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었죠? 죄송합니다. 이런 허접한 여행기라도 기다려주셨던 분이 계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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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12. 29 까미노 잉카의 둘째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캠핑장에서..
초저녁에 약하던 빗줄기가 간밤에 제법 굵어졌다 한다지만.. 너무나 곤히 잠들어서 빗소리도 듣지 못했다.
옆텐트의 아샤(영국, 부모와 오빠들 + 오빠여자친구 까지 6명의 대가족이 단체로 왔다)말로는 비가 갠 뒤의 보름달과 은하수가 너무 예뻤다는 데 보지 못해서 좀 아쉽다.
내 오른쪽으로 보이는 길이 바로 어제 올라왔던 길이다.
그리고 오늘은 바로 힘들기로 악명 높은 아르미와뉴스까(Warmiwanusca)를 넘게 된다. 케츄아 어로 [죽은 여자의 길]이라는 뜻인데, 이거, 내가 그 죽은 여자 중 하나가 되지 않으려나...
캠핑장에서 출발한지 30분 정도 지나자 숲이 무성한 하이정글 지역에 들어섰다.
페루에는 우리나라처럼 사계절이 있는 게 아니라 건기와 우기 두 계절만이 존재한다.
쿠스코 부근에서는 12월부터 4월까지가 우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건기에도 잉카 트레일에서는 하루에 한 차례 정도 비가 내리는 것 같고, 고도 탓에 구름에 쌓여 있는 경우가 많아서 일년 내내 습하다.
더더군다나 햇빛이 비칠 때는 한여름이나 마찬가지여서, 고도 3000미터 부근에서는 열대우림이 형성되어 있다.
단, 잠시라도 햇빛이 들어가거나.. 비가 오는 경우.. 겨울을 방불케 할 정도로 순식간에 추워지더군...
안데스의 야생화들...
겹겹이 펼쳐진 산자락
계속되는 오르막을 거쳐, 도착한 휴식지점. 우리팀 말고도 여러 팀이 쉬고 있다.
출발하고 나서부터 계속 오르막과 계단의 반복. 더더군다나 고도가 계속 올라가서 숨이 가빠오기 시작했다.
소문대로 둘째날은 힘들군.. 하면서 이젠 어려운 코스는 어느 정도 지났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왠걸? 본편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T.T
아까 중간 휴식 지점은 이미 까마득한 아래.. 계속 이어지는 계단을 올라오는 와중에 찍은 사진이다.
드디어 까미노 잉카 최고의 고개에 도착!! (몰골이 도저히 엉망인 관계로 시각폭력에 해당하는 얼굴을 처리했습니다..ㅡㅡ;;)
고도 탓에 다리 아픈 것 보다는 호흡 조절하는 데에 애먹었다. 마지막 계단 20여개를 놔두고, 암담하게 고개 정상을 쳐다보니,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보인다.
쉬고 있는 그들을 보자니 오기가 생겨서, 이를 악물고 마지막 계단 20개를 단숨에 뛰어오르니, 사람들이 휘파람과 박수를 치며 응원해준다.
도착한 뒤, 승리포즈를 취했지만, 사실 저때 딱 그자리에 드러누워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고개 정상을 넘어 내려가는 길.. 저 까마득하게 이어진 하얀 선들이 잉카의 길이다. 이런 고도에서 어떻게 이런 길을 닦아 놨는지...
드디어.. 드디어.. 두 번째 캠프장 도착!
빠까마유(Pacamyu)강이 흐르는 계곡의 캠프장
빠까마유는 케츄아 어로 근원이 되는 강 이란 뜻.
도착한 뒤, 텐트안에 무너지듯 주저 앉아서 문득 앞을 봤을 때 보인 풍경이다. 고생을 한순간에 날려버리는 광경이었다.^^
2004. 12. 29 잉카 트레일 둘째날 캠프장에 도착해서..
악명 높은 Dead Woman''s path를 지났다.
거짓말 쪼금 보태면, '[요단강 건너 만나리...] 라는 심정을 맛봤다고나 할까?
둘째날 아침, 눈을 뜨니 새벽 5시 반.
무게를 각오하고 AA의 기내 담요(1등석 용이라 따뜻하긴 한데, 무게가 좀 나간다)를 챙겨오길 정말 잘했다.
새벽에 정말 추웠을 때, 담요를 뒤집어 쓰니 냉기가 어느 정도 차단이 되서 정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추위를 예상하고 내 얄팍한 침낭은 집에 고이 모셔두고, 여행사에서 빌려주는 2kg짜리 두툼한 녀석을 사용했다.
차가운 공기를 헤치고 간신히 일어나니 황송하게도 세수를 위한 따뜻한 물이 준비되어 있었다.
어제의 식사도 그렇고, 원 이거야 고생을 각오하고 온 잉카 트레일이 완전 유유자적 유람이 되는 거 아니야? 예약할 때 빈 자리 있는 여행사가 여기 밖에 없어서 다른 곳 보다 80불 정도 비싼 걸 감수해야 했었는데, 그 80불이 만들어내는 차이란... 역시 돈은 무서운 거다.
아침도 토스트에, 바나나 포리지(죽), 팬케이크와 잼/버터/캐러멜 + 커피와 차로 호와찬란이다.
오늘이 가장 힘들기로 악명높은 Dead Woman pass를 지나는 날이기 때문에 에너지 비축해 놓자 하고 열심히 먹었다.. (사실은 맛있어서 과식했다 --;;)
아침을 먹고 나니 오늘 하루 포터를 고용할 건지 물어온다.
출발할 때, 셀피라고 불리는 포터를 고용할 수 있는데, 울 팀중 몇몇은 이 사람들을 4일동안 고용했다. 비용은 보통 40불.
멀쩡한 내 자신을 놔두고, 다른 사람에게 내 짐을 맡길 수도 없고, 그럴 돈도 없었기에 난 셀피를 고용하지 않았지만, 가이드가 말하길 둘째날은 3000 ~ 4000 미터 이상되는 고도에서 계속 급한 오르막과 계단이 반복되기 때문에, 이제까지 배낭을 지고 온 사람도 오늘 하루 혹은 반나절은 포터를 고용하는 사람이 많댄다.
스스로 지고 가겠다고 했더니, 주변 사람들이 극구 만류하고, 혼자 쳐저서 팀에 짐이 되는게 아닌가 싶어져서, 결국 꼭대기까지, 오늘 코스의 절반만 포터를 고용하기로 했다. (25솔레스)
어제 짐을 스스로 지고 왔던 몇몇 사람들도, 오늘 전코스를 포터를 고용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경우 물론 비용은 두 배.
(나중 덧붙임; 사실, 무릎이 약하거나 체력에 자신이 없는 사람은 나중에 다른 사람이나 셀피에게 두 배로 폐를 끼치기 전에 아예 셀피를 고용하라고 권하고 싶다.)
막상 출발하고 나니 경사와 계단이 과연 장난이 아니다. 출발한 시점에서는 거의 선두였지만 좀 지나서는 선두그룹의 끝에서 쫓아가게 되어버렸다.
캠프장에서 출발한 지 1시간쯤 지나니, 해발 3000미터 이상의 고도임에도 불구하고 정글이 형성되어 있어서 울창한 숲과 열대지방의 야생화들을 볼 수 있었다.
아마도 계절 구분없이 고온다습한 기후여서 그런것 같다.
출발한 지 1시간 반, 본격적으로 계단과 경사가 심해진다. 어제완 달리 맨몸이어서 몸은 더 가뿐한데도, 고도탓에 순식간에 숨이 턱끝까지 차오른다.
Higb Jungle 지역을 벗어나자 고산식물과 풀들이 자라는 지역이 펼쳐진다.
셀피 아저씨들은 이미 도착해서 중간 휴계 지점에서 차와 샌드위치를 준비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쉬고 있자니 아무리 기다려도 후위그룹이 오질 않는다.
별 수 없이 먼저 출발하기로 하고 다시 길을 나섰는데, 방금 전까지만 해도 찌는 듯이 더웠던 날씨가 순식간에 추워진다.
한여름에서 갑자기 한겨울이 되었다고나 할까. 엎친데 덮친격으로 구름까지 짙게 깔리기 시작한다.
옷깃을 여미고 다시 시작한 등산은... 오전의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난코스였다.
4000미터가 넘는 고도에 머리는 어질어질.. 몇 발자국 옮기자 숨이 차서 핑 돌 지경이다.
고산증세인지, 걷는 게 힘들어져서, 금방 선두그룹에서 쳐저서 걷게 되어 버렸다. 아샤와 그 오빠들이 우르르 지나쳐간다. (젊은 것들은 기운도 좋다...--)
놀라운 건 버지니아에서 왔다는 아서와 그 친구인 스티브.
로스쿨에 다니는 이 둘은 어제 아침 미국에서 쿠스코에 도착하자 마자 그 길로 숨 돌릴 틈도 없이 트레일 팀에 합류해서, 고도적응할 시간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피로도 모르는지 쭉쭉 앞서나간다.
에고에고... 그에 비하면 나는....
어쨌든 땅만 보고 한발 한발 힘겹게 옮기기를 한 시간, 갑자기 앞에서 라마떼가 우르르 몰려오는 바람에 황급히 길 옆으로 몸을 피하기도 했다.
놀라운 건, 포터들.. 맨몸으로도 오르기 힘든 길을 짐을 바리바리 넣은 포대를 등 위에 동여매고 성큼성큼 오르는 걸 보니, 나 자신이 사치스런 투정을 부리는 것 같아, 입을 꾹 다물고 발을 움직였다.
어쩌면 그렇게 가도가도 정상은 멀게만 느껴지는지, 마지막엔 거의 20개의 계단을 앞에두고 오기게 솟아올라 있는 힘껏 뛰어올랐다.
정상에서 쉬던 다른 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더니 소리를 지르고 휘파람을 불며 응원해주었다.
해냈다는 기분에 잠시 의기양양했지만, 포터에게 맡겼던 배낭을 찾았을 때, 난 정말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맙소사... 짐을 지고 먼저 올라와서 기다리고 있던 포터는 아무리 잘 봐줬자 중학생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 남자아이였다.
그 힘든 길을... 결코 가볍지도 않은 내 배낭을 지고서....
돈을 치루고, 뭐라도 줄게 없나 싶어 가방을 뒤져 발견한 초코렛을 건네주자 수줍게 받는 그 손을 보면서 정말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내가 치룬 돈이 그 아이에게 도움이 되길 빌 뿐이다.
정상에서부터는 제법 경사가 급한 내리막과 계단이었다.
조금 내려가고나서부터는 다시 기온이 올라가서 점퍼를 벗어 허리에 질끈 묶었다.
내려가는 길 옆으로 흐르던 물이 폭포가 되어 떨어지고, 골짜기에 보석을 밖아 놓은 듯한 호수들, 아름다운 야생화... 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이미 그 시점에서 다리는 풀려서 후들거리고 있긴 했지만..^^;;
등산보다 하산이 힘들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한참을 내려가다가 "도대체 캠프는 어디인 거야!!" 하고 투덜거리며 골짜기 건너 맞은편 산을 보니 산능선 오르막을 오르는 사람들이 점점이 보인다. 그것도 급경사...
순간 "저 산을 하나 더 넘어야 캠프하는 거야?!!!!"라는 생각에 온 몸의 힘이 쭉 빠져 버렸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 산과 지금 내려가는 골짜기 사이가 바로 캠프였다. 십년 감수..
오후 2시 반쯤 캠프에 도착하자마자 텐트 안으로 쓰러지듯 들어가스 그대로 담요만 뒤집어쓰고 자버렸다.
그대로 누군가가 밥을 먹으라고 깨운 게 3시쯤.
늦은 점심을 하러 가니.. 아직도 수니타(인도 출신으로 캘리포니아에서 일하고 있는 남편과 함께 옴)를 비롯한 몇몇이 도착을 안 한 듯했다. 특히 수니타의 남편이 고산증 증세가 심해보였는데...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결국 이들이 도착한 것은 저녁 6시 무렵이었다.
수니타 말로는 남편이 너무 힘들어해서, 중간중간 계속 쉬면서 진행했단다. 돌아가는 게 어떠냐는 권유도 받았지만, 둘 다 끝까지 포기하지는 않겠다고 해서 간신히 도착할 수 있었단다.
저녁을 먹고 잠시 일행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우연의 일치인지, 참가자들 중 엔지니어들이 제법 많아.
우선, 영국에서 온 샐리 아주머니와 그 친구분. 영국의 회사에서 경영관리 프로그램 관련 일을 하고 있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또 텍사스에서 온 (이름 발음 불가능) 총각은 미국 통신회사인 Verizon에서 모바일 통신 관련 업무를 하고 있는 엔지니어.
나 역시 엔지니어에, 수니타의 남편도 실리콘 밸리에서 일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였다. 하하..
해가 지니 정말 식간에 이가 딱딱 부딪칠 정도로 추워진다. 하지만, 흐렸던 날씨가 개면서 하늘에 선명한 밤하늘이 펼쳐졌다.
도시에선 제대로 보이지 않는 은하수, 오리온 자리와 플라이아데스 성단이 그렇게 선명하다니...
그렇게 하늘을 한참 올려다보다가, 몰려오는 피곤에 텐트에 들어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
부디 내일은 조금만 덜 힘들기를... 별들에게 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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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달콤과매콤사이
'05.4.1 5:31 PM부럽기도 하고.. 정말 힘들겠다 싶기도 하고... 언젠간 꼭 가봐야지 하고는 있지만.. 해낼수 있을지 의문이네요...
말씀하신 내용중
인디오들이 그런다죠... 고산병이 자신들의 조상이 외지인에게 내리는 벌 같은거라고 생각한다더라구요.
자기들은 아무 이상이 없는데, 외지인들은 고통을 호소하니..
사진의 정글숲이 반갑네요.
작년에 브라질에 갔었는데.. 저런 정글숲이 정말 끝도없이 이어지던데...
여행기 잘 읽고 대리만족하고 갑니다.. 감사~2. 고준오
'05.4.1 7:36 PM오와와.. 페루 정말 가고 싶은 곳인데..
제 로망입니다.
부럽네요..3. 여행
'05.4.2 4:57 PM드디어 올리셨군요 ^^ 많이 기다렸어요..
정말 너무 힘들어 보여 갑자기 자신이 없어졌어요.. 전 백두산 갔을때도 고산증세인지는 모르지만 어지러웠 거든요......그래도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
오늘 여행도 너무 즐거웠읍니다,,^^
다음편을 기다리면.....4. 여행
'05.4.2 5:01 PM에고; 얼굴에 모자이크 처리를 하셨네요..**
아쉽당~~5. 첫비행
'05.4.5 12:43 PM달콤과 매콤사이님>> 그래도 할 만 하답니다. 60대 나이드신 분들도 도전하시더라구요.
고준오님>> 가보셨음 좋겠네요.
여행님>> 기다리게 해드려서 죄송하구요. 언제나 즐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편은 이번주말에나 올릴 수 있을 거 같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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