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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의 시절 권력의 무자비한 고문 실태를 담은 <남영동 1985>(이하 '남영동')이 22일 개봉했다. 해당 영화는 <부러진 화살>로 올해 초 뜨거운 이슈몰이를 했던 정지영 감독의 차기작이다.
<남영동> 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으니 바로 <26년>이다. <26년>은 광주 5·18, 그러니까 민주항쟁 당시 시민들을 향해 무자비하게 총구를 들이대며 살상을 벌인 국가 권력에 대한 복수극이다.
우선 두 영화가 표면적으론 국가에 대한 비판을 조명하는 것 같지만 그 내용이나 성격은 전혀 다른 작품임을 알아야겠다. 전자는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일종의 '팩션'의 성격이 강하다면 후자는 철저하게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픽션'이니 말이다. 예산 규모로 봐도 <남영동>이 4억 6000만원으로 사실상 저예산 영화라면, <26년>은 46억 원 규모의 상업 영화다.
오히려 두 영화의 공통분모는 배급시스템에 있다. <남영동>과 <26년> 두 작품 모두 거대 배급사가 배급을 거부한 이후 중소배급사가 직접 배급에 나선 경우니 말이다.
<남영동 1985>와 <26년> 배급사는 어떤 곳?
<남영동>과 <26년>을 극장에서 오래 보기 위해선 두 영화가 개봉하는 해당 주, 그러니까 개봉 첫 주에 봐야한다. 그 이유는 바로 그 다음주 스크린 수의 증가와 감소가 좌석 점유율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 여기에 하나 더 극장 체인을 갖고 있는 대형 배급사가 아닌 중소배급사라면 상대적으로 스크린 수의 증감을 뼈저리게 체험할 수밖에 없는 국내 영화 산업 시스템 때문이기도 하다.
<남영동>의 배급사는 엣나인필름으로 영화인들 사이에선 꽤 알려진 중견회사다. 엣나인필름은 메가박스 이수와 메가박스 출판단지, 남산 자동차 극장을 운영하고 있는 회사로 배급업 관련해서는 그간 작품성 있는 외화, 국내외 예술영화를 주로 배급하기도 했다.
<26년>의 배급사는 인벤트 디로 최근에 영화 <비정한 도시>를 배급한 회사다. 이곳 역시 주로 외화를 중심으로 배급을 진행했고, 비교적 신생 배급사로 알려졌다.
22일 개봉한 <남영동>은 현재 289개의 스크린을 확보했다. 보통 CJ E&M이나 롯데 같은 대형 투자·배급하는 영화가 평균 500개 규모에서 많게는 800개로 시작하는 것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숫자로 보인다. 하지만 국내 영화 산업 시스템을 고려했을 때 소규모의 중소배급사 치곤 무난한 출발이라 할 수 있다.
▲ 영화 <남영동 1985>의 고문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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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일 저녁 서울광장에서 열린 영화<26년>콘서트에서 영화의 주제곡을 위해 자신의 곡인 ‘꽃’을 편곡하고 제1호 투자자인 가수 이승환이 영화에 대한 응원을 부탁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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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 첫 주에 관객 몰리지 않으면 사실상 영화 내려야 하는 현실
문제는 그 다음 주다. 멀티플렉스 체인 중심의 현재 국내 영화 산업 구조로 개봉 직후 좌석점유율에 따라 내주의 상영관 개수가 조정되기 때문이다. 여기서부턴 철저하게 산업논리가 적용된다. 즉, 좌석점유율에서 상위권에 들지 않으면 가차 없이 상영관 수가 줄어든다는 말이다.
외화의 예를 들면 더 적나라하다. 글로벌 배급사가 아닌 국내 수입사가 들여오는 외화의 경우 개봉 첫 주 100개 이상의 상영관을 얻기에도 빠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첫 주 성적이 좋지 않아 좌석점유율에서 하위권으로 떨어지면 그 다음 주 상영관은 반토막이 나고 시간대 역시 심야나 오전으로 밀려 사실상 상영 종료의 수순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참고로 지난 1월 18일에 개봉했던 <부러진 화살>(당시 배급사는 NEW)은 첫 주 245개의 스크린으로 시작해 7일만에 약 90만 관객을 모았고, 좌석점유율 역시 상위권이었다. 이로 인해 스크린 수가 급증, 일주일 후인 25일 무렵엔 456까지 올라가 결국 영화 흥행의 발판이 됐다.
한 외화 수입 관계자는 "좌점율이 기준이라지만 정말 무섭다. 거대 배급사 경우엔 상대적으로 성적이 저조해도 상영관이 주는 폭이 좁지만, 외화나 중소기업 배급의 영화는 반토막에서 심하게는 3분의 1로 줄기도 한다"며 "입소문이 나서 장기 상영으로 가거나 개봉 첫 주 관객이 몰려 상영관이 늘어나는 걸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엣나인필름의 정상진 대표는 22일 저녁 <오마이스타>와의 통화에서 "한국 영화 전체 스크린 수를 대비했을 때 이 정도면 많이 열어준 거라고 본다. 당장 <늑대소년>이나 외화 <브레이킹 던2>가 잘되고 있는 걸 볼 때 말이다"고 답했다. 이어 정 대표는 "문제는 그 다음 주다. 현재 <남영동>이 치고 올라가는 스코어는 아닌데, 직장인들의 퇴근시간대가 관건이다. 개봉 당일 3만 명만 올라오면 선방할 수 있을 거라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오는 29일 개봉하는 <26년> 역시 사정은 비슷할 수밖에 없다. 아직 상영관 규모가 정확히 나온 건 아니지만 관계자 말에 따르면 많게는 400개 정도를 기대하는 상황이다. 대형 배급사와 맞먹을 수 있는 수치지만 이 역시 관객 수가 적어 개봉 첫 주 성적이 부진하다면, 그 다음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중소배급사를 끼고 나오는 영화들이 작품성 보다 산업논리에 의해 관객과 멀어지는 일은 막아야 할 것이다. 만에 하나 두 영화를 정말로 기다렸고, 주변 사람들과 함께 두고두고 보고 싶다면 일단 개봉 첫 주엔 꼭 보도록 하자. 목요일부터 금, 토, 일까지 총 4일의 기간을 노려야 한다.
▲ 영화 <26년>의 한 장면 |
ⓒ 영화사 청어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