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녹색당을 알려주마
총선이 며칠 남지 않은 시점, 선거의 막바지로 갈수록 여야의 공방은 치열해지고 조중동문 찌라시의 핑크빛 선전도 낯 뜨겁게 계속되고 있다. 이 혼탁한 시류에 맞서 국내유일의 민족정론지 딴지일보는 도도하게 자리를 지키며 깨어있는 시민들의 역사적 선택, 4.11 총선을 준비하고 있다. 앞서 필독 님의 ‘정당비례투표를 도와주마!’ 기사를 접한 독자 여러분 사이에서 녹색당과 청년당에 대한 소개요청이 쇄도했다. 이에 화답하여 녹색당을 소개하며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을 드리고자 한다.
언제까지 핵발전소 돌릴 텐가?
옆 나라에서 핵발전소가 무너졌다. 옛날 옛적 얘기도 아니고 바로 일 년 전 일이다. 그동안 27만 후쿠시마 지역 주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 열도 전체가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원전사고 이후 삶은 불안의 연속이다. 기형아의 출산을 두려워하는 젊은이들이 임신과 출산을 포기하고 있다. 당장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농수산물이 없다.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곳이 어디인가 찾기 위해 시민들이 스스로 방사능측정기를 들고 다니며 알아보고 있는데, 그 결과를 인터넷에 올리거나 하여 남들에게 알리면 불법이 된단다. 시민들의 입을 틀어막는다고 방사능 물질이 사라질 리 없는데 정부의 대책이 이렇다. 다른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원전은 천재지변으로 인한 사고였다. 사람이 성실하게 대비해서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단 말이다. 일본 사람들이 미처 막지 못한 사고를 우리나라 사람들은 막을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은 어느 마피아의 호연지기? 우리나라 핵발전소는 5~6.5리히터 규모의 지진에 버티도록 설계되었다. 하지만 한반도에서는 10년 주기로 규모 5.0 이상의 지진이 발생했으며, 5년 안에 6.0 이상의 지진이 올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참고로 후쿠시마 원전의 내진설계 기준은 7.9였으나, 예상하지 못했던 강도 9의 지진에 무너지고 말았다.
물론 한반도엔 대지진이 살금살금 피해가거나, 지진이 일어나도 모든 핵발전소가 지각판에 임플란트 박고 팔십 세까지 튼튼하게 서있는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그런데 핵발전소에서 뿌리가 돋아나길 기대하는 대신, 그냥 이걸 안 해버리는 방법도 있다. 졸라 위험한 걸 안전하다고 우기지 말고 이제 그만하자. 낡은 핵발전소는 핵폭탄이다. 이것이 녹색당의 강령 1조다.
한반도의 지진 발생지역과 원자력발전소 위치
오른쪽 지도는 기상청 발표, 국내지진발생 추이(1978~2011년)
왼쪽 지도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보고서, 한국의 원자력발전소 위치(2011년)
핵발전소의 폐기는 지역 주민들의 오랜 염원이었다. 지난 4월 4일, 부산 기장군 장안읍발전위원회는 고리원자력발전소의 폐쇄를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통해, “납품 비리에 이은 고리1호기 비상전력 공급중단 사고와 사고은폐는 고리원전에서도 일본 후쿠시마 원전과 같은 사고가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선언하며 ‘고리원전 즉각 폐쇄를 위한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에 앞서 3월 22일, 부산시의회는 고리 1호기의 폐쇄를 촉구하는 대정부 건의안을 결의하고 결의문을 관계부처에 발송했다. 가동 이후 2011년까지 총 108건의 불시정전 사고가 있었던 핵발전소, 안전하지 않다면 폐쇄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시민들의 요구사항,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고경위를 조사한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노후한 고리 1호기의 재가동을 승인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참고로 새누리당 비례대표 1번 민병주 후보는 지난 2007년, 설계대로라면 30년이 지나 폐쇄돼야 했던 고리원전 1호기의 수명연장에 관여하신 위인이란 사실을 알려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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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당은 노후 핵발전소 폐쇄법안을 추진하고 있으며, 2030년까지 핵발전소를 모두 폐기하고 대체에너지를 개발하는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다. 이 계획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린다. 가능하다. 실제로 독일의 녹색당은 사민당과의 연정으로 2022년까지 자국 내 모든 핵발전소를 폐기하도록 원자력법을 개정하는 데 성공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번 총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 진보신당 역시 원전폐기 및 재검토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소수정당인 녹색당과 정책적 연대의 가능성이 보이는 지점이다.
방사능 위협 유일한 대안, 녹색당
녹색당의 첫 번째 비례대표, 탈핵후보 이유진의 이야기
녹색당은 한 발 더 나아가 방사능에 오염된 일본산 식료품을 추적하고 시민들에게 알리며 정부에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일을 계속해왔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우리나라에서 수입한 일본산 수산물 중 세슘이 검출된 물량은 무려 1,768톤에 달한다. 이에 대응하는 우리 정부의 태도는 미온적이다 못해 냉랭한 정도. 냉장명태부터 냉동고등어까지 방사능에 오염된 각종 수산물이 국내로 수입되는 와중에, 일본산 생선을 국산으로 귀화시켜 판매했던 악덕 유통업자들의 활약상도 드러났다.
녹색당은 우리의 밥그릇을 지켜내기 위해 발로 뛰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에 수 차례 일본산 수산물의 수입금지, 일본산 수입식품에 대한 방사능 검사 강화, 식품방사능에 대한 엄격한 관리대책을 촉구해왔다. 녹색당은 모든 국민이 안전하고 영양가 있는 먹을거리를 구할 수 있는 식량정의를 추구하는 정당이기 때문이다.
4월 6일, 녹색당 광화문 선거캠프에서의 기자회견 (관련자료)
4대강 삽질을 막을 이는 누구인가?
가카치세 토건성대, 대운하로 시작해 4대강으로 이름을 바꾼 대규모 난개발 삽질로 전국의 강줄기가 죽어가고 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저항하고 있는 농민들의 땅, 팔당 두물머리를 기억하자. 팔당의 농민들은 가카에게 당한 걸로 치면 우리 국민들 중 누구보다도 고농도의 고초를 겪은 분들이다.
팔당호 일대가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뒤 이곳 농민들은 유기농업을 시작했다. 팔당 지역은 유기농특구로 지정됐던 수도권 최대의 친환경 농업단지로 2011년에는 세계유기농대회가 열리기도 했던 곳이다. 2007년, 대선후보 시절의 가카께서는 친히 팔당을 찾아와 유기농업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노라 약속했다.
그러나 가카의 약속은 역시나 거짓말, 이 친환경 농업지역에 4대강 정비 토건족이 들이닥쳤다. 친환경 농업이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기상천외한 흑색선전이 난무했고, 세계유기농대회 조직위원장을 맡기도 했던 경기도지사 김문수가 유기농이 발암물질을 생성한다는 참신한 주장을 발표해 세계농업계를 혼란에 빠트리는 한편, 국토관리청은 농지에 침입해 불법적인 토지측량을 감행했다.
우리나라 친환경 농업의 역사가 시작된 유기농업의 중심지, 팔당의 농민들은 대를 이어 일궈온 삶의 터전에 토건족의 삽날이 쑤시고 들어오는 꼴을 가만히 지켜보지 않았다. 이들은 반민주적인 4대강 사업을 저지하기 위해 지치지 않고 싸웠다.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팔당부터 서울까지 꼬박 2박 3일을 삼보일배 하고, 자기 몸을 바쳐 단식으로 투쟁했다.
오랜 시간 저항해 온 팔당의 농민 유영훈은 녹색당의 두 번째 비례대표 후보가 되어 이번 총선에 출마했다. 유영훈 후보는 자영농 중심의 농업진흥과 한미 FTA 폐기, 식량자주권 확보를 중심으로 지속가능한 농업정책을 주장한다. 누군가에게 4대강은 철지난 이슈일지 모르지만 녹색당은 포기하지 않는다. 4대강 심판과 탈토건을 약속하는 녹색당 농민후보 유영훈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3월 21일, 4대강범대위와 녹색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통합진보당의 정책협약식
생명의 권리는 중요한 가치인가?
녹색당의 공식행사는 국민의례 대신 생명의례로 시작한다. 생명의례의 절차는 지금 여기에 함께 있는 소중한 생명인 주변 사람들과 인사하며 시작하고, 개발로 인해 스러져간 생명을 위해 묵념하며 끝난다. 녹색당은 국가주의를 넘어, 전 인류가 동의하는 보편적 가치인 생명권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녹색당은 유일하게 생명권과 동물정책을 의제로 채택한 정당이다. 동물학대를 막고, 유기동물 대책을 세우고, 야생동물을 보호하며, 비윤리적인 공장형 축산을 금지하는 등 동물권을 확립하는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녹색당은 우리나라의 3대 동물보호단체(동물사랑실천협회, 동물자유연대, 카라)와 정책협약을 맺고 지지를 받고 있다.
녹색당 내 동물권 연구모임의 이름은 ‘개나 소나’, 이들은 말 못하는 동물들의 입장에서 생명의 권리를 고민한다. 개나, 소나, 사람이나, 동등한 생명의 권리를 법률로 보장할 수 있도록 명문화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일단 녹색당 안으로부터, 정당행사에 반려동물과 함께 참석할 수 있도록 합의하는 데 성공했다.
수평적 민주주의는 어떤 모습인가?
녹색당의 정당조직은 수평적인 구조로 느슨하게 얽혀있다. 녹색당에는 전국 각 시․도당의 연합체인 ‘전국당’이 있지만 서울 ‘중앙당’은 없다.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사무처장‘이 있으나 ‘사무총장’은 없다. 시․도당에서는 ‘운영위원장’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대표’ 따위는 없다. 녹색당은 기존 정당의 수직적 정당조직 구조와 이를 드러내는 용어의 사용을 거부한다.
녹색당은 여성, 청년, 청소년, 비정규직, 소수자를 포함한 풀뿌리사람들의 힘으로 정치의 변화를 시도한다. 녹색당의 여성당원 비율은 53%, 당직자와 국회의원 후보자 중에서도 여성의 비율이 절반 이상인 유일한 정당이다. 전국 각 시․도당 및 창준위에 20대 대표(운영위원장)의 수는 청년당 다음으로 많다. 또한 녹색당은 정당 비정규노동정책 평가에서 한국비정규센터, 민변, 민교협으로부터 만점을 받은 스마트한 정당이기도 하다. 녹색당의 모든 정책공약은 당원들의 직접적인 토론을 거쳐 만들어졌다. 국회의원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에서도 당원의 직접추천을 거쳤고 직선으로 결정했다.
다양한 생명이 공존하는 숲과 같이 녹색당과 함께하는 사람들의 출신성분도 다양하다. 환경운동가, 여성·청소년 인권활동가, 풀뿌리 주민활동가, 생협 조합원, 교육자, 성직자, 농부, 어부, 예술가, 의료인, 장애인, 채식인, 성소수자 등등. ‘나는 꼽사리다’의 두 띨띨이, 선대인 소장과 우석훈 선생 역시 녹색당의 친구들이다.
2012년 3월 4일, 녹색당 창당대회
마지막 선택은 녹색이다
핵발전소의 폐기, 4대강의 원상복구, 생명권 확립, 수평적 민주주의의 의제에 동의한다면, 그 영혼의 색상은 녹색임이 분명하다. 기존의 정당정치에 대한 환멸을 안고 기표소에 고독하게 선 채 20개나 되는 정당의 명단을 앞에 두고 고뇌할 초록빛 영혼의 소유자에게 이 글이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이번 4.11 총선에서 녹색당의 비례대표 정당 번호는 11번이라는 사실을 알려드린다.
녹색과 영혼의 싱크로율이 낮은 분들에게도 몇 가지 부탁을 드리고 싶다. 스스로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생태계의 파괴에 주의를 기울이시기를, 생명존엄성의 훼손으로 귀결되는 무분별한 성장을 약속하는 거짓말에 속지 마시기를, 그리고 새로운 정당의 창당을 분열의 조짐으로 오해하지 마시기를.
녹색당 창당대회 행사장에 전해진 진보신당의 축하 현수막
최근 창당한 녹색당과 청년당, (사회당과 합체하고) 늠름하게 버티고 있는 진보신당의 활동이 야권통합과 정권교체에 역행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생각이나 친박연합 등이 보수진영의 표를 분산시킬 가능성만으로 구국의 정당이 될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이유로, 소수 진보정당의 활동을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양당의 대결구도 속에서 승리를 위한 전략을 선택했다고 해서, 새로운 가치를 모색하는 사람들에게 냉소를 보낼 권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정당은 권력을 얻기 위한 수단이 될 수도 있지만, 권력을 분배하기 위한 실험장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녹색당은 비례대표 5%의 득표로 세 명의 후보를 국회에 입성시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탈핵후보 이유진, 농민후보 유영훈, 생명권후보 장정화는 녹색당의 가치를 현실로 펼쳐 보일 후보들이다. 또한 양양·영덕·봉화·울진의 박혜령 후보와, 해운대기장을의 구자상 후보가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로 나섰다. 영덕 핵발전소 유치 백지화 투쟁에 앞장섰던 박혜령 후보와 낙동강에서 환경생명운동을 계속해온 구자상 후보의 선전도 기대하고 있다.
생태적 지혜, 사회정의, 참여민주주의, 비폭력, 지속가능한 발전, 다양성의 존중, 녹색당의 가치를 지지하는 유권자에게 이번 총선은 즐거운 선택의 기회가 될 것이다. 이 기회는 소중한 한 표의 힘을 모아 우리 정당정치에 초록빛 새 봄을 여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에게 만약 미래가 있다면, 그것은 녹색이다.”
- 페트라 켈리
이동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