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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보물을 발견한 날

| 조회수 : 1,963 | 추천수 : 13
작성일 : 2005-02-20 03:19:36
오늘 비디오를 빌리러 갔다가

마이 러브라는 영화를 발견했습니다.

언뜻 보기엔 12살 어린 소녀의 첫사랑이야기 같아서

그냥 내려놓으려다가 다시 보니

스페인이 배경이더군요.

그래? 이상하게 스페인에 가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나니

배경이 스페인인 영화가 눈에 들어오네

신기하다,영화가 별로라도 풍경이라도 보아야지

그렇게 단순하게 마음을 먹고 빌린 영화였는데

웬걸요,마리포사같은 영화였습니다.

영화의 질로 보면 마리포사가 좀 더 낫다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별 기대를 하지 않고 보아서 그런지

아주 좋았습니다.

영화의 원 제목은 el viage de carol

영어로는 the journey of carol이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마이 러브라고 하면

그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얼마나 가리는 것인지

그런 무신경이 화가 나기도 하네요.

이 영화는 스페인 내전이 한창인 1938년이 시대 배경입니다.

스페인 출신이지만 약혼기간중 미국 남자 로버트를 만나서

스페인을 떠난  한 여자가 딸과 함께 고국으로 돌아오는 장면부터 영화는 시작됩니다.

그녀는 곧 죽을 병에 걸린 상태로

아버지 혼자 계시는 집으로 딸과 함께 옵니다.

그 딸의 이름이 캐롤이지요.

로버트는 비행사라고만 나오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스페인에서 활약하는 국제 여단 비행사이더군요.

아버지는 공화국을 은밀히 지지하는  상태이고

원래 그녀의 약혼자는 그녀가 떠나자 그녀의 언니와 결혼한 상태로 프랑코 지지자로 나옵니다.

그런 상태에서 그녀가 죽고 혼자 남겨진 캐롤은 이모집으로 보내지지만 답답한 이모와는 잘 맞지 않는 캐롤은

동네 남자 아이들과 어울려 놀게 되고

그 중에서도 내전의 와중에서 공화국을 지지하다

총살당한 아버지를 둔 토미체란 아이와 친하게 됩니다.

한편에서는 그렇게 어울려 다니는 아이들의 세계가

다른 한 편에서는 내전의 살벌함이 교차되면서

영화는 전쟁의 공포를 직접 보여주기 보다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내전을 겪는 사람들의 심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산하는 너무 아름다운데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자연과는 다른 모습이지요.

스페인 내전이라고 그저 글에서 보는 것과

그 시기를 직접 산 사람들의 삶은 얼마만한 거리가 있는 것일까요?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불멸의 이순신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북쪽에 여진이 남쪽에 왜구가 나타나서

민간인을 괴롭혔다는 서술의 행간에 숨은

사람들의 괴로움에 대해서 상상을 하게 됩니다.

역사책이 보여주지 못하는 사람들 삶의 여러 모습을
역사 소설은 마치 그 시기를 사는 듯한

생생함으로 우리앞에 지나간 시절을 펼쳐 놓습니다.

이상하게 이순신의 이야기에 손이 가지 않았었습니다.

아마 유신시기에 더 찬양의 대상이 된 인물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해서가 아닐까

혼자 생각해보게 되네요.

김탁환의 글에서 부활한 이순신은

고뇌하는 지식인이면서 동시에 무인인

두 세계를 동시에 살아가는 인간으로

활을 든 사림이란 표현으로 다가오는군요.

한동안 불멸의 이순신을 보느라

정신이 지금 이 곳과  16세기 말의 조선으로

왔다 갔다 할 것 같네요.

불멸의 이순신에서도 숨은 보석을 한 명 발견했는데요

그 사람의 이름은 나대용입니다.

배에 미친 사나이라고 소개되었더군요.

그와 허균의 만남까지를 읽었는데

앞으로 그의 행보가 주목되어서  가슴이 설렙니다.

다른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한 가지에
몰두하는 인간

제게 늘 상상의 여지를 주는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라 소설속에서 만나도 반갑기 그지 없네요.

그러고 보니 오늘은 보물을 두 가지나 발견한 날인가?




이 스틸 사진은 영화의 한 장면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불멸의 이순신 이야기를 쓰다 보니

문득 조선시대 그림을 보고 싶네요.








그림을 찾다가 귀한 그림 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초의 선사가 다산 초당을 그린 것이네요.

초의는 다산을 만나서  정신적으로 깊이 교류하면서

어린 시절 자신에게 영향을 준 할아버지를 새롭게

만난듯한 감회를 느끼더군요.

동시대에 살면서 깊은 감화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경험일까를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입니다.




이 그림은 이재관의 파초하선인도인데요

일반적으로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은 화가이지만

조희룡은 백년내에 이런 화가가 나오기 어렵다고

극찬했다고 하네요.









이 두 그림도 역시 이재관의 그림인데

저는 가운데 그림에 눈이 가네요.

파초이파리에 시를 쓰는 선비라...




강세황의 백석담도입니다.

처음 이 그림을 보았을 때의 놀라움이 지금도 생생하군요.

조선시대에 이런 대담한 그림을 그린 사람이 있었구나
참 신선하고 파격적이구나

기존의 어떤 미적인 기준을 벗어나서 새롭게 시도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예술은 앞으로 한 걸음 성큼 나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오늘은 정말 기분좋은 날이로군요.

영화를 보고  좋은 기분으로 그림을 보기 시작했는데

평소에 전혀 보지 못했던 그림을 여러 점 발견했습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숨은 보물찾기가 된 날입니다.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Harmony
    '05.2.20 3:29 PM - 삭제된댓글

    그림 감상 잘 했습니다.
    위에 영화스틸 사진, 정말 흐르는 강물처럼의 한 장면이네요.
    안식,안정,고요 뭐 그런 단어가 떠오릅니다.

  • 2. Harmony
    '05.2.20 3:31 PM

    아 그리고 우리집에 파초를 얼마전 선물 받았어요.
    키가 3미터 넘다보니 이것이 마구 자라 천정을 치받아서 형제파초잎으로 눌러놨답니다.
    잎도 얼마나 큰지 저넘을 자를까 어쩔까 했는데
    언젠가 저도 한번 파초잎에 그림이나 글을 한번 써 봐야겠어요.
    파초에 글 쓰는 선비 그림, 너무 신선한 충격이네요.

  • 3. 앉으면 모란
    '05.2.20 11:31 PM

    강세황의 그림이 인상적이네요.
    저도 지금 "미쳐야 미친다."를 읽고 있는데 한 분야에서 독특한 자신의
    세계를 이룬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역사시간에 흔히 들어 보지 못한 사람도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 4. 진진진
    '05.2.21 12:57 AM

    저도 강세황의 그림ㅇ에서 투박함 강한 힘을 느낍니다
    파초는 옛날 유행가에 나온 것 같네요 아닌가 드라마였나 `파초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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