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김정희의 아들이 그의 집에 머물면서
그림 공부를 하는 시골뜨기(그의 눈에 보이기엔)에게
마음을 써주면서 관심을 갖다가
그가 일정 정도의 경지에 이르러
아버지의 칭찬을 받고 그에 비해 자신은 늘
타박을 당하자
시기하는 마음이 생기면서
소치를 못 견디게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소치라는 호는 추사가 직접 고민하면서
고른 호인데 중국의 황공망이 대치인 것에 견주어
대치에 버금가는 혹은 그를 능가하는 화가가 되라는
의미에서 지어준 것이고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을 불러 모아
일종의 잔치를 열면서
제자의 발전을 축하하기도 하지요.
능력이 그에 못 미치는 아들이
마음속으로 겪을 갈등과 고뇌도 이해가 가고
한 집에서 바늘방석에 앉은 심정으로
견디어야 하는 소치의 마음도 이해가 가는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제주도에 유배간 스승을 찾아 간
소치,거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풍랑을 이기고 찾아가니
외로운 귀양살이 중에 있던 추사는
정말 버선발로 달려나온다는 말에 버금가게
제자를 반깁니다.
그리고 그동안의 회포를 풀면서 애틋하게 사제간의
정을 나누고
추사가 쓴 시와 글씨에
제자의 그림을 그리라고 부탁을 하지요.
혼신을 다해서 그린 그림에 감탄하는 추사
그러나 한양에서 온 하인이 가져온
또 다른 추사의 제자
누구보다 추사가 아꼈다는 이상적이 보낸
연경에서 구한 책이 오자
추사는 보던 그림을 밀치고
책에 열중하면서 이상적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습니다.
그 순간 소치는 깊은 열등감과 무시당하는 느낌에
사로잡힙니다.
사람이 죽는 순간까지
비교에서 놓여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겠지요?
오늘은 소설을 읽다가
이상하게 이 두 이야기에 사로잡혀서
많은 생각을 한 날이기도 하네요.
집에 들어와서
오랫만에 해금 음반을 틀어놓고
조선시대 후기의 그림을 찾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추사가 제주도에 유배되어 있던 시절
이상적을 생각하면서 그린 그림이지요.



같은 난 그림이라도 추사 작품은 달라서
느낌이 다르지요?

드디어 소치의 그림을 찾긴 했으나
제대로 원본으로 그림을 보는 것과는 맛이 달라서
아쉽습니다.
마음속에 품고 있으면 언젠가는 볼 기회가 있겠지요?
추사는 소치에게 공재 윤두서, 겸재 정선
그리고 현재 심사정 이 세 사람의 그림이 출발이긴 하지만
그들을 뛰어넘는 문자향,서권기가 풍기는 문인화의 대가가
될 것을 주문합니다.
그것이 제겐 추사의 한계처럼 느껴지더군요.
조선시대 회화중에서 제가 가장 자주 보게 되는 화가는
역시 겸재 정선입니다.
그림이 살아서 움직이는 느낌을 준다고나 할까요?
언젠가 호암미술관에서 그의 인왕제색도를 처음 만났을 때
도판에서 보던 그림과는 어찌나 느낌이 다르던지
그 앞에서 떠나지 못하고 서성대던 기억이 지금도
강렬하게 남아 있습니다.

지금까지 본 것이 소치의 그림이고요
겸재 이야기를 쓰다보니 그의 그림을 다시 보고 싶어지네요.


이 그림은 겸재라는 이름이 붙어있지 않았으면
그의 그림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다른 느낌의 그림이네요.



오늘 치과에 갔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따라 오래 기다려야 제 차례가 돌아올 정도로
치료 시간이 긴 환자들이 많더군요.
그래서 신문을 펴들고 읽던 중
제주도에 사는 한 고등학생에 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3살부터 보육원에서 살고 있는 고등학생인데
그 아이가 일본 문부성에서 실시하는 전수학교 국비 장학생 시험에 통과하여
일본에 가서 3년동안 디자인 공부를 하게 된 사연과
외로움이 힘이 되었노라고 하는 인용구가 있었습니다.
가슴이 뭉클한 글이었는데
그 아이의 길과
일본어를 좋아하고 디자인쪽에 관심은 있으나
미술대학에 가는 것은 망서리고 결국 마음을 접어버린
딸아이의 진로가 마음에 겹쳐서
부탁을 하고 신문을 오려 왔습니다.
집에 와서 보여주니 이미 알고 있더군요.그 사연을
그리곤 이야기합니다.
엄마,나는 꼭 일급 자격증을 따고 싶고
2학년때는 일본어 공부에 매진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라고요.
거의 유일하게 자발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일본어이고
이번 겨울방학에는 시키지 않아도
일본어로 된 소설책을 혼자서 공책에 번역해가면서
읽고 있는 아이,그것을 보면
사람이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일을 하는 것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데
대학 입시때문에 이런 에너지를 방해하고 누르려고 하는 것이
잘하는 짓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돌고 돌아도 결국 자신의 마음이 부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보면
지금은 이 길이 아닌 것 같아도
그렇게 가도록 돕는 것이 엄마가 할 일이 아닌가
마음속이 복잡한 밤입니다.


이번에 소설을 읽으면서 초의 선사가
금강산에 가는 장면을 만났습니다.
말로 형용하기 어렵다고 하면서
금강산에 대해 묘사하는 장면을 읽고 있으려니
왜 나는 금강산 여행에 마음이 동하지 않았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 곳에 안내원이 따라 붙어서
일종의 감시가 이루어지고 있을 것 같은 느낌
그렇게 자유롭지 않은 상태에서는 보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책속에서 만난 금강산과 지금의 금강산은 많이 다를 것 같은
선입견때문에 마음이 동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글속에서 다시 그 산을 만나니
누군가 그 곳에 다녀온 사람의 글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네요.




김애라의 해금 연주에 맞추어
그림을 보는 시간
참 특별한 느낌이 드는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