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새벽 눈을 뜨자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대로 일어나서 간송미술관에 가야 하나,아니면 그냥 자야 하나?
일요일 오전말고는 아무래도 간송미술관에 갈 수 있는 시간이 없는데 일년에 두 번의 전시를 기다리는 편이라서
이번에는 그냥 넘어갈까, 아니 그래도 가서 새로 나온 작품을 보고 싶어, 갈등상황이었거든요.
해마다 전시를 찾는 인파가 늘어서 지난 번에는 도착하고 나서 한 시간 이상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던 기억이 있어서
도대체 어느 정도 일찍 도착해야 무리없이 들어갈 수 있나 최대한 생각을 하고는 제겐 있기 어려운 일을 벌였지요.
7시 조금 넘은 시간, 만약의 경우 읽을 책과 mp3 파일을 챙겨서 떠났습니다.
전 날 음악회, 그리고 늦은 시간까지 여러 가지 일을 하다보니 새벽 3시 조금 넘어서 잠을 잔 관계로 몸은 아직도 깨어날 기미가 없습니다.
4호선에서 내렸을 때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몰려서 올라가는 것을 보니 약간 불안한 느낌이더라고요. 이 많은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그렇다면? 아니나 다를까 9시 조금 넘은 시간 간송미술관의 줄은 전 해에 10시 조금 넘어서 도착했던 날보다 오히려 더 길더군요.
저는 강유원의 통치론 강의를 한 곳에 서서 그렇게 오래 들어본 날이 처음이었을 정도로 오랜 시간을 기다린 끝에 간송미술관 안으로
들어가면서 본 시각이 11시 20분, 2시까지는 돌아와야 하는데 과연 작품을 제대로 볼 수 있나 걱정이 될 정도였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서도 바로 입실이 되는 것이 아니고 거기서도 줄을 서서 앞사람들이 먼저 들어가길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라서요.
그래도 줄서서 기다리면서 강의를 듣고 있는데 위에서 반가운 얼굴이 내려오네요. 캐롤님, 오랫동안 못 ㅂ보던 그녀가 둘째 딸과
걸어내려오고 있더라고요. 물어보니 8시 30분에 도착했다고요.
그녀와 여행 이야기, 앞으로 건축사 참석하라는 권유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는 헤어졌습니다.
파일속에서 만난 스티븐 제이 굴드 이야기덕분에 진화론을 자세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세계사의탄생이란 책을 소개받고
그렇다면 이 책을 머릿속에 입력해놓아야지 생각하던 중 드디어 안으로 들어갈 차례입니다.
마음대로 이층부터 올라가는 것도 곤란한 그런 상황, 안에서도 사람이 너무 많아서 줄 서서 차례로 보아야 하는 모양입니다,
이 모든 불편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역시 안으로 들어가니 밖에서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과 더불어 마음은 이미 그림속으로 걸어들어가게
되더라고요.
간송 서거 50주년기념 전시라는 이번 진경산수 회화대전의 메인은 정 선이었습니다.
그의 그림을 여러 차례 보았지만 이번 전시가 가장 풍성한 느낌이 들어서 한 번 두 번 세 번 , 기회를 보아서 그의 그림을 여러 차례
살펴보았지요.
조선 시대 회화의 도판을 마음대로 갖다 쓸 수 있게 허용한 곳을 못 찾아서 대신 아침에 로스코 그림을 보고 있었답니다. 올리고
있는 그림은 전부 로스코인 사연입니다.
1,2층에서 만난 정 선, 김 홍도, 그 중 유난히 눈길을 끄는 김 홍도 작품은 오래 기억속에서 출몰할 것 같은 그림이었습니다.
그리고 정 선이 메인이라면 가장 맛있는 디저트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유 덕장의 대나무였습니다. 그의 그림을 유난히 좋아하는 제겐
숨은 보석을 발견한 날 같은 설레임이 있는 날, 불편은 눈 녹듯 사라진 날이기도 하고요.
최 북의 새로운 그림 , 심 사정의 그림중 낯선 그림을 발견한 것, 그리고 이 인문의 그림을 새롭게 만난 것도 기억할 만한 날이었습니다.
문제는 그림을 다 보고 나니 도저히 2시안에 일산에 도착하기 어려워서 쫑마마에게 연락해서 시간 약속을 바꾸고 지하철에서 모자라는
잠을 보충했어도 역시 몸에 쌓인 피로가 말끔하게 물러가기엔 시간이 모자랐던지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집에 들어오니
정말 양치질할 기력도 남아 있지 않더라고요.
그래도 양치질도 못하고 쓰러져서 잔 덕분에 아침에 일어나니 어제 밤 집으로 들고 온 아이세움의 세 권의 책, 붓으로 조선 산천을 품은
정 선, 조선의 미인을 사로잡은 신 윤복. 조선의 풍속을 그린 천재 화가 김 홍도 이 세권의 책을 뒤적일 기운이 생겨나네요.
이미 본 책이어도 볼 때마다 새로운 아이 세움의 그림으로 만나 세게의 미술가들 시리즈 , 간송에 아직 못 가본 사람들에겐 미리 읽어도
다녀와서 읽어도 좋은 책이라고 강력하게 추천할 수 있는 책이랍니다.
그나저나 10월의 간송은 도대체 몇 시에 도착해야 하나 고민이로군요. 보지 않을 권리도 있지만 이상하게 간송 전시는 그렇게 되지
않아서요. 줄서서 기다리고 있는 중 뒷 줄에 서 있는 한 여자분이 동행에게 설명을 하더라고요. 간송미술관 전시가 있는 중에는 다른
갤러리에서 가능하면 전시를 기획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더라고. 이렇게 많은 인파가 모이니 다른 전시까지 갈 여유가 없는 것 아닐까
하고요. 사실인지는 모르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같은 전시를 보러 사방 팔방에서 모여든다는 것, 가장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전시이기도
하고요. 미술관측에서 전시에 관해서 더 고민하고 조금 덜 기다리면서 미술관의 보물과 만나는 방법을 고민해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