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밤 열두시를 넘기기 전에 보기 시작해서 그래도 좀 일찍 끝난 덕분에
잠자기 전에 해금 연주를 틀어놓고 시를 찾아서 읽고 있는 중입니다.
말이 곧 절이라는 뜻일까
말씀으로 절을 짓는다는 뜻일까
지금까지 시를 써 오면서
시가 무엇인지
시로써 무엇을 이룰지
깊이 생각해볼 틈도 가지지 못한 채
헤매어 여기까지 왔다
경기도 양주군 회암사엔
절 없이 절터만 남아 있고
강원도 어성전 명주사에는
절은 있어도 시는 보이지 않았다
한여름 뜨락에 발돋움한 상사화
꽃대궁만 있고 잎은 보이지 않았다
한 줄기에 나서도
잎이 꽃을 만나지 못하고
꽃이 잎을 만나지 못한다는 상사화
아마도 시는 닿을 수 없는 그리움인 게라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마음인 게라고
끝없이 저자 거리 걷고 있을 우바이
그 고운 사람을 생각했다
시를 찾아서
차라리 시를 가슴에 묻는다
발표 안 된 시 두 편만
가슴에 품고 있어도 나는 부자다
부자로 살고 싶어서
발표도 안 한다
시를 두 편 가지고 있는 동안은
어느 부자 부럽지 않지만
시를 털어버리고 나면
거지가 될 게 뻔하니
잡지사에서 청탁이 와도 안 주고
차라리 시를 가슴에 묻는다
거지는 나의 생리에 맞지 않으므로
나도 좀 잘 살고 싶으므로
정희성님의 시를 찾아서입니다.
시인에게는 시가
수랏간 상궁에겐 음식이
화가에겐 그림이
이런 식으로 자신의 마음에 품는 그 무엇이 있겠지요?
오늘 읽은 소설에서 한 늙은 농부가 동학군을 숨겨주면서 들려준 한 토막의 말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옛적에 들었다는 장자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백정의 고사를 말하더군요.
평생 칼을 갈지 않고도 고기를 기가 막히게 잘 써는 백정의 이야기인데요
고기의 결을 찾으면 된다는 것이지요.
백정에게는 고기가
농부에겐 곡식이
그렇게 각자에게 맡겨진 삶에서 결을 제대로 찾는 것.
농부의 전라도 말속에서 담겨나오는 구수한 사투리속에 들어있는
한없이 깊은 통찰에 고개 끄덕이면서 내가 찾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많이 생각한 밤이었습니다.
오늘 밤 보게 된 화가는 이상원님입니다.
독학으로 그림을 그려서 한 경지에 오른 화가이지요.
그 분의 전시회가 갤러리 상에서 열린다고 해서
이번 화요일엔 그 곳과 서울 시립 미술관의 전시에 가보려고 합니다.
오늘 밤 대장금을 보는 중 장금이의 명대사가 한 마디 있었습니다.
다전으로 쫒겨간 장금이가 백번이 구하기 어려운 약재라는 말을 듣고 씨를 뿌려서
연구를 하더군요.
주변 사람들이 말리니 대답합니다.
그러면 저는 백번을 키우는 일을 해보겠습니다.
왜냐고요? 어려운 일이라고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