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10-06
- 회사 때려치다 -
난 오늘 하루 회사 때려 치고 출근을 안 했다.
새벽 6시반에 집을 나서는 아내를 배웅하곤 다시 깜빡 잠이 들었다.
8시에 다시 눈을 떠선 잠자리 정리하고 간단히 세면을 마치고 아내가
앉혀논 밥솥의 불을 켜며 아침 준비를 했다.
부엌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주이가 방문을 열고 나온다.
TV를 켜서 '뽀뽀뽀'를 틀어 준다.
TV소리에 진이도 잠이 깨어 누운 채로 주이와 함께 '뽀뽀뽀'를 본다.
밥이 다 되어 가는 소리가 들린다.
오늘은 주이가 유치원에 도시락을 싸 가는 날이다.
주이의 조그맣고 예쁜 도시락에 방금 한 김이 모락 모락 나는 하얀 밥과 반찬으로
꼬마산적 3개와 잔 멸치 볶음을 은박지로 예쁘게 담아 물병과 함께 유치원 가방에 넣었다.
"주이야, 이제 이 닦고 세수하고 나와."
"네~"
진이는 아빠가 도시락 싸는게 불안해 보이는지 계속 나만 따라 다니며 잔소리를 한다.
"압빠, 언니 도지락 자알 짜제요오.."
"그래 임마. 잔소리좀 그만해라"
"압빠, 내가 머 임마야..? 지니지..."
식탁위에 주이 좋아 하는 반찬으로 몇가지 늘어 놓고 아침을 먹였다.
밖에 바람이 제법 부는것 같아 주이 옷은좀 두꺼운 것으로 입혔다.
이제 유치원 출근, 아니 등교 준비는 거의 다 끝났는데 마지막 한가지가 남았다.
머리 빗기기.
평소 아내가 하던대로 주이를 거울 앞에 앉히고 머리 고무줄을 입에 물고
스프레이로 물을 뿌려 가며 빗으로 빗기기 시작 했다.
그런데 그것이 생각 처럼 만만 하지가 않다.
"주이야! 제발 머리좀 돌리지 마라!!"
"언니야!! 압빠가 머리 돌리지 말래자나!!"
겨우 겨우 묶고 보니 한쪽은 올라갔고 또 한쪽은 옆으로 쳐졌다.
맘에 안 들어 풀러서 다시 묶고 하기를 서너번 만에 결국 대충 묶고
말았다. 주이 머리를 다 빚기고 나자 진이가 자기도 머리를 빗겨 달라고 한다.
"진이야 넌 머리 빚지 말고 그냥 집에 있어.
아빠가 언니 금방 데려다 주고 올께. 응..?"
"안되요오. 나 맨날 언니 유치원 갈때 엄마랑 가치 가딴 마례요."
"밖에 바람이 많이 불어서 그래 진이야."
"지더~~ 지더~~ 나두 가치 갈래잉~~"
결국 진이도 옷 입혀서 아파트 앞으로 같이 나가서 유치원 스쿨버스를 기다렸다.
주이와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 몇명이 엄마와 함께 나와 스쿨버스를 기다리며 놀고 있다.
엄마들의 묘한 시선을 한몸에 느끼며 어색하게 서 있자 버스가 도착 했다.
버스안의 선생님도 의외라는 듯한 표정으로 나에게 인사를 한다.
얼떨결에 선생님에게 인사하곤 진이 안고 집으로 뛰어 들어 왔다.
9시 30분.
급하게 주이 보내느라 어질러진 식탁과 부엌을 치우고 집안 정리를 대충하는데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전대요 주이 잘 해서 보냈어요?"
"그럼~ 잘해서 보냈으니까 걱정말고, 그나저나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되긴, 처억~ 붙었지."
"응, 잘했네... 수고 했어. 떨리진 않았어..?"
"그냥 배운대로 했더니 잘 되데..."
"그럼 주행시험은 언제 본데..?"
"오후 2시 넘어야 본다는데 집에 갔다가 이따 다시 올까요..?"
"여기까지 왔다가 또 갈려면 길에서 시간 다 보내겠다."
"그럼 이 근처 주이 친구네 집이 있으니까 거기서 그 엄마랑 있다가
주행 시험 까지 마저 치르고 갈께요."
"그려 집 걱정은 말고, 시험이나 마저 잘 치르고와."
진이는 내 몸에서 반경 1미터를 벗어 나려 하지 않는다.
책을 볼려고 해도, 글을 쓸려고 해도 내 주위에서 떠나질 않으며 이것 저것 계속 날 부려 먹는다.
"압빠, 나 응가 할래요."
"압빠, 나 응가 하면서 책보게 곰돌이 책 꺼내주제요."
"압빠, 이책 다 봐쩌여. 다른거 꺼내주제요."
"압빠, 응가 다해쩌요. "
"압빠, 또또이가 졸리대요. 비계좀 꺼내주제요."
"압빠, 또또이 자니깐 떠들지 말고 조용히 하제요."
"압빠.... 압빠.... 압빠...."
진이와 이렇게 씨름을 하다 보니 어느덧 점심때가 되었다.
점심은 찬밥 남을것들로 볶음밥을 만들었다.
내딴엔 제법 먹음직 스럽게 만들어 진이와 단둘이 점심을 먹었다.
진이야 장난만 하고 별로 먹진 않았지만...
점심 설겆이를 하는데 주이가 우당탕 쿵탕 뛰어 들어 온다.
그제서야 진이는 나에게서 떨어져 주이에게로 간다.
진이는 주이가 유치원에서 돌아 온것이 반가운지 한껏 소리 지르며 장난을 건다.
오후 3시 반.
기다리던 아내의 전화가 왔다.
"어떻게 됐어..??"
"아휴~~ 신경질나. 완주를 하긴 했는데, 시간 초과로 떨어졌어욧!"
"아니 어쩌다 시간 초과를 했는데..?"
"내가 걸린 차가 하필 가장 고물차가 걸렸는데, 어찌나 그차가 고물인지 시동이 자꾸만 꺼지잖아요.
시동이 두번이나 꺼지는 바람에 아깝게 몇초 초과로 떨어졌어요. 아휴~ 생각할수록 신경질 나네..."
"그래도 코스 시험은 합격 했고 주행도 완주 했으니 잘 했네 머...
너무 아쉬워말고 담엔 되겠지. 머..."
아내의 아쉬워 하는 마음 못지않게 나 역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엔 당장 차 사진 않아도 된다는 안도의 마음도 역시 조금은...
오후 5시 경에 아내가 돌아 왔다.
이로서 오늘 나의 임무는 무사히 완수한 셈이다.
오늘 하루 아이들 챙기고 집안일 하며 느낀점은...
'오늘 하루니깐 그렇지 매일 이런 생활의 연속이라면... 으으~~
역시, 마누라는 있어야 혀~~~'
아내는 들어서자 마자 주행 시험에서의 아쉬움을 다시한번 강조한다.
"내가 걸린 차가 하필..... ..... "
저녁 내내 여기 저기서 아내의 운전 시험을 궁금해 하는 친지들로 부터 전화가 계속온다. 그때마다 아내는...
"내가 걸린 차가 하필..... ..... "
"내가 걸린 차가 하필..... ..... "
"내가 걸린 차가 하필..... ..... "
어이그 지겨워... 아예 녹음을 해서 틀어라 틀어...
그나 저나 내일 회사 일찍 출근 할려면 일찍 자야지.
1994. 10. 4. 늦은 밤에......
----강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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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이야기] - 회사 때려치다 -
강두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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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진현
'06.2.22 4:40 PMㅋㅋㅋ
역시 마누라는 있어야 하지요?
지난번 라디오에선가 어느 여자 분이
"나도 마누라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던데... 동감, 공감.^^*2. mjpark
'06.2.22 5:45 PMㅋㅋㅋ
진현님 말에 로긴했어요
저도 오늘 마누라가 넘 절실히 필요하던 참이라...( 나 아짐 )3. 라니
'06.2.22 7:59 PM^^
저도 웃어요.
저도 남편이 필요해요.
울 남편 없이 어찌 살까요?4. 라라
'06.2.23 10:55 AM저도 마누라가 있음 좋겠어요.(나도 아짐)
5. 강두선
'06.2.23 11:28 AM10년도 훨씬 더 지난 옛날 이야기지요.
지금은 주이가 고3, 진이가 중3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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