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9남 1녀 10 남매 가운데 일곱 째 7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제가 이 글에서 쓰려는 내용은
저희 10남매 가운데 장남인 큰형님 부부와 부인인 큰형수에 관한 것입니다.
저희 큰령님은 해방 직후 고대 법학과 출신으로
오랫동안 전매청 간부로 재직하시다가 정년 퇴직하시어
저희 `0남매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 집에서 생활하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큰현님께서 돌아가시고 한 때 비어 있던 시골 집에는
국내 굴지의 증권사 이사로 재직부인이던 큰딸과 함께 살면서
국내 굴지의 초대현 교회 권사라는 직분으로 아쉬울 것 없이 기분을 내고 살다가
큰딸이 비교적 젊은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작은 딸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혼자가 된 큰형수가 내려와 살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두 딸 아래도 두 아들이 있었지만
아들들은 필립핀 여자와 결혼 필립핀에 살고 있어 큰 형수는 혼자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과거 남 부러울 것 없는 영화를 누리던 큰형수가 나이가 들어 기력이 쇠하면서
일찌기 조부께서 지으시고 많은 고전을 쓰셔 조부와 선부의 얼이 가득한 집을 팔아
면 소재지에 있는 교회에 헌납하고 교회에서 생활하다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우리는 자랑스런 조부와 선부의 얼을 잃고 정답고 기라운 고향까지 잃게 되었습니다.
내가 타어나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으며
그 많은 형제들 가운데 부모님을 애틋해 하고 도움을 준 형제가 아무도 없었으며
어머니께서 생전에 시골 집은 내게 주라는 말씀을 남기셨으며
부모님 생전 하루 두 끼 멀건 죽도 먹지 못하고 어렵게 살던 그 시절에
고위공무원으로 자식들을 퉁복하게 키우면서도 부모님 쓰시라며 1.000원 한 장 보내지 않던 큰형수가
큰형수 큰아들이 장손으로 조상 제사도 모셔야 하니 시골 집을 아들에게 주겠다더니
그 집을 팔아 교최에 헌납하고 교회에서 살다가 가시는 바람에
조부와 선부 문학관을 건립을 방해하는 장애를 만들었습니다.
또 조산 제사를 맠는다던 큰형수 큰아들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연락 한 번 없고
제사는 커녕 선영 벌초 한 번 참여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큰형수는 생전 우리를 만나기만 하면 하나님 믿으라는 말을 하고
하나님 믿어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었는데
그런 큰형수의 이중적 행보를 보면서 그후부터 하나님 믿는다는 사람을 보면
마음이 먼저 닫히며 외면하게 됩니다.
평소 자기들은 부족함 없이 여유롭게 살면서도
시골ㅇ[서 어렵게 지내는 부모를 철저하게 외면했던
마지막에는 조부와 선부의 얼이 가득하고
조선 500년 역사의 한 장을 열었던 산실이기도 했던
10남매가 나고 자라 꿈과 영혼이 가득한 집을 팔아
오로지 자신의 욕심을 채우고 쫒았던 큰령수의 영혼이
과연 저 세상에서 편안과 안식을 누릴지 의문이며
그런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절대 믿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