어의 뜻을 맛보고 싶어서 원어로도 읽게 되었는데요
물론 한글로 번역을 해놓고 원본도 실어놓은 편집자의 배려로 이런 것이 가능하게 된 것이지요.
하이쿠와 더불어 눈에 익숙한 그림들이 여러 편 소개되어 있어서 동시에 두 가지를 즐기는 시간이 되긴 했지만
그림을 찾아보고 싶어도 화가 이름을 영어로 제대로 알지 못해서 검색이 어렵다는 것이 문제로군요. 그래도 호쿠사이는 익숙한
이름이라서 역시 찾기가 쉽더라고요.
몸에 닿은 시원한 바람이 좋아서 집에 들어오는 길,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바람을 즐기다가 들어왔더니
오랫만에 찾아서 듣는 조슈아 벨의 바이올린 소리도 좋고, 그림을 보는 느낌도 그만이네요.
그렇다면 확실성을 우위에 놓고, 마치 몸은 정신에 방해가 되는 요소인 것처럼 취급한 근대의 서양적 사고는 과연 합당한 것인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군요. 급습한 더위에 빌빌거리던 시간들을 생각하면서 제 일상에 닥친 변화에 대해서 많이 곱씹으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나를 구성하는 요소란 무엇인가 ,과연 그것은 고정되어 있는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자신의 허약함과 변덕에 많이 허용적이 된 것도 아마 이번 여름의 큰 변화중의 하나가 아닌가 싶더라고요.
아직도 이전의 생활로 잘 돌아오고 있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갑자기 고무줄이 끊어진 사람처럼 어딘가에서 비어가고 있는 것은
왜일까, 몸이 무겁다고 느끼면서도 계속 음식을 먹고, 운동은 생각속에서도 멀리 하고 있는 이 기현상은 무엇인가,
한동안 그렇게도 열중하던 악기 연습도 덥다고 쉬기 시작한 이래 한 달을 거의 손도 못대고 있는 중이지요.
물론 눈 앞에 꼭 기일안에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일이 있어서라는 핑계가 있기는 하지만 연습을 못 할 정도로 급박한 일이 아닌데도
한 번 느슨해진 마음을 다잡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깊게 느끼고 있는 중이지요.
완전히 손을 놓을까봐 두려운 마음에 음악학원에 가서 한 달만 쉬겠노라고 인사하고 다음 달 등록을 미리 했습니다.
그런 끈이라도 있어야 할 정도로 나의 음악에 대한 태도는 약했던 것일까 갑자기 헛 웃음이 나오던 날이 생각나네요.
그렇게 여러가지를 버려두고 살다가 날씨의 변화에 따라 몸에서 다시 모락모락 생기는 기운을 느끼면서 얼마나 놀라고 있는지 몰라요.
몸과 정신의 밀접한 연관관계에 대해서.
고요함이여
바위에 스며드는 매미의 울음
바쇼의 하이쿠 한 수 적어놓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