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 잉글랜드와 트리니다드-토바고의 경기 보셨어요?
저는 잉글랜드의 잘 생긴 선수들보다 트리니다드-토바고 선수들에게 정이 가더라고요.
제발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우리 선수들도 그 선수들만큼만 열심히 최선을 다해 주었으면 좋겠어요.(그래
도 우리가 꼭 이겨야 하고요.)
할 수만 있다면 그 나라 골키퍼만 살짝 업어 오고 싶을 정도로 실력도 있고 운도 따르는 선수더군요.
축구에서뿐만 아니라 책 시장에서도 절대 강자가 있어요.
출간도 되기 전에 예약 판매에 주요 일간지에 하루가 멀다 하고 광고가 뜨고 대대적인 저자 사인회도 갖
는 책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막상 구입해 보면 광고에 실망하고 돈이 슬슬 아까워지는 책도 적지 않아요.
하지만 별 기대 없이 구입했던 책이 의외로 재미있을 때 정말 신이 나서 친구, 후배들한테 막 소문내요.
그 책 한번 사서 읽어 보라고요.
날씨가 더워지고 밤에 축구 보느라 낮에는 피곤한 요즘.
진지하고 어려운 책보다는 가볍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 한 권 소개해 드릴게요.
[쇼퍼홀릭]의 작가 소피 킨셀라의 신간 [워커홀릭]이에요.
성공한 영화감독이나 작가들은 흥행작 다음 작품에 대한 부담감을 호소하고 실제로도 재미있을 확률은
극히 적잖아요.
저도 소퍼홀릭을 재미있게 보았기에 비슷한 제목을 차용한 이 책에 대해서 불신감을 가지고 있었어요.
하지만 요즘 땡기는 책이 이런 킬링 타임용 책이라 일단 질러 보았어요.
소제목이 <변호사 사만타, 가정부가 되다>더군요.
이건 무슨 말일까? 싶었지요.
처음에 뭐 그냥저냥 3류 헐리우드 영화의 시작 부분을 보듯 심심하더라고요.
그런데 점점 페이지를 넘길수록...푸하하하 웃음이 끊이지 않고 터져 나왔어요.
요즘 눈가 주름에 신경이 쓰여서 웃는 것도 조심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2개월짜리 울 조카 옹알이와 이 책을 보면서는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어요.
우울하신 분들, 이 책을 읽게 되면 제 말을 이해하실 거예요.
무엇이든 일류 과정만을 거쳐 변호사가 된 스물 아홉의 처녀 사만타가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질러 사건
의 의뢰인인 한 은행에게 5천만 파운드의 손실을 입히지요.(그런데 5천만 파운드면 도대체 얼마예요?)
충격에 빠진 사만타는 무작정 사무실을 빠져 나와 아무 기차나 타고 도망쳐 버립니다.
우연히 내리게 된 시골 마음에서 사만타는 면접을 보러 온 가정부로 오인되어 그 집에 그냥 눌러앉게 되
어요.(사실 이 부분은 굉장히 작위적이지요.)
살림에 살, 요리의 ㅇ자도 모르는 그녀의 좌충우돌 실수담 정말 재미있어요.
자신의 존재감 때문에 갈등을 겪는 전업주부님들,(저를 포함해서)아이큐 158짜리 변호사가 하는 실수 때
문에 많이 웃고 행복해 질 수 있을 거예요.
여기에 빠질 수 없는 멋있는 근육질 남자까지 등장하고 좀 우습지만 그 남자의 어머니로부터 요리와 살
림의 노하우를 사사 받고 점차 가정부로 자리를 잡아요.
그 후 우연한 기회에 해고된 것이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아낸 사만타는 웨이트리스로 분장
하여 옛 직장에 잠입, 자신의 결백을 밝혀요.
그 이후의 내용은 흔히 우리가 볼 수 있는 헐리우드식 해결방법으로 엔딩까지 이릅니다.
너무 자세히 알려드리면 재미없을 것 같아서 여기서 멈출게요.
워커홀릭이라는 제목처럼 가장 촉망받던 변호사였던 사만타는 워커홀릭에 빠져 앞만 바라보고 살던 여
성이었어요.
하지만 매일 반복되는 야근에 끊임없는 경쟁에 채찍질만 하는 어머니까지 삶의 소소한 여유로움을 만끽
하지 못하고 살고 있었지요.
인건비가 비교적 싼 우리나라에서는 결코 나올 수 없는 책이지만 입주 가정부에게도 주5일 근무가 생활
화 되어 있고 연봉도 만만치 않은 영국에서는 꽤 설득력 있어요.
바캉스와 휴가가 법으로 정해져 있는 나라에서 그 모든 것을 포기할 만큼의 명망과 높은 연봉은 자신의
사생활을 모두 바쳐도 아깝지 않을 만큼의 가치가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이 책의 마지막에서 나오는 말처럼 청춘은 기다리지 않지요.
이미 흘러가 버린 시간에 대한 대가는 스스로가 지불할 수밖에 없고요.(그렇다고 인생을 즐기라는 모 카
드사 cm송식 가치관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마어마한 연봉 주면서 부려먹지 않는 회사 거의 없잖아요.
결국 인생은 자기 자신이 결정해야 하는 것이지만 무엇에 우선 순위를 두고 살아야 할지는 우리가 평생
고민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많은 돈을 벌어도 그만큼의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분들이 보신다면 많은 공감을 느낄 수 있을 거구요.
아이 키우고 살림 하느라 돈은 벌지 못하지만 무엇보다도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전업주부분이라면 더욱
더 내 자리의 고마움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책 내용 중 특히 제 가슴을 쳤던 한 부분을 꼭 말씀 드리고 싶어요.
자기 목표가 무엇인지 내 인생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르겠다는 사만타의 말에 요리 선생님인 남자 친구
의 어머니, 아이리스가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답을 다 알지 못한다고 스스로를 닦달하지 마. 항상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야 할 필요는 없어. 비전
을 갖고 있을 필요도 없고, 자신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 필요도 없어. 때로는 자신이 다음 순간에 무
엇을 할지를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니까.”라고요.
맞아요.
너무 빨리 흘러가는 세상은 우리에게도 그만큼의 속도를 요구하고 조금 뒤처지면 비웃고 따돌리기도 합
니다.
하지만 세상의 중심은 바로 나 자신 아닐까요?
무엇인가에 미치는 것도 좋지만 그 정도가 나를 잊어버릴 정도에 이른다면 무슨 소용일까요?
돈, 사랑, 일, 도박, 오락, 쇼핑 등등 우리를 유혹하는 많은 사탕들이 있지만 때로는 단호하게 물리치고
나를 들여 볼 수 있는 작은 여유를 가져 보라고 이 책은 가볍지만 강하게 얘기하고 있어요.
옮긴이 노은정님의 마지막 말도 참 좋네요.
“사만타는 스물아홉이다. 어디든 갈 수 있고 뭐든 할 수 있는 나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어떤 결정을 내
리든 걱정하지 않는다. 그녀는 고무처럼 회복력이 뛰어나니까. 충분히 사랑스러우니까. 그녀는 이제 서두
르지 않을 거니까. 참고로 서른아홉도 그런 나이다. 어디든 갈 수 있고 뭐든 할 수 있으며 어떤 존재든 될
수 있다.^^”
저는 서른다섯. 아직도 한참 어린 나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