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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수다, 이야기를 만드는 공간

"여보, 미안해!"

| 조회수 : 1,491 | 추천수 : 21
작성일 : 2005-10-21 11:52:37
지금으로부터 이태 전쯤
백빽을 하나 사고 싶어서 친구랑 영등포 롯데백화점에서 만났습니다.
잡화매장을 돌다가 불현듯 내 눈을 잡아끄는 가방이 있었습니다.

이신우에서 나온 까만 가죽 백빽인데
은은한 광택이 나는 부드러운 가죽질감이 내 맘을 사로잡아 버렸습니다.
무심코 가격을 봤더니 무려 17마넌!
에누리라곤 하나도 없는....

그냥 놔두고 뒤돌아서 나오다가 나도 몰래 다시 한 번 뒤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물건은 다 어데 가고
그 가방만 환하게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금방 그 가격표를 생각하고는
강하게 도리질을 하며 무심한 척 다른 매장을 훑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시어머니께 사드린 가방 외에는,
올케 결혼할 때 혼수로 넣은 가방을 살 때 외에는
가방에다 그만한 돈을 지불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터무니없는 가격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그래봐라,
내가 그 비싼 가방을 금쪽 같은 내 돈과 바꿀 것 같애?
그런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오직 그 17만원짜리 백빽만 눈에 아른아른...

나의 갈등을 눈치 챈 친구가 나를 다시 이신우 매장으로 끌더이다.
"너 돈 벌잖아."
친구가 나의 알량한 알바를 들먹거리며 내 맘을 마구 흔듭니다.
"맘에 들면 질러버려. 이젠 너 자신을 위해서 살 때도 됐잖아?"

그 말에 힘입은 듯 나는 가방을 다시 들고 이리저리 뜯어보며
어딘가 흠 잡을 데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까뒤집어보아도 맘에 안 드는 구석이 없었습니다.

지퍼 달린 앞주머니, 손수건 한 장 정도와 메모지 넣을 옆주머니 두 개, 속주머니,
가죽끈으로 부드럽게 조여주는 입구,
지퍼 손잡에 달린 앙증맞은 가죽 장식,
무엇보다 윗덮개에 예쁜 당초문이 섬세하게 누비되어 있는,
사이즈마저도 맞춤한,
단순하지만 내 눈에는 너무나 이뻐 보이는 가방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어쩝니까? 지갑을 열밖에.
돈이라는 게 아무것도 아닙디다. 가방 하나에 17만원이라니!
하필이면 그때 집밥도 잘 못 먹고 타지로만 떠도는 출장맨 남편이 생각날 게 뭐람.
카드결재를 하면서 나는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여보 미안해!"

순간 친구가 배꼽을 잡고 웃어제낍니다.

그날 집에 온 남편에게 그 가방을 보여주면서 좀 줬다고 했더니
예쁘다, 잘 샀다고 하면서
그렇잖아도 가방 하나 사주고 싶었는데 어떤 걸 사야 할지 몰라서 못 샀다고,
자기가 사준 걸로 해달라고 합니다.
그러고는 그자리에서 현금 17만원을 주는 겁니다.
그의 돈이나 내 돈이나 뭐가 다르겠습니까마는
저는 낼름 받아서 내 지갑으로 넣었습니다.

이후 친구들 모임에서 그 친구가 있어 보이는 가방을 들고 나왔는데
다른 친구가 그걸 보더니 "좀 줬겠다?" 합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황급히 입을 막으며 나를 흘끔 돌아보면서 여보 미안해, 합니다.
다른 친구들이 뭔말이야? 하는 표정으로 서로 돌아보았지만
우리 둘은 더 크게 웃었습니다.
나중에 들은 말이지만 그 친구의 가방은 백만원을 호가하는 거였나 봅니다.

요즘 나는 이 가방을 아주 유용하게 사용합니다.
아무리 가지고 다녀도 싫증이 나질 않고 사랑스럽기만 하지요.
내가 망설일 때 나를 부추겨준 그 친구가 고맙기도 합니다.
지금은 아무리 다녀보아도 내 가방만큼 이쁜 가방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만하면 17만원의 값어치는 충분히 하고 있는듯...

이상,
결코 비싸다고도 싸다고도 할 수 없는 내 사랑스런 17만원짜리 가방 자랑질이었습니다.
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갯바람
    '05.10.21 1:44 PM

    괜히 뭉크해집니다. 이 해 가기전에 마눌한테 뭘 하나 사줘야 겠다는 마음이 들게하군요

  • 2. 카라
    '05.10.21 3:24 PM

    서로 다툼이 있어도 조금씩 이해하고 살아야죠. 저라면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뒤에서 그런 말은 안했겠지만

    설사 그런 말을 들었다해도 그 개주인에게 따지지 그런식으로 행동은 안할거 같습니다. 그 분은 이성을 잃었

    던거지요. 아마도 다른 아이가 때렸다면 그 부모에게 찾아갔다 그 아이를 똑같이 때려줄거 같은 사람입니다.

  • 3. 강금희
    '05.10.21 6:12 PM

    네, 다른 병원으로 옮겨 입원하신 저희 어머니는
    이제 닷새 가량 후에는 퇴원하시겠다 합니다.
    그러나 이따금 바깥세상이 얼마나 궁금하신지,
    승용차 뒤좌석에 누워 실려가서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제사에 참사를 하시곤 합니다.
    수술 전에는 15미터 정도만 걸어도 잠깐씩 앉아서 쉬어야 또 걸을 수 있었는데
    수술을 하고난 요즘은 1킬로미터를 거뜬히 걸었다고 자랑하십니다.
    나중에 앉은뱅이 되어 며느리 고생시킬까봐 늘상 걱정하셨는데
    요즘은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이 보기 좋아
    500여 만원 수술비가 아깝지 않습니다.

    염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4. 둥둥이
    '05.10.21 8:06 PM

    전 화장품사면 딸려오는 가방들있죠..
    그걸 시어머님이 주시면 신나라 들구댕깁니다..
    워낙 그쪽에 관심이 없어서요..^^;;
    저도 언젠가 맘에 꼬옥 드는 가방이 나타나면..
    여보미안해~하고 살랍니다.

    얼마전에 매실 걸렀는데..
    너무너무 잘됐습니다.
    강금희님 덕분이네요..
    내년에도 잘 부탁드려요~

  • 5. 맘~짱
    '05.10.23 4:36 AM

    원글님은 그래도 나으세요...
    저 얼마전 남색 면치마 하나에 20만원 넘게 주고 며칠 잠을 설쳤답니다..ㅎㅎ..
    정말 남색에 면으로된 것으로 아무곳서나 볼수있는 흔한 치마를 그것도 세일가로 20만원넘다니..흑~흑~
    같이 간 사람이 있었고 담날 바로 꼭 입어야 해서 이래저래 정말 사지 않음 안되었더람니다..
    정말 남색에 면에 아무 문양도 없이 걍 A라인으로 떨어지는 구김도 잘가는 치마이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아프고 배아픈 치마이지만.......
    휴~바꿀수도 없고 성격 버리는것보다.....[그래도 유행을 크게 탈 일없으니 무난히 오래입겠지~]하며
    나름 위로 하며 눈물 훕칩니다...크~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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