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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의 나는 잠시 다른 사람이 되었다

ㅇㅇㅇ 조회수 : 2,519
작성일 : 2026-02-12 23:44:08

 

나는 원래 사람을 쉽게 믿지 않는다.

내 사람이라고 확신이 서야 마음을 쓰는 편이고,

그 외에는 선을 분명히 긋는다.

스스로를 차갑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런데 병원에 몇 달을 있으면서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처음엔 매일 울었다.

왜 하필 나인가 싶었고,

운명 탓을 하다가 결국은 내 탓으로 돌렸다.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흘렀다.

몸이 아픈 것보다, 멈춰버린 삶이 더 서러웠다.

 

다인실이었다.

낯선 사람들과 하루 종일 같은 공간을 공유했다.

처음엔 불편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묘한 전우애가 생겼다.

같은 냄새, 같은 식판, 같은 한숨.

다들 하나씩은 무거운 사연을 안고 있었다.

 

그 공간에 오래 있다 보니

나는 이상할 정도로 마음이 말랑해졌다.

사람들의 사정이 들렸고,

그게 남 일 같지 않았다.

아마도 나 역시 약해져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중 한 남자가 있었다.

나보다 열 살 이상 많았고,

다리가 부러져 움직임이 불편했다.

입담이 좋았고, 작은 간식이라도 생기면 나눠주었다.

 

퇴원을 앞두고 짐을 정리하다가

문득 그 사람이 떠올랐다.

빨래할 게 있으면 마지막으로 해주고 가겠다고 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냄새 나는 양말과 누렇게 변한 흰 티를 내밀었다.

 

이상하게도 그게 불쾌하지 않았다.

그저 사지 불편한 사람이 혼자 빨지 못한 옷처럼 보였다.

나는 빨래비누로 힘껏 문질렀다.

 

그 장면을 남자친구가 봤다.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왜 그런 걸 네가 하냐”고,

“그건 선 넘은 부탁”이라고 했다.

 

그때의 나는 오히려 그 말이 더 이상했다.

힘든 사람을 돕는 게 왜 문제냐고 반박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나는 방어가 완전히 풀려 있었다.

 

퇴원 후 일상으로 돌아오자

병원에서의 일들은 빠르게 희미해졌다.

적응하느라 바빴고,

그곳 사람들은 점점 배경이 되었다.

 

그리고 일주일 뒤,

그 남자에게 연락이 왔다.

오만원만 빌려달라고.

 

그 문자를 보는 순간,

정신이 확 들었다.

곧바로 차단했다.

 

병원 안의 나와

병원 밖의 나는 다른 사람이었다.

 

나는 착해졌던 걸까.

아니면 그냥 약해져 있었던 걸까.

 

병원이라는 공간은

사람을 고립시키면서도 묶어둔다.

밖에서라면 경계했을 사람들과

안에서는 서로 기대게 된다.

아픔이라는 공통분모가

선을 흐리게 만든다.

 

나는 보살이 된 게 아니었다.

그저 무너져 있었고,

그래서 남의 무너짐이 더 잘 보였던 것이다.

 

퇴원 후 내가 다시 차가워진 것이

회복이었는지,

아니면 방어의 재가동이었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하나는 알겠다.

사람의 성격은 고정된 캐릭터가 아니라는 것.

환경이 달라지면 작동 방식도 달라진다.

 

병원에서의 나는

낯설었지만 거짓은 아니었다.

그 역시 나였다.

IP : 1.227.xxx.30
2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26.2.12 11:51 PM (118.37.xxx.223)

    선을 지키세요 선을...
    전화번호는 왜 알려줘서

  • 2. ..
    '26.2.12 11:54 PM (1.235.xxx.154)

    역시 아무나 도와주면 안되는..
    근데 전번은 왜?
    남자인데...

  • 3.
    '26.2.12 11:54 PM (112.146.xxx.207)

    잘 읽었어요. 충분히 공감하며 생각하며 읽게 만드는 글이네요.

    …원글님은 원래대로 ‘무사히 회복’한 걸까요, 열었던 문을 닫고 방어 모드로 들어간 걸까요. 험한 세상을 살기 위해.
    그건 의문으로 남을 수도 있겠고, 계속 생각하며 답을 찾아갈 수도 있겠네요.

    앞으로 건강하시길 바랄게요.

  • 4. ㅇㅁ
    '26.2.12 11:54 PM (222.233.xxx.216)

    사람의 심리와 행동이 상황과 형편에 녹아들다가
    거기서 빠져 나오면 또 달라지고
    그런것 같아요
    원글님 건강하시길.. .

  • 5. ...
    '26.2.13 12:05 AM (211.235.xxx.132)

    마음이 착잡하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드네요
    허진호 감독의 영화 '행복'이 떠올라요

  • 6. 밤에
    '26.2.13 12:09 AM (59.11.xxx.27)

    음...어떤 느낌인지 알겠어요
    이 밤에 이 글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원글님 건강하시길 그저 건강하시길

  • 7. 숏 단편
    '26.2.13 12:15 AM (116.41.xxx.141)

    같은 ..
    오 넘 잘 읽었어요
    구구절절 다 가슴에 새길말들
    이밤의 행운이었네요 ..

  • 8. 근데
    '26.2.13 12:18 AM (125.178.xxx.170)

    다인실에 남녀 환자가 같이 있나요.
    남편이랑 엄마 입원해서 간병해봤는데
    그런 걸 못 봤어요.

  • 9. ...
    '26.2.13 12:20 AM (61.43.xxx.178)

    흥미롭게 읽었어요 글 잘 쓰시네요
    사람의 성격은 고정된 캐릭터가 아니라는 것 동감해요
    그 모습들도 다 나죠

  • 10. 그러니까
    '26.2.13 12:21 AM (221.147.xxx.127)

    어디에서든 얽히고설키면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겠죠
    다인실에서 나와 이제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선을 그을 수밖에 없어도
    원글님은 충분히 따뜻한 분이시네요

  • 11. ㅇㅇ
    '26.2.13 12:24 AM (211.220.xxx.123)

    오 완전 공감하며 그렇겠다하고 읽다가 첫댓보고ㅋㅋㅋ
    간접경험으로 잘배웠습니다
    건강합시다
    회복하셔서 다행이에요!

  • 12. 이른바
    '26.2.13 12:30 AM (218.155.xxx.188)

    일시적 공동체여서 그런 거지요.
    스톡홀름 증후군이 왜 생기겠어요.

    전 퇴원하고 나서 입원했던 병실 찾아간 적도 있음.

  • 13. 다시 한번
    '26.2.13 12:32 AM (121.166.xxx.251)

    느끼지만 남을 동정하는건 위험해요
    나는 선의를 베푼다고 하지만 남은 그걸 빌미로 삼거나 우스워합니다

  • 14. ㅇㅇ
    '26.2.13 12:35 AM (211.220.xxx.123)

    퇴원하고 병실찾아간분 최고시네요ㅋㅋ
    저는 물리치료사님 한테 다 낫고나서 빵사가고
    그랬더니만 전화번호줘서 기절할뻔

  • 15. ....
    '26.2.13 12:46 AM (211.202.xxx.120) - 삭제된댓글

    5만원은 간보기의 시작이에요

  • 16. ...
    '26.2.13 12:55 AM (173.63.xxx.3)

    글만 읽었는데 그상황이 눈에 그려져요. 그때 어떤 감정이들어
    그러셨는지 이해가 되어요. 몇달을 같은 공간에서 타인과... 건강하세요.

  • 17. .....
    '26.2.13 12:58 AM (211.202.xxx.120)

    남자한테 동정심가지고 좋게 대하면 꼭 그렇게 되더라구요
    자기 좋아하는줄 착각할수도 있어요

  • 18.
    '26.2.13 1:07 AM (125.244.xxx.62)

    원래의 내모습으로 돌아간거예요.
    사람이 갈때되면 변한다는말..
    몸이 약해지면 맘도 약해지거든요.

  • 19. .....
    '26.2.13 1:26 AM (119.71.xxx.80) - 삭제된댓글

    남녀가 같이 있는 병실이 있나요?? 병원 입원 직접 5번 간적 여러번이였는데 단 한 번도 남녀 같이 있는 병실은 못 봤어요

  • 20. .....
    '26.2.13 1:26 AM (119.71.xxx.80)

    남녀가 같이 있는 병실이 있나요??
    병원 입원 직접 5번
    간접 여러번이였는데
    단 한 번도 남녀 같이 있는 병실은 못 봤어요

  • 21. 작문
    '26.2.13 2:11 AM (125.185.xxx.27)

    실력이...ㅋ

    남녀혼병실은 첨 들어보네요

  • 22. ㅇㅈ
    '26.2.13 2:14 AM (125.189.xxx.41)

    멋진 글입니다..
    사람의 성격은 고정된 캐릭터가 아니라는
    말씀 공감...

  • 23. ??
    '26.2.13 2:33 AM (61.77.xxx.84)

    우리나라 병원 병실에 남여 같이 입원 하는 경우는 없는데요?

  • 24. 큰병원
    '26.2.13 2:50 AM (121.147.xxx.48) - 삭제된댓글

    대부분 남녀 혼실 아닌가요? 삼성 아산 지방대학병원 모두 있었는데 다 섞여있었어요.
    원글님 지금은 건방하신거죠?

  • 25. 큰병원
    '26.2.13 2:51 AM (211.246.xxx.250) - 삭제된댓글

    대부분 남녀 혼실입니다. 삼성 아산 지방대학병원 모두 있었는데 다 섞여있었어요.
    원글님 지금은 건강하신거죠?

  • 26. 000
    '26.2.13 2:52 AM (64.114.xxx.253)

    글의 내용은 공감되네요.
    병원 다인실 입원 해본 사람이면 이해가 되는
    그런데 남녀 혼실이 있나요?
    다리 부러진 남자라는거 보니 정형외과?
    정형외과는 그런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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