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8.7
내일 행정대집행이 들어와도 오늘 우린 가지장아찌를 담글것이다.
아침 5시 50분경, “여섯시 십분전입니다. 둥둥둥” 누군가 20리터 들이 생수통을 젬베 처럼 두드리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이들을 깨운다. 다시 두물머리의 하루가 밝았다. 5일 전야제부터 어제 새벽의 행진과 행정 대집행 유보… 그리고 휘청거리게 하는 더위 탓인지 3일은 지난것 같다. 오늘이 어제의 내일이라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여섯시, 모두들 아직 개운하지 못한 얼굴로 텐트촌 앞마당에 모였다. 어제 아침에 비하면 훌쩍 줄어든 숫자지만 당사를 옮긴 녹색당 당직자들, 매일 조를 짜서 두물머리를 지키겠다는 계획인 민주통합당에서 화요일 지킴이로 나선 박수현 박홍근의원을 비롯한 정치인, 5일부터 함께해준 시민들, 천주교 신부님들, 농민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새벽같이 또 두물머리를 지키려고 모였다. 아마 두물머리가 아니었다면 서로 보지 못했을 잠에서 막깬 아침의 얼굴들을 마주하고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서로 절을 한다. 실제로 행정대집행을 시행하려고 시도가 있던 없던, 어제밤 모두 모여 결정한대로 두물머리 유기농지를 지키기위해 매일 아침 행진을 하기로했기 때문이다.
전날 만들어 입었던 메시지가 적힌 광목 앞치마를 두르고 “강변에서 농사짓자” “농사가 공익이다”라고 쓰인 만장을 들고 행진을 시작한다. 어제의 행진 컨셉이 “춤”이 었다면 2일차 행진은 “산책”이다. 어제 밤, 다음날 별 다른 "상황"이 없다는것을 확인하고, 그런때 두물머리의 고요함을 느끼면서 앞으로 길어질 싸움에서 충전을 하는 행진을 하자는 의견에 따른것이다. 두물머리의 저항방식은 구름이 변하듯, 풀이 자라듯 매일이 다르다. 누군가 지금 이렇게 긴급한 상황에 혜은이의 “열정”같은 가요에 “춤판”을 벌이고, 한갓지게 “아침 산책”이나 하다니, 이렇게 느긋해도 되는거냐 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맞는지 틀리는지 그런것은 모르겠지만 두물머리를 지키겠다고 모인 사람들은 이것이 두물머리다운 방식이라고 이야기한다.
(사진: 봄날)
엠프에서 흘러나오던 음악대신 생수통 젬베와 칼림바를 연주하는 소리와 풀벌레 소리를 행진곡 삼아 어제의 그 춤판이 벌어졌던 대치 장소를 지나 두물머리 논둑길을 걸어간다. 두물머리 밭전위원회가 올해 모내기를 한 논이다. 국토부가 계속 두물머리를 압박하면서부터 밭전위원회와 농부들은 아스팔트 모내기를 많이 하느라, 돌보지 못해 풀밭이 되어버린 다른 밭들 처럼 논에도 피가 반이다. 올 가을에 추수도 하지 못하고, 어쩌면 저 푸릇한 벼가 누렇게 되는 것도 보지 못하고 이곳을 잃을 수 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고운 벼의 모습을 보니 발에 힘이 조금 더 들어가기도 한다. 강가로 둘러진 논둑길, 한사람 겨우 지나갈 정도의 길을 지나 한참 걸으니 두물이 만나는 것을 볼 수 있는 터에 다다랐다. 지난 902일간 천주교 사제들이 하루도 빼놓지 않고 미사를 드린 미사터이기도 하다. 아침 행진은 이것으로 소박하게 끝이나고 , 발언과 토론이 이어졌다. 한 밭전 위원은 국토부가 "하천 법에 따르면 불법이기 때문에 두물머리에서 농사는 지을 수 없다고 계속 주장하지만, 그것은 정확하게 말하면 시행 규칙을 수정할 '예정'이라는 근거로 한 주장이라며 아직 생기지도 않은 규칙 때문에 불법이라면, 우리는 남윤인선 의원이 하천법 개정 발의 중이니까 그럼 합법이라고 주장해야 해야 되는것 아니냐"며 농담처럼 국토부의 우스운 억지를 꼬집었다.
그렇게 아침행진과 작은 집회가 마무리되고 아침식사가 시작되었다. 야채죽과 토마토 쥬스. 아침을 먹으면서 한 국회의원이 두물머리 문제로 인터뷰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스마트 폰을 켜 라디오 주파수를 맞춘다. 밥을 먹던 사람들이 밥그릇을 들고 라디오 소리가 나는 곳으로 모여든다. 무슨 축구경기라도 보는듯한 분위기였다. 그렇게 7일 아침도 무사히 보내고, 앞으로 길어질지도 모를, 언제 시행될지 예상되지 않는 행정대집행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전체가 회의를 했고, 여러 팀으로 나누어 두물머리에서 사람들을 계속 만날 수 있도록 정비를 하기로했다.
뜨거워 지는 시각 각자 팀으로 흩어져, 엄청나게 쏟아지는 햇볕을 가릴 차광막을 치고, 문화제를 기획하고, 트위터 페이스북 온갖 게시판에 두물머리 상황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두물머리 유기농지 보존이 대작전(http://riverun.org/doyou)라는 페이지에 가면 <두물머리와 함께하는 일주일>이라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업데이트 되어있고, 지금 두물머리 행정 대집행을 막기 위해 시민으로서 할수 있는 일들(http://riverun.org/doyou/aciton)이 제안되어있다. 새로운 제안으로 두물머리에 비상 상황이 오면 문자로 연락을 줄 수 있도록 전화번호를 등록하는 두물머리 비상연락망을 만들자는 것도 있으니 언제든 달려 올 수 있도록 전화번호를 등록하는것도 좋겠다. 어떤 팀은 이 한주동안 매일 저녁 8시에 열기로한 집회 혹은 문화제를 어떤식으로 만들지 아이디어를 모았다.
그렇게 해서 매일 다른 주제를 가지고 패널을 모아서 토크쇼를 하는것을 가닥을 잡았다.
요즘 같은 더위 속에서 낮에 야외에서 활동하는 것은 불가능하기때문에 두물머리의 한낮은 시간이 정지한것 같다.
각자 알아서 조금 더 시원한곳, 그늘을 찾아 사라진다. 어쩌다 보이는 휘적휘적 찡그린 까만 얼굴들이 불타는 흙길을 사막처럼 걷는다. 요즘 두물머리의 낮은 밤보다 길다. 그렇게 힘들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낮시간이 지나고 나니 삼삼오오 밭전위원회 텃밭 머리에 있는 원두막 그늘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이곳은 참여자들이 자발적으로 제안해서 진행하는 각종 워크숍이 진행되거나 농성에 필요한 물건들을 만드는 작업장이다. 오늘은 행정대집행등으로 수확시기를 놓친 가지수확과 두물머리 흙으로 토우만들기가 진행되었다.
두물머리 흙에 반해서 이곳을 지키고 싶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다. 두물머리 흙이 맨발에 닿는 느낌, 손에 닿는 느낌은 경이롭다. 도시에서 제일 귀한게 어쩌면 흙이라고 한다. 그런데 두물머리 흙은 그중에서도 가장 비옥한 흙중에 하나일 것이다.
실제로 다른 곳에서 농사를 지어본 사람은 이 흙이 포장되거나 방치되어 망가지는게 얼마나 아까운지 잘 알것이다.
보드랍고 촉촉한 흙. 강이 흐르면서 수천년간 퇴적된 흙이다. 수십년간 농부들이 유기농사를 지으며 살린 흙이다.
그런 흙을 퍼다 놓고 점성을 높이려고 밀가루 풀도 조금 쑤어넣고 물을 섞어 반죽하니 그 자체로 신기하고 재미난 놀이다.
손을 움직이는 즐거움. 워크샵에 참여한 사람마다 흙 반죽의 느낌에 탄성을 지른다.
"멀긴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농성하는 곳이 두물머리라서 다행이다. 서울 같은 곳에서 장기 농성을 한다면 견디지 못할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흙빚기 삼매경에 빠져 있으니 슬슬 해가 지고 저녁 식사를 할때쯤 되니 사람이 부쩍 늘어있다.
월요일에 집에 갔다가 다시온 얼굴도 많고, 새로운 얼굴도 많아졌다.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원두막 앞에 꾸며진 유기농 토크쇼에 참여하기 위해 모였다. 모기불과 조명과 가지 한 더미.
WETA-국제 생태 화장실 협회 회장이라는 직함을 가진 수상한 사나이와 하승수 녹색당 사무처장이 진행하는 토크쇼다.
주제는 " 가지가지한다 가지장아찌에서 탈핵으로" 다소 긴장하고 두물머리에 연대하기 위해 급히 달려온 사람들은 이 평화롭고 이상한 풍경에 당황한것도 같다. 그도 그럴것이 하늘과 풀과 강물을 배경으로 무대앞에는 가지가 한더미 있고 몇몇의 사람들을 그것을 썰고 실로 꿰고 두 사회자는 가지에 대한 개인 취향을 이야기 하다가 요리 프로처럼 가지 장아찌 담는 법에 이야기를 하고 있고 모기불 연기가 무대 효과 처럼 흐르고 있으니 말이다. 계획된 내용도 없고 임기 응변으로 이야기 하다보니,
사회자들도 가지와 탈핵을 어떻게 연결시킬지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란다. 코미디같은 상황. 공대위 유영훈 위원장이 늘쌍이야기 하시는 '엉터리' 군단들의 집회. 그래도 기획 의도를 들어보니 나름 고개가 끄덕여 진다. 그간의 정부의 괴롭힘에 대응하느라 농사일이 밀려서 방치되고 있는 농산물도 수확하고 갈무리할 필요가 있는데 시간이 부족하니 이왕에 일도 하며 투쟁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자리를 만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토크쇼 중간중간 연대 발언도 이어졌는데,
양평군에서 오랫동안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노숙 농성을 하고 있는 청소 노동자들은
"군수님은 항상 법 이야기를 많이 하시는데요"라고 하면서 법을 운운하며 본인들의 요구를 불법으로 만들어 버리는 권력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어디에나 그 "법"이라는 것이 약자에게 휘두르는 폭력을 교묘하게 가려주고 비호해주는구나 공감하게 된다.
허영구 좌파노동자회 대표는 "일본에서는 행정 대집행이라 하지 않고, 강제대집행이라고 한다"며 이 나라 법도 "강제대집행"이 맞는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60년대 나리타 공항 건설로 농민들의 투쟁이 수십년간 지속되고 있다며 두물머리도 중요한 투쟁을 꼭 이기고 이어나가라고 말했다.
어설펐지만 어디서도 볼 수 없을 유기농 토크쇼는 "내일 행정 대집행이 들어와도 오늘 우린 가지 장아찌를 담근다"
"장아찌를 오늘부터 3일뒤 부터는 먹을 수 있다니까 3일뒤까지 버텨서 가지 장아찌와 막걸리 한잔하면 좋겠다. 소박하게 가지장아찌를 만들고 좋아하는 사회가 탈핵사회일 것이다."는 두 사회자들의 이야기로 마무리 되었고, 다시 다음날 우리는 어떤 하루를 맞이 하게 될까 생각하며 텐트로 향한다.
* 두물머리 농지보존 공대위 카페 : http://cafe.daum.net/6-2nong
* 두물머리 유기농지보존 대작전 : http;//riverun.org/do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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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