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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여행기 11 - 드디어 마추픽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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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 31일 드디어 마추픽추로!
어제의 체력소모 + 오래간만의 샤워 + 맥주로 인해 완전히 풀어져서 푹 곯아 떨어졌다가 누군가 일어나라 텐트를 흔드는 통에 잠을 깼다.
떨어지지 않는 눈꺼풀을 억지로 걷어내니 아직 칠흙같은 어둠이다. 더듬더듬 시계를 확인하니 새벽 4시.
잠을 깨워준 셀피 아저씨로부터 건네 받은 따뜻한 마테차를 한잔 들이키고 나니, 그나마 정신이 좀 드는 듯 하다. 그래, 오늘 마추픽추를 보러 가는 거지!
퍼뜩 주변을 둘러보니 온통 구름에 휩쌓여 안개 속에 있는 것처럼 뿌옇다. 게다가 밤새 비도 내렸던 모양이다.
'이거 3박 4일 걸려서 여기까지 와서 보지도 못하고 돌아가게 되는 거 아냐?' 라는 불안감이 얼굴에 티가 났는지, 누군가 날씨는 곧 개일 거라고 얘기해준다.
주섬주섬 일어나 허리를 펴는데 마치 체력장 다음날인양 온몸에서 우두둑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스트레칭으로 억지로 몸을 잡아늘이니 여기저기 온 몸의 근육들이 비명을 질러댄다.
옆텐트 사람들도 엉거주춤 몸을 일으키는 폼들을 보아하니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은 듯.
배낭을 다시 쌓고 짐을 챙기다가 여분으로 가져온 등산 양말과 그 동안 요긴하게 썼던 기내담요를 계속 보관할까 하다가 그동안 맨발로 다니던 셀피 아저씨께 넘겨드렸더니, 너무 좋아하신다.
그동안 빌려썼던 침낭과 매트도 반납하고나니 당장 배낭이 가뿐해진다.
어둑어둑한 가운데 정말 이른 아침식사를 하고 캠프를 나선 게 새벽 5시반.
마추픽추까지는 불과 2시간의 여정이 남았을 뿐이다.
아직까지 구름이 뿌옇게 주변을 감싸고 있어서 안개속인양 한치 앞이 보이지 않지만, 곧 좋아질 거란 말에 희망을 걸어본다.
길은 여전히 오르막. 우리 팀 뿐만이 아니라 다른 여행사에서 온 팀들도 많아서 여러 사람이 줄지어 이동하게 되었다.
걸어가다 보니, 극동 아시아쪽에서 온 듯한 사람이 보인다. 희한하게도 이번 잉카 트레일 하는 동안 그 흔한 중국 사람, 일본 사람을 한 명도 보질 못했기 때문에, 같은 검은 머리를 본 것만으로도 반가워서, 꾸벅 눈인사를 했더니, 상대방도 덩달아 인사를 해 온다. 서로 힘내라는 의미에서 씩 웃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캠프에서 출발한지 1시간쯤 지나서 도착한 곳은 태양의 문이라고 불리는 유적이 있는 고개. 마추픽추에서 보면 잉카의 새해 첫날에 해가 바로 이곳에서 뜨기 때문에 이곳에 유적을 만들고, 저런 이름을 붙이지 않았나 싶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마추픽추를 보게 되는데, 구름이 짙어서 보이질 않았다. 다들 적당히 자리를 잡고 앉아 구름이 걷히기를 기다렸다.
서서히 구름이 걷혀간다.
구름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우루밤바 강. 저 강을 따라 오얀따이땀보까지 열차가 오고간다. 오늘 오후에는 그 열차를 타고 쿠스코로 돌아가게 된다.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마추픽추! 바로 앞에 뾰족한 산의 이름은 와이나픽추
이걸 보기 위해 3박 4일을 걸어왔는데, 감개 무량하다.
마추픽추는 케츄아 어로 '오래된 산'을 뜻한다. 반대로 와이나픽추는 '새로운 산'이라는 뜻.
본래 저 도시의 진정한 이름이 무엇이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마추픽추가 처음 사람들에게 알려진 건 1911년에 미국의 학자인 하이럼 빙엄(Hiram Bingham)이 이 유적을 발견하게 되면서였다.
물론 당시 안데스에 살던 현지인들은 이 유적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대대로 전해지는 조상의 비밀로서, 외부인에게는 함구해오고 있었던 듯하다.
그는 잉카의 마지막왕 뚜빡 아마루가 피신했던 마지막 수도이자 '잃어버린 도시' 뷜까밤바를 찾기 위해 우루밤바 강을 따라 탐색을 벌이던 중, 한 원주민의 안내로, 마추픽추를 찾아내게 된 거였다. 사실 그 이전부터 이곳에는 원주민 2가족이 살고 있었다고 하는데,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결국 이곳은 뷜까밤바가 아닌 걸로 판명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원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스페인의 침략 흔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에서 살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건지..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것이 너무도 많고, 수수께끼에 쌓여 있는 곳이기에 그토록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건지도 모른다.
왜, 그런 말도 있지 않은가.. 여자는 비밀을 숨기고 있는 편이 더 아름답다고..(맞나?)
다시 일어서서 마추픽추로 이어지는 잉카의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점점 더 마추픽추가 크게 눈에 들어온다.
약 50분쯤 더 걸어서, 드디어 마추픽추 초입에 도착. 야마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게 보인다. 워낙에 관광객에 익숙해서인지, 사람이 다가가도 신경도 안 쓴다.
일행 중 몇몇은 아예 긴장이 확 풀렸는지, 풀밭에 드러누워버린다.
이곳이 마추픽추 전경을 찍기에 가장 좋은 장소라고 하는데, 야마들이 차지..ㅡㅡ;
위의 곳에서 찍은 마추픽추의 모습.. 눈물 난다. 내가 진짜 마추픽추에 있는 거지? 여기 와보는 건 아주 어려서부터의 꿈이었는데, 정말 이곳에 서게 될 줄이야..
그동안 같이 동고독락했던 일행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마추픽추에 들어가려면 배낭과 스틱을 짐 보관소에 맡기고, 입장권을 보여준다. 그러면 확인을 하고, 여권이 있으면 여권에 스탬프도 찍어준다^^
사실, 지금 보이는 마추픽추가 유적의 전부는 아니다. 아직도 많은 부분이 정글 아래 묻혀 있지만, 유적 전체의 붕괴 위험 때문에 그쪽은 섣불리 손을 대지 못한다고 한다.
실제로 마추픽추는 해마다 약 1cm씩 사면을 타고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다. 워낙에 경사가 있는 곳에 도시를 만들어 둔데다가, 잉카인들이 구축해둔 배수 시스템이 지금은 완벽히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랜다(건축의 적은 물이다..ㅡㅡ). 일본에서 온 연구팀의 연구결과로는, 유적의 붕괴를 막기 위해 배수시설의 복원 및 정비는 꼭 필요하다고 하는데, 그러려면 마추픽추를 최소 몇년은 폐쇄하고 대대적인 복원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페루 정부 입장으로선 큰 수입원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부분적으로 보수해나가고 있다고 하는데... 걱정이다.
가이드인 오시. 열심히 설명중. 오시가 기대고 있는 문이 사다리꼴 인 것도 역시 내진설계. 건물의 형태나 문의 형태는 모두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사다리꼴 형태로 되어 있다.
계단식 밭
태양의 신전이라고 불리는 건물로 자연석 위에 돌을 쌓아 만든 곳이다.
위에서 바라본 태양의 신전 내부.
새해 첫날 아침에 지나온 태양의 문에서 해가 떠오르면 그 첫햇살이 오른쪽 창문으로 들어온다고 한다.
하지 때는 그 옆의 창문으로 아침 첫 햇살이 비춘다고..
움푹 들어간 골짜기 부분이 아침에 지나온 태양의 문. 너무 멀고 역광 때문에 유적이 잘 안보인다. ㅜ.ㅜ
태양의 신전 하부. 이 안에서도 미이라가 발견되었다. 그래서 무덤으로 추측되기도 하는데..
가장 보존이 잘 되어 있다는 인띠와따나. 어느 유적을 가더라도 가장 중요한 종교 건물이기에 가장 좋은 위치 혹은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앉아 있다.
인띠와따나 내부에 있는 태양을 잡아매두는 기둥.
남미 문명 쪽을 보면 마야나 아즈텍도 그렇지만, 태양 숭배 및 종말론 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경향이 보인다. (마야의 경우, 천문학적인 숫자를 이용한 계산이 엄청 발달해 있었다는데, 이는 세상의 종말의 날짜를 세기 위해서였다고도...)
잉카의 경우에는 태양이 서쪽으로 졌다가 다시 동쪽으로 뜨는 걸 태양이 죽었다가 부활한다고 믿은 것 같다.
사람 또한 태양과 같이 부활한다고 믿었기에 그 그릇이 되는 육체를 미이라로 보존하는 데도 엄청 신경을 썼다(뚜빡 아마루 - 잉카의 마지막 왕- 의 경우, 육체가 손상되는 화형을 두려워해서, 화형을 피하기 위해 사형 직전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것까지 감수했다고 할 정도이니..ㅡㅡ;)
인띠와따나는 태양이 서쪽으로 진 동안 태양을 매두기 위한 기둥으로 태양의 완전한 죽음 - 곧 세상의 종말 - 을 두려워했던 그들의 의식이 표현된 것은 아닌지...
어쨌거나, 몇 몇 건물들은 복원을 거쳐 지붕까지 얹어 놓은 것도 있다. 여전히 주요 건물들의 견고한 벽들을 보면 어이가 없을 정도...
단지, 여기 살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 버린 걸까.. 이렇게 공들여 만든 곳을 버리고..
밝혀지지 않기에 상상의 여지가 더 많고,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곳..
가장 큰 마추픽추의 매력이 아닐런지.. 나 역시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유적의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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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연맘
'05.4.16 10:43 PM첫비행님의 여행담 잘 읽었어요. 꼭 그곳에 가본듯 상세히 알려주셔서 너무 고맙네요.
저도 첫비행님처럼 예전에 마추피추엘 꼭 한번 가보겠단 생각을 했었어요.
동남아, 호주및 뉴질랜드(피지포함), 유럽을 다녀왔고 그다음 목표는 남미의
마추피추였건만 결혼과 함께 영영 꿈이 되어버린곳이네요. 이젠 기회가
주어진다해도 오지여행은 체력이 딸려 엄두가 안나는 곳이네요.
간접적으로나마 맘이 뿌듯합니다.2. calcor
'05.4.16 11:26 PM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숨이 차다고 할땐 저역시 숨이차오르고, 다리가 아프면 나의다리도.....
너무도 가고 싶은곳이기에 ....
언젠가 갈수있을런지...저는 고소증이 있는관계로 항시 그것이 더걱정
다음편 계속 기다리겠습니다.3. 바다여운
'05.4.17 6:56 AM멋진 그림과 자세한 설명이 곁들여진 후기.. 넘 잘읽고 있어요..
"밝혀지지 않기에 상상의 여지가 더 많고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곳"~~
정말 그래서 저도 더 가보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가는 길이 만만치 않아, 직장인의 짧은 휴가로는 감히 엄두를
못낼듯 해요..~~4. 김혜경
'05.4.17 8:36 AM어렸을 때 김찬삼여행기 읽으면서 마추피추에 꼭 가보리라 했었는데..엄두도 못내고 있습니다..어흑...
5. fish
'05.4.17 10:55 PM저도 죽기전에 꼭 가보고 싶은 곳이예요!
6. 여름나라
'05.4.18 12:56 AM바로 옆집(?)에서 16년을 살고 있으면서도 아직 가보지 못한 제자신이 한심스럽습니다.
이제 아이들이 많이 컸으니 겨울방학을 이용해서 꼭 한번 다녀와야겠습니다7. 달콤과매콤사이
'05.4.18 11:59 AM정말로 그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요...
'첫비행'님 덕분에 멋진 여행했어요...8. 첫비행
'05.4.19 1:46 PM여행을 같이 해주시는 분이 많으시니 정말 기쁘네요. 여행기 올리면서 이런 거 올려도 되나.. 하고 많이 망설였었는데.. 얼마 남지 않은 여정 계속 같이 해 주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여름나라님, 자녀분들과 꼭 같이 다녀오시면 좋겠네요.9. 여행
'05.5.10 3:48 PM첫비행님 2004년의 마지막을 마추픽츄에서 보내시는군요 정말 멋지셔요..''
지금 부랴부랴 여행기 찾아서 거꾸로 보고있답니다 ㅎㅎ 그동안 한참을 못들어 왔어요!!
헉! 자연석위에 이어지은 신전 감탄할 수 밖에 없게 만들어요...
다시 한번 첫비행님께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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