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줌인줌아웃

생활속의 명장면, 생활속의 즐거움

아이낳고 철듭니다.

| 조회수 : 1,546 | 추천수 : 26
작성일 : 2005-10-27 15:46:48
올 2월에 딸을 출산했습니다.
울 친정엄니, 딸 낳았다고 처음엔 서운해하시더이다.
지금요? 외손녀 없으면 못살겠다고 하십니다.


울 엄니와 저는 참 많이도 싸웠더랬습니다.
엄니나 저나 모두 성격이 불칼 같고 담즙질이어서,
서로를 용납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의 넉넉치 못한 가정 형편 때문에
10평짜리 서민아파트에서 네 식구가 20년 넘게 살았습니다.
장성해서도 좁은 집에 복닥거리면서 사생활 없이 사는 게 싫었습니다.
특히 집요한 엄니가 이것저것 시시콜콜히 간섭하는게 싫었지요.

그래도 자녀교육에 철저한 엄니 덕분에
울 오빠와 저는 대학 잘 가고, 졸업도 잘 하고 취업도 척 했습니다.
저는 열심히 돈을 모았지요. 집 나갈려구요.
엄니와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고,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어 독립하겠다 했습니다.
당연히 엄니 아부지 반대 엄청 심했지만,
결국 울 엄니는 딸 믿고 아부지 몰래 저 독립시켜줬습니다.
엄니 싫다고 자취하러 나가는 딸에게 이것저것 살림 장만해주시던 엄니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그때는 자유를 쟁취한 기쁨에 들떠 그거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그 후 엄니는 딸이 걱정되서 자주자주 먹을 것 한보따리씩 마련해서 짊어지시고
제 퇴근시간에 맞춰 제 집 앞까지 오셨더랬습니다.
희끗희끗한 머리를 바람에 날리며 뚱뚱한 배낭을 메고 오신 엄니를 보면서
마음이 얼마나 찡하던지요.


얼마 후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혼할 때 엄니가 참 많이 반대하셨고,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결혼 준비하면서, 엄니와 통화할 때마다 많이도 울었지요.
그래도 결국엔 엄니가 져 주셔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아 아기를 가졌습니다.
제 나름대로 잘 알아보고 좋은 병원에 다닌다고 했는데,
엄니는 여의사냐고 물으시더군요.
제가 다니는 병원에는 여의사가 한명 뿐이고, 친절하지 않다고 해서
좋은 의사 선생님을 골라 진찰받고 있었거든요.
아니라고 했더니 병원을 옮기라, 여의사로 바꾸라시며 집요하게 또 시작하시더군요.
전화할 때마다 그 이야기 하시면서 심하게 말씀하시길래 전화를 끊고 연락을 하지 않았지요.

임신 막달이 되어, 아무래도 안 되겠어서 먼저 전화를 드렸습니다.
엄니는 그동안 미안하고 걱정되고 해서 계속 우셨답니다.
담날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역시 먹거리 한보따리 장만해서
직장 앞으로 가지고 오셔서 저 만나보시고는,
딸 집에 가면 폐가 된다며 저 택시태워 보내시더군요.


아들 기다리시던 엄니, 딸 낳았다고 아쉬워하시더만
아기 얼굴 한 번 보시더니 그런 말 다시는 안 하십니다.
그리고 산후 뒷바라지 해 주시고,
직장 다니고 있는 저 대신 울 딸 봐 주고 계십니다.
집이 멀어 주중엔 친정에 있고, 주말에만 데리고 오는데
주말에 이틀 보지 못하는데도 보고 싶다고 안타까워하십니다.
울 딸 덕분에 튼튼하고 어여쁘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주중에 너무너무 아기가 보고 싶어 수요일에 한번 가서 자고 오는데,
그때마다 손에 물 한방울 묻히지 못하게 하시고
당신은 새벽에 일어나서 주부습진때문에 따가운 손으로도 따뜻한 밥 해 주십니다.

딸을 낳아보니 엄니가 제게 어떻게 해 주셨는지가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지나쳐서 표현이 세련되지 못했던 것이었는데,
그것을 철없던 저는 간섭이라고 생각했고 귀찮게 여겼던 것이지요.

이젠 엄니도 많이 부드러워지셨고
결혼 반대하시던 사위도 아들처럼 여기십니다.
지금은 아기 보시느라 이곳저곳 아프신데,
죄송스럽고, 또 고맙습니다.

울 엄니 오래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사랑해아가야
    '05.10.27 4:25 PM - 삭제된댓글

    눈물이 핑... 저도 어찌어찌해서 부모님을 떠나서 서울생활을 처음 시작했을때 정말 독립하려고 참 엄마한테 모진말도 하고 그랬는데 그런딸 덩그러니 혼자 남겨두시고 가시면서 버스안에서 몰래몰래 눈물흘리시는 모습을 보고서 참 많이도 울었습니다... 가슴이 따뜻해지고... 한편으로는 가슴이 저리네요 엄마한테 전화해야겠네요...

  • 2. 프리스카
    '05.10.27 5:17 PM

    저 자랄 때도 친정엄마 마음에 안들 때가 종종 있더니만, 제가 엄마가 되고보니
    저 역시 또 잘한다고 해도 딸 마음에 안드는 별 수 없는 엄마더군요.
    너도 시집가서 애기 낳아봐야 철들거야 라고... 시집은 안간다니 모성애를 언제 알까요?

  • 3. 지우엄마
    '05.10.27 5:21 PM

    정말 그런것같습니다.
    여잔 결혼하고 아이낳고 기르면서 철이 많이든다는말...
    살아보니 알겠더라구요.
    어머니께 더욱 잘해드리셔요
    아가가 참 예쁘네요
    어머니께서 사랑하지 않을수 없겠네요^*^

  • 4. 밍밍
    '05.10.29 7:37 PM

    아이 낳은지 한달이라. jinny 글이 가슴에 확 와닿네요.
    아이 낳고 키워보니 울 엄마가 나 키우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런 생각 많이 든답니다. 이쁜 아가랑 행복하세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추천
4102 불꽃축제 사진 2 고고 2005.10.30 1,058 46
4101 새벽에 산에 오르면~~~~~~~~~~~~ 1 기도하는사람/도도 2005.10.30 906 54
4100 사진 하나 시 하나... 2 경빈마마 2005.10.30 900 37
4099 아--가을 3 따뜻한 뿌리 2005.10.29 929 54
4098 바다에도 길이 있습니다. 1 냉동 2005.10.29 904 58
4097 그림으로 자신의 성격을 알아보셔요^^(난 정말 잘 맞던데...).. 7 밤과꿈 2005.10.29 1,336 26
4096 무식한 넘! 4 지우엄마 2005.10.29 973 20
4095 가을이 드러낸 본색~~~~~~~~~~~~~ 2 기도하는사람/도도 2005.10.29 897 54
4094 야뇨증인가요?? 2 머쉬아루 2005.10.28 986 56
4093 진이와의 대화 5 강두선 2005.10.28 1,113 24
4092 해산물이 더 있는데..떨이요^^ 1 다희누리 2005.10.28 1,162 15
4091 싱싱한 해산물좀 들여가세요^^ 2 다희누리 2005.10.28 1,040 16
4090 필요하신 대로 빼가세요.^^ 14 경빈마마 2005.10.28 1,866 9
4089 詩人이 되어야 할 이유!!!<삼각산 산행> 4 안나돌리 2005.10.28 1,878 242
4088 예쁜 꽃다발 입니다. 5 Karen 2005.10.28 1,383 19
4087 이 가을....국화에 취하다... 13 엉클티티 2005.10.27 1,463 28
4086 아이낳고 철듭니다. 4 jinny 2005.10.27 1,546 26
4085 오랜만에 아이와 함께 노래 들어보세요.. 2 뭉게구름 2005.10.27 981 27
4084 아침에 보는 폴 클레 2 intotheself 2005.10.27 968 18
4083 캘리포니아에서 찍어온 양난입니다. Karen 2005.10.27 991 30
4082 우리 둘째가 엄지를 입에 물었습니다 6 정호영 2005.10.27 1,248 34
4081 아들방 베드 스프레드 하나... 7 브리지트 2005.10.26 1,500 8
4080 나도 강금희님따라 얼짱각도로 데뷔!!! 14 안나돌리 2005.10.26 2,170 13
4079 사실주의 화풍~~~~~~~~~~~~~~~ 2 기도하는사람/도도 2005.10.26 903 47
4078 눈으로 느끼는 '난'의 향기- 10 김혜진(띠깜) 2005.10.26 1,128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