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멀어지면 질병에 가까워진다.”
《괴테》
자주 가던 두 병원의 젊은 의사들께서 진료 중 저에게 들려주신 말들입니다.
1. 내과 전문의 말,
(질병에 의해서라면) “사람은 결국 암으로 죽거나, 혈관이 막혀 죽게 됩니다.”
(2011년 통계로 한국인의 사망원인 1위는 <암>, 2위가 <심혈관질환>이고, 전 세계
사망원인 1위는 <심혈관질환>인 것으로 언론보도: 2013년 9월 10일자)
문득 이 말을 들으니 평상시 무심했던 건강한 삶을 위한 생활습관과 동물성 기름기
를 경계하는 식생활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다시 들게 되었습니다.
‘병’이라는 것은 사람에 따라 유전적인 영향에 의해 발병할 수 있지만 자신의 오랜
좋지 못한 습관이 쌓여서 생기게 되는 경우도 훨씬 더 많기 때문이지요.
또한 평소에 운동을 멀리한 몸과 정신의 허약함 때문에 내면적 번뇌를 더 심각하게
불러일으킬 수도 있겠습니다.
고대 그리스 시인 시모니데스는 “적어도 내 느낌으로는 인간에게 있어서 건강
만큼 더 훌륭한 재산은 없다.” 는 말을 남겼다고 하는군요.
‘사람의 운명은 하늘에 있지 않고 양생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있다.’
‘크게 성내고 크게 탐내고 크게 취하는 것은 참된 기력을 잃게 된다.’
‘평상심을 간직하라.’(감정을 늘 조절하고 절제)
‘늙은 뒤의 섭생은 가난해진 뒤에야 돈을 모으려는 것과 같다.’
‘음식은 우리의 몸이자 정신이다.食則身 身則心’
‘명의보다 훌륭한 의사는 음식과 수면과 운동이다.’
‘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이 누구인지를 결정한다.’
‘무엇을 먹는가가 당신의 건강을 결정한다.’
‘오늘 그대가 먹은 음식이 내일 그대가 된다.’
‘설탕을 섭취한 만큼 병원비가 들게 된다.’
아주 오래전부터 동 ‧ 서양인들에게 잘 알려져 온 <양생법>의 기본 중 일부이거나
현대의 의사들이 말하는 주의사항입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이 명심해야 할 경구가 여기 있는데요,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라는 <바이블> 말씀입니다.
현대인은 무한 경쟁이라는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에 매몰되다보니 돈을 벌기 위해
생명을 과잉 소모시키는 게 일상화되었기 때문이겠습니다.
사람의 수명과 건강은 본래 운명적이지 않고, 평소에 섭생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의해 결정된다는 게 맞을 겁니다.
현자賢者는 도에 따라 양생을 하고, 양생을 하는 사람들은 현자라고 볼 수 있겠죠.
아무래도 고비용의 <정기검진>보다는 평상시 적절한 운동과 소박한 <섭생攝生>을
지키는 생활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절제와 운동을 통한 좋은
생활습관은 건강하고 아름다운 ‘좋은 몸’을 만듭니다.
사람에게 있어 건강을 잃는다는 것은 삶과 더불어서 미래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며,
존재의 이유와 그 사람만이 간직한 고유성도 함께 사라지게 되는 거라고 할 수
있겠지요.
“건강은 건강할 때부터 지켜라.” 우리가 항상 되새겨서 들어야 할 귀한 말입니다.
2. 피부과 전문의 말,
(비듬 때문에) “강박 관념을 갖기 보다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시고 약을 복용하시면서
‘병을 관리하는’ 쪽으로 신경을 써 주세요. 사람에 따라서 비듬에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사람이 있고, 환자분 같이 체질적으로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지요.
머리를 감을 때에 두피를 강하게 자극하게 되면 더 악화됩니다.
그리고 <천연 샴푸>도 크게 도움이 되질 않아요. 옷차림도 상의는 검은색 계통은 피해,
비듬이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색상의 옷을 입도록 하시면서 이렇게 관리를
하시면 되는 겁니다.” .........
가족 간 사랑의 인연을 갈라놓거나 삶의 질을 떨어트리고 또 개인의 일에 대한 몰입을
성가시게 하는, 크고 작은 질병들이 누구에게나 평생을 통해 반복해서 발병됩니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들은 질병이 생기면 ‘완벽하게’ 고치려는 강박증이 있을 수 있지요.
저 역시 그렇답니다.
완치를 위해 이 병원 저 병원을 다니다보면 시간의 소비와 의료비의 지출이 클 수밖에
없는데요, 그런데 여느 때라면 귓가에 스치듯 들렸을 이런 말들이 ‘마음을 움직일’
정도로 깊은 의미로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무심히 늘 보아왔던 꽃이 어느 날! 홀연 눈이 열리면서 자신에게 시가 되거나 특별한
뜻이 담긴 그 무엇으로 다가오듯이 그렇게요.
<전문의>들에게서 진료 중 이런 임상 경험과 권유를 들으니 질병은 ‘싸워야 할’ 대상
이라기보다는, 삶의 여정에서 ‘관리하고 돌보며’ 함께 가야할 불편한 동반자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마치 사람들마다 가슴속에 <진주의 상처> 하나쯤은 품고서 살아가는 것처럼 말이지요.
좋은 일이라 할지라도 지나친 노력이 때로는 과욕이 될 수 있고 병을 고치려는 의지가
‘집착’이 되면 정작 자신이 가야할 길이 더 멀어지게 되어, 개인에게 주어진 생을
위한 자유와 이 삶을 사랑할 여유는 그 만큼 더 적어지고 감소해지지 않을까 합니다.
‘pars sanitatis velle sanari est. 낫고 싶다는 마음도 치유의 일부이다.’ 라틴어의
<격언>대로라면 치료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불필요한 과욕인 무거운 짐 하나를 내려놓아 버림으로 삶의 무게를 좀 더 가볍게
하는 것, 이것은 ‘약간 낮추면 그것이 곧 초탈’ 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일 것이라고
생각해 본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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