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카 트레일 3일째의 오후..
사약 마르까를 나오니 본격적으로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한다. 거의 한여름 같은 무더위. 더더군다나 습도까지 높아 곧 땀이 흐르기 시작해서 결국은 등산 점퍼를 벗어 허리에 질끈 묶었다.
그래도 어제처럼 줄곧 오르막만 있는 게 아니라, 오르막과 내리막이 적당히 섞여서 버틸만 하다.
사약 마르까를 나와 시작된 내리막길을 따라 골짜기로 내려가다 보니, 길 오른쪽으로 작은 유적이 눈에 띈다. 꼰차마르까(Conchamarca) 유적으로 길 옆에 바로 붙어서 위치한 건물이며, 간이 숙소 밑 우체국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꼰차 마르까 부터 가장 잘 보존된 잉카길이 시작된다. 길에는 손질한 돌을 깔아놓았는데, 수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상태가 매우 좋은 편이다. 특히, 산능선의 바위를 뚫어 길을 내놓은 걸 보면 정말 기가 막힌다.
사람들의 발에 닳고 닳아서 맨질맨질 해진 포석들을 보니, 세월의 흐름이 느껴진다.
셀피 아저씨들...
잉카 트레일을 하는 여행사마다 야영장비와 식료품을 운반할 셀피를 고용한다.
셀피의 대부분은 현지 주민들이며, 그들의 대부분은 변변한 장비도 없이, 짐들을 쌀푸대 같은 자루에 잔뜩 넣어진 짐을 끈과 담요로 몸에 고정하고, 항상 우리보다 먼저 도착해 짐을 풀고 야영준비를 해 놓고 기다리고 있다.
맨발에 간단한 낡은 신발을 신고, 비지땀을 흘리며 산을 오르는 그들을 보면 지금 내가 잉카를 본답시고 오르고 있으면서 힘들다고 투정하는 것이 복에 겨운 소리 임을 알게 된다.
그들에게 이 길은 꿈이나 낭만과는 상관없는 생계 수단일 뿐이다.
... 본래 이 길을 만든 위대한 잉카의 후예들일 터인데.... 바로 이 땅의 주인이 그들이었을텐데...
잉카 트레일에서 만나는 세 번째 고개에 다다를 무렵, 드디어 우루밤바 강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추픽추를 보는 데에는 나와 같이 3박 4일 동안 잉카의 길을 걸어서 도달하는 것과, 밑에 보이는 우루밤바 강을 따라 운행하는 기차로 마추 픽추 밑의 아구아 칼리엔테스까지 와서 버스를 타고 올라오는 방법. 두 가지가 있다. 후자의 방법으로는 여행사에서 보통 1박 2일의 여정으로 마추픽추를 다녀가게 되지만, 되도록이면 잉카의 길을 통해 직접 걸어서 와 보는 것이 더욱 의미있지 않을까..
뿌유빠따마르까(Puyupatamrca)
1980년에 새로이 발견된 유적이라고 한다. 그 이전에는 사진에 보이는 유적 위를 지나는 잉카의 길을 통해 마추픽추로 갔었는데, 지금은 당시 같이 발견된 뿌유빠따마르까 아래를 지나는 잉카의 길을 이용하고 있다.
뿌유빠따마르까는 미완성으로 남아 있는 유적이다. 정면에 아래에 보이는 서로 연결된 조그만 사각형들이 샘이자, 의식용 욕조 인듯 하고, 그 위로 계단식 밭들이 있다. 그 밭들 건너 반대편에는 농작물 저장고가 있는데 이런 곳을 완성하지 못한 채.. 주인은 어디로 간 걸까..
이미 버려져 아무도 살고 있지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수로를 따라 물은 흘러내리고 있다.
이제까지 잉카 트레일에서 봐왔던 곳 중에 가장 맘에 드는 곳이었다.
안데스는 사람이 아주 살기 좋은 환경은 아니다. 고산지대에 척박한 토지.. 그러나 그 안에서 예나 지금이나 이곳 사람들은 어떻게든 밭을 일구고, 자연과 싸우기도 하고, 때로는 적당히 타협도 해가면서 살아왔다. 이 곳도 그런 곳 중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유적밑의 신도로(그래봤자 몇 백년 전에 만들어지고 발견된 게 최근이었단 것 뿐이지만^^;)로 접어들자 가이드인 줄리앙이 이제부터 캠프까지는 내리막뿐이라고 말하면서 의미심장(?)하게 웃는다.
그 말에 환호했지만... 잠시 후...
4시간 반 동안, 이런 계단 몇 천개를 내려가야 했다!!!!!!
안데스에는 벌새가 서식하고 있다. 이번 트레일에서 운 좋게 몇 번 볼 수가 있었는데, 푸른 빛과 붉은 빛을 띄고 있고, 몸길이는 대략 5cm쯤?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너무 빨라서 내 카메라로는 도저히 쫓아갈 수가 없어서 아쉽다.
세번째 캠프장인 위냐이와이나 근처의 유적.
계단식 밭에서 재배한 작물을 마추픽추로 공급했다고 여겨진다
위냐이와이나 마을에 있는 유일한 식당에서의 마지막 저녁 만찬
2004. 12. 30 잉카 트레일 셋째날의 위냐이와이나 캠프에서..
어제보다도 더 긴 하루였던 듯 싶다.
아침 6시 기상해서, 치즈 토스트와 계란 그리고 핫 초콜렛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짐을 챙기고 7시 30분에 캠프를 출발.
출발하자마자 두번째 고개를 향한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1시간 쯤 오르자 나타난 건, 유적 [룽꾸라까이] 케츄아 어로 달걀집이란 뜻인데, 둥그런 타원 형의 건물이다.
이 유적에 서니 맞은 편으로 어제 지나온 죽은 여자의 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핫핫.. 까마득하군.
이런 위치 덕분에 감시 초소 겸/ 간이 숙박소 겸/ 우체국 역할을 했다고 한다.
룽꾸라까이를 지나 1시간 반을 더 가니 좀 더 규모가 큰 유적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약마르까(Sayacmarca) 높이 솟은 집이라는 의미의 케츄아 어인데, 말 그대로 산 중간에 솟아오른 곳에서 계곡을 내려다보듯이 자리잡고 있다. 유적 내부에는 종교/군사시설 및, 농작물 저장고, 샘 등이 원형을 보존하고 있었다.
그 이외에 산꼭대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끌어오기 위해 이용한 나무 파이프로 된 상수도 시설이 흥미롭다.
종교 건물들과는 달리 일반 건물은 짓는데 돌과 그 사이에 시멘트 역할의 진흙을 사용했는데, 그 틈으로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가이드의 말로는 그대로 두면 나무가 자라서 유적을 붕괴시키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청소를 해야 한다고 한다.
사약마르까에 가기위해서는 사약마르까 표지가 서 있는 곳의 옆에 난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했는데, 하필 위에서 건전지가 떨어지는 바람에 배낭에 둔 예비 배터리를 가지러 두번이나 왕복을 해야 했다. 헥헥...
사약마르카를 지나니, 다시 하이정글 지역에 접어들었다. 꽤나 습하고 더워서 열대성 식물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처음 보는 야생화가 보일 때마다 사진을 찍다가 야생벌새를 보게 되었다.
예전 싱가폴에 갔을 때 주룽새 공원에서 본 적이 있긴 하지만 야생에서 꿀을 빨고 있는 모습을 보니, 진짜 신기했다.
5센티도 안 될 것같은 몸길이에 날갯짓이 너무 빨라서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색깔을 광택을 띤 푸른색과 붉은 색. 처음엔 왠 커다란 날벌레인 줄 알았다.
어떻게든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지만, 너무 빨라서 찍을 수가 없었다... ㅜ.ㅜ 그래도 벌새가 보인다 싶을 때 셔터를 누르긴 했지만..
(나중 덧붙임: 결국 그 사진을 나중에 확인해 봤는데, 벌새를 찾을 순 없었다..ㅜ.ㅜ)
라몬이 자기는 찍었다고 자랑하는데.. 당신 카메라는 수동식 카메라에 셔터스피드도 빠른 프로용이잖아!!!! 난 자동이라고 것도 디지탈!!
계속 등산을 계속했고, 중간 집결지에서 점심을 먹었다.
아, 이때 점심으로 유까라는 정글감자 튀김이 나왔는데... 머리털 나고 그렇게 맛있는 감자는 처음 먹어봤다.
남미가 감자의 원산지라서, 정말 종류도 다양하고 맛있는 게 많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 성스런 계곡 투어때 갔던 친체로라는 작은 마을에서 나는 감자의 종류만 해도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점심을 먹고나서부터는 잠시 내리막과 오르막이 반복되더니, 곧 산능선을 타고 한동안 평탄한 길이 이어졌다. 길 좌우로는 열대성 우림과 대나무가 우거져 있었고, 역시 가끔 벌새를 볼 수 있었다.
길 상태는 이제까지의 길 중 가장 좋다. 잉카인들이 깐 길로, 바닥에는 잘 손질된 돌들이 평평하게 깔려 있었는데, 세월 탓인지 표면이 반질반질하다. 계속 산능선을 따라가다 두 번 정도는 바위 굴을 통과해서(인공으로 뚫었는지 내부가 반질반질 했다) 드디어 세번째 고개 정상에 도착. 영국에서 샐리와 함께 온 여자분은 몸무게가 좀 있으신 분이어서 무릎에 통증이 오기 시작한 모양이지만, 그래도 모두들 제법 잘 버티고 있었다.
세 번째 고개에서 잠시 숨을 돌리는 데 바로 아래로 또 하나의 유적이 보인다.
뿌유빠따마르까(Puyupatamrca), 농업시설이었을 거라고 추측되는데, 비교적 최근인 1980년에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 이전에는 마추픽추까지 그 유적 위쪽 능선을 지나는 잉카길을 이용했는데, 지금은 그 유적과 더불어 발견된 새로운 길(그래도 몇 백년 되었을 테지만) 이용한다고 한다.
뿌유빠따마르까는 미완성으로 남아 있던 유적으로, 6개 정도가 죽 연결된 의식용 샘과 배수시설이 아름다웠다.
뿌유빠따마르까를 다시 출발한 게 오후 2시. 이제부터는 더 이상 오르막이 없다는 소리에 속으로 얼마나 안심했는지... - 이게 엄청난 착각이었다는 건 곧 알게 되었다. - 갑자기 힘이 부쩍 솟는다.
여기까지는 좋았지...
30분 후.. 나는 룰루랄라 계단을 내려가고 있어다. 영국에서 남자친구와 함께 7개월 계획으로 세계 일주 중인 헤더와 무릎에 통증을 느끼던 여자분을 추월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조금 힘든 모양이었다.
그로부터 30분 후.. 나는 계속 계단을 내려가다가 헤더의 남자친구 죤을 만났지만, 추월하지는 못하고, 죤은 앞서 계단을 내려갔다.
그로부터 다시 1시간 후, 나는 계속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다시 1시간 후, 나는 여전히, 아직도, 계속해서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다리가 풀려서 후들거리고, 발가락에 물집이 잡히기 시작했다. 갑자기 뒤에서 우르르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샤 일행 (오빠 둘, 아샤, 오빠 여자친구) 네 사람이 어제 만났던 라마떼처럼 우르르 구르다시피 뛰어 내려간다.
뛰는 폼을 보니, 내리막에서 속도가 붙었는데, 제어할 힘이 없어서 아예 단숨에 내려가기로 작정한 듯 싶다. (나중에 물어보니 맞더군..)
그렇게 계단 내려가기를 4시간 여...
날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하는데도 길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맘이 급해져서 나도 거의 뛰다 멈추다를 반복하며 내려갔다.
잉카길을 벗어나 안내대로 현지인들이 만든 흙길로 접어들었고, 6시 무렵 드디어 셋째날 캠프인 위냐이와이나(Winaywaina: 영원한 젊음이라는 뜻)에 도착할 수 있었다.
텐트에 쓰러지듯 들어가고 나서 생각나는 건 바로 샤워!!!
3일동안 샤워를 전혀 하지 못했던 것이다. 위냐이와이나에 있는 레스토랑 샤워장을 이용하는 데 5솔을 요구한다.
마침 잔돈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급하게 샐리 아주머니에게 3솔을 빌려 샤워를 할 수 있었다. 따뜻하기보다 미지근한 샤워 였지만.. 샤워가 이리도 고마운 것일 줄은... T.T
샤워를 하고 나니 먼저 도착한 사람들은 이미 맥주병을 부딪히고 있다. 나도 얼른 꾸스꿰냐(페루 맥주, 약간 가볍긴 하지만 정말 맛있다. 세계대회에서 2등했다나 뭐래나...) 한병을 사서 마셨는데..
등산 뒤에 마시는 그 맛이란... 정말 비할 데가 없다.
이제 힘든 길은 오늘로서 사실상 끝이다.
남은 것은 내일 마추픽추까지의 두시간 정도의 여정.
모두들 해냈다는 성취감과 안도감, 그리고 마추픽추에 대한 기대감에 들떠서 분위기는 흥겨웠다.
마지막날이라고 요리사가 특별히 솜씨를 부린 볶음밥, 밥 위의 새는 당근과 오이로 만든 작품^^
마지막 저녁이라고, 레스토랑을 빌려서 가진 만찬에 나온 음식들은 전부 정말 맛있었고, 특히 또 다른 정글감자는 굉장히 단 고구마 맛이 났다. 베이컨과 야채로 속을 채운 페루의 감자튀김도 정말 맛있었고..
전부들 저녁을 즐기고, 마시고, 분위기가 뜨자 몇몇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도 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제까지 우리를 도와준 포터 아저씨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내일은 새벽 4시 기상해서, 바로 마추픽추로 출발해야 한다.
우기라서 구름이 끼거나 해서 마추픽추가 보이지 않는 건 아닐까?
제발 내일은 날씨가 좋기를 바라며..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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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여행
'05.4.10 12:30 PM저도 다리가 후들거리는것 같아요...... 4시간을 어떻게 내려가나''
기대 되내요 내일이 ㅎㅎ
등산후의 맥주맛 정말 끝내주죠~~^^ 저도 알아요 그맛'!! 캬~~~ 생각난다..~~2. 여행
'05.4.10 12:31 PM근데.. 끝까지 얼굴은 못보는 건가요 ..ㅜㅜ
3. 첫비행
'05.4.12 4:18 PM여행님>> 어떻게든 내려갔지요. 꾸스꿰냐는 유명한 페루 맥주인데, 세계대회에서 2등인가 했었다나봐요. 하지만 그런 것보다 역시 등산 후였기에 너무 맛있었던 것 같아요.
얼굴은... 공개하기가 좀.... (폭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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