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날 2차 수술을 했었고 첫돌을 맞아하던 그날 3차 수술을 했었습니다.
이 아이가 태어날 때 갖고 나온 병명은 선천성 질병중에서도 현대의학으로는
그리 심각하지 않은 병이었는데... 통상 수술 성공률 70%...
그러나 계속해서 심각한 후유증세 나타나는 30%의 길을 걸어오느라 많이 힘들어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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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들,
작년 여름...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근 11개월전이구나...
네가 태어나던 날, 세상은 늦여름의 폭염에 흐느적거렸고
나와 네 엄마는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뻤단다.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신 이름이 '승현'...
그런데 그때까지도 아빠는 계속...그냥 아기라고 불렀구나...

그런데...앞으로도 세상에 이보다 더 슬픈 기억이 있을지 모르겠구나.
네가 태어나던 날로부터 딱 24시간만에
너에게는 "선천성 거대결장증"이라는 병이 있는데...
대장의 일부분에 신경절이 없어서...변이 막혀서...
그 압력 때문에 장이 팽창하여 파열되는 병이라고...
이 병은 약도 없고 오로지 수술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하더구나...
그 밝은 늦여름의 어느 한자락...세상이 온통 캄캄해지는줄 알았다.
그것도 2차에 나누어 수술해야 하는데...
한번은 배를 열고 인공항문을 시술하고
2차로 다시 배를 닫고 직장에 바로 연결한다고 그러더구나..

어쨌거나 방법이 있다니 그나마 다행스러웠고...
1차 수술은 잘되어 너도 차츰 건강을 회복하고 있었지...
생후 8주밖에 안된 아기가 제 부모를 알아보고
싱긋~ 미소지으며 바라볼때는...
적어도 그 순간 만큼은 모든 염려와 괴로움도 다 잊을 수 있었단다.

그러나 너는 아직도 배에 보조의료기를 착용하고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던 아기였지...
장이 가끔씩 막힌 가스때문에 부풀어 오르거나 하면 밤새 잠도 들지 못하고...
1차 수술을 무사히 끝낸건 정말 감사한 일이었지만...
또 한차례 수술이 남아있었고...
그 수술의 성패에 따라
평생 네 인생의 짐이 될지 축복이 될지 모르는 중요한 고비였었단다.

아들아...사랑하는 아들아,
이날이 바로 네 백일째되던 날이었단다.
미안하다...
너에게도 다른집 아기들처럼 근사한 백일사진을 꼭 찍어주고 싶었는데...
남들은 2~3시간이면 끝날 수술도
무려 6시간이나 걸려 어렵게 수술을 마쳤고...
어쨌든 수술은 성공적이었다고 하고...
그날 네가 밤새 잠도 들지 못하고
울고 괴로와 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구나...
그때만큼은 차라리 내가 대신 아파주고 싶을만큼 이 아빠도 괴로웠단다.

그날의 괴로움도 점점 지나고...
차츰 건강이 회복되어...웃는날도 훨씬 많아지기 시작했지...
그런 너를 보며 엄마, 아빠는 조금 부끄러웠단다.
왜 이런 예쁜 아기를 두고
괜히 다른집 건강한 아기들만 부러워했을까...
지금은 오히려...승현이 네가 아니었으면
엄마, 아빠는 많이 섭섭했을꺼야...하고 생각한단다.

공갈젖꼭지를 너무 좋아했던 아기...
아빠와 엄마는 그걸 어떻게든 떼주고 싶었단다.
하지만...억지로 떼어낼수 없었어...
너에게 그것마저도 빼앗아버리면
네가 몸이 아프고 괴로울때 어떻게 견디나 걱정했었거든...
다행히도 네가 알아서 떼는 것을 보고
우리 아들 총명하기도 하지~ 하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단다.

지난 겨울은 어쩌면 네 생에 있어서...
아니 어쩌면 우리 가족 모든 삶에 있어서
가장 힘들면서도 그속에서 기쁨을 맛보았을 계절이 아니었을까 싶구나.

웃는 얼굴이 보기 좋은 승현이는...
특별히 낯을 가리진 않지만...
아직은 소심해서 잘 모르는 곳에 가거나 잘 모르는 사람이 가까이 오면
바로 표정이 굳어지기 일쑤지...
그러나...많이 웃어라 아가야...네가 웃을때 이 세상도 웃을꺼야...

사랑하는 아들, 네 덕택에 이 아빠에게 꿈이 하나 생겼다.
살다보니...꿈이란 것도 모르고 살아온 아빤데...
다시금 삶이란 어떤 것인지...
인간의 삶이 어떻게 가치있게 가꾸어질 수 있는지 알게 해준 승현이에게
이 아빠는 감사한 마음이 든단다.

너처럼 태어날때부터 죄없이 선천성 질병 때문에
고통받고 버려지고 괴로움을 당해야 하는 아기들에게
우리 나라의 의료정책이 보다 적극적이고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하는데 필요한 일을 하려 한단다.
지금은 준비하는 중이고...이 일이 결실을 맺으려면...
어쩌면 승현이가 다 자라서 네가 결혼하고
네 자식을 낳을때쯤이면 가능할까...!?
아무런 보장도 없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지만
이 아빠의 평생의 꿈이 됐단다.

끄응~ 엄마와 함께 재활훈련(?)하는 승현이~
응가하는 자세로...재활훈련이라... ㅡㅡ;;;
승현이에게 저 자세가 중요한 이유는
아직도 네가 스스로 변을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지...
뭐...아직은 완치가 된 것도 아니고...
가벼운 감기에도 바로 대소장염까지 이어져
장이 부풀어서 몇번이나 병원 응급실을 들락날락 해야하지만...
그래도 이 아빠와 엄마는 성실하게 견뎌내는
승현이가 사랑스럽고 자랑스럽구나...

언젠가 승현이가 자라서 아빠와 함께 같이 목욕탕에 갈 일이 생길꺼야...
그때 네 배에 있는 기다란 칼자국을 보며
이게 뭐냐고 물어올 너를 상상하며
오늘도 아빠는 그때 대답할 말을 고민하고 연습중이란다.
어떻게 너를 이해시키고 알게해줘야 할지...

이 병은 완치란 개념은 없고 그저 치료의 목표는
성인이 되었을때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란다.
그래서 통상 10년 정도를 내다보고 고치는 병이라고 하더구나...
앞으로 10년이면...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앞으로 네가 살아갈 날이 얼마나 많은데...
겨우 10년이야...잘 한번 견뎌보자.
우리 인생의 최고의 날은 아직 오지 않았다~!!!
이제 내일...다시 입원하는 아들아,
이 세번째 수술만큼은 어떻게든 피하게 해주고 싶었지만...
더이상 미루면 너의 장에 심각한 손상이 올 수 있다는 소견이 보이는구나...
그래도 아빠는 그 가운데서도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마음 한구석...무거운 부담감으로 자리잡고 있던 수술이라...
그나마 돌 전에 할 수 있어서 말이야...
앞서 두번의 수술도 잘 견뎌낸 것처럼 이번에도 잘 이겨내자~
사랑한다 아들아...
꿈이 있는 자유 - 소원
Bir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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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던 아이였는데... 지금은 아주 잘 자라줬습니다.

2008년 현재, 아이는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잘 크고 잘 뛰어놀고...
말도 잘 안듣습니다... -_-;;;
가장 괴로웠던 기억이라면...
아픈 아이를 두고, 그 옆을 지키지 못하고
돈을 구하러 다닐때였습니다.
저는 이 아이의 병을 보며 비로소 내가 해야 할 일을 찾았던 것 같습니다.
방송계에 있는 친구, 선후배들을 통해
우리 나라에서 정보접근성이 열악한 선천성 질병이 얼마나 많은지 알려주는데 뛰어다녔고
우리 나라의 의료보험이 실제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곳으로 방향을 잡도록 뛰어다녔고
아이의 엄마와 함께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우며 기도하며 울었는지 모릅니다.
적어도 30년 이상 걸릴줄 알았었습니다.
지난 참여정부 시절 의료보험에 관한 획기적인 전환이 있었습니다.
그 일로 많은 선천성 질병을 가진 어린이들이 작으나마 혜택을 봤으리라 생각됩니다.
이제 시작이구나... 우리가 기도하기 시작한지 불과 3년만에...
얼마나 기뻤고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아서 의료시장 개혁법안을 내겠다고 새 대통령이 선언해버립니다.
밝혀진 것만 400억원대의 재산을 가졌으면서도 건강보험료 1만3천원만 내던 사람이
건강보험을 손대겠다고 말입니다.
저는 이제 또 기도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또 뛰어다니기 시작합니다.
언제 끝날줄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고통에는 분명 끝이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