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딱히 맘에 드는 드라마가 없어서 방황 중인 전 드라마 광인 아줌마입니다
워낙 취향이 대중적인 인기척도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제가 좋아하는 드라마는 대부분 시청률 바닥, 동시간 꼴찌인 경우가 많아서 제 취향 드라마가 점점 사라지는게 슬프기도 하지만 취향이 아니어도 별 생각없이 틀어놓고 보는 경우도 많은데 요즘은 그나마도 별로 없어서 드라마시간부터 일찍 잠들기도 할 정도...
그러다 어제 '이강에는 달이 흐른다' 3회를 보는데 눈이 번쩍 뜨이는 캐릭터 등장!
그저 그냥저냥한 로맨틱 코미디 퓨전 사극인 줄 알았더니, 생각지도 못한 관계의 긴장감을 팽팽하게 해줄 인물 등장!!!
바로 주인공 세자 이강의 정략혼인 상대인 좌상의 딸 김우희!
그저 성깔 좀 있는 대갓집 여식인 줄만 알았더니, 왕실도 아버지도 정치판도 다 뒤집어 엎어버릴 욕망과 용기, 과감한 도발을 감추고 있던 이 드라마의 숨은 핵심 인물이라고 해야할까...
정인이 나를 포기하지 않고, 이 흘러가는 상황에 순응하지 않고 조금 더 적극적이었다면 이 여인이 이렇게 과격하게 판을 들어엎어 버릴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순정파 인물이 아버지의 야욕에 반항하고 그에 이용당하고 끌려가지 않겠다고 선을 긋고 살다가 정인을 위협하는 아버지로부터 정인과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아버지와 똑같은 방법으로 맞서다니, 정말 그 아버지에 그 딸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똑닮은 사람 둘이 정면으로 대결하는 장면을 보다니, 갑자기 후끈 달아오르는 느낌이었습니다
절대 악의 표상같은 아버지와 달리, 악인과 선인, 아니 선악을 오락가락하는 범인을 대표하면서 선과 악, 정의와 불의, 대의 명분과 개인의 이익 사이에서 내리는 판단과 행동양식을 보여주는, 보통사람이라면 가장 공감하면서 감정이 이입되는 인물이 아닌가 싶어서 김우희라는 인물에 한순간에 매혹당해 버렸습니다
심지어 이 연기를 하는 배우가 장면마다 바뀌는 분위기로 그 엄청난 온도차의 연기를 적절하게 소화해서 저는 처음 보는 배우인데도 눈길을 사로잡더군요. 그냥 이쁘고 단순히 연기를 잘한다가 아니라...
저는 아직도 세익스피어의 명작들이 왜 걸작이라고 칭송받는지를 잘 이해를 못합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만고의 로맨스인지, 다들 그렇다니까 그런가보다 할 뿐이고 '햄릿'도 그렇고...
작품을 읽어도 해설, 평론을 읽어도 그런가 할 뿐 실제로 저한테 와 닿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유일하게 이래서 명작 소리를 하나보다 알게 된 작품은 '맥베스'
영국에서는 세익스피어의 작품으로 원작 말고도 다양하게 각색해서 굉장히 많은 작품들이 계속 만들어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맥베스'에 눈에 뜨게된 작품은 마이클 패스벤더, 마리옹 꼬띠아르 주연의 영화 '맥베스'였고 가장 인상깊게 본 작품은 제임스 맥어보이가 출연한 미슐렝 3스타 레스토랑으로 변형한 '맥베스'였습니다
'맥베스'라는 작품이 인간 군상의 심리와 행동 양식을 면밀히 잡아내었기 때문에 걸작이라는 평판을 듣는구나 하고 무릎을 치게 된 작품들이었습니다
어제 책을 읽다가 '에피파니'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신적인 존재의 등장이나 갑작스러운 깨달음을 뜻하는 말이라더군요. 특히 문학에서는 갑작스러운 깨달음이나 통찰을 얻는 순간을 뜻하는 용어로 통용된다고 하더군요.
저에게 맥베스는 어떤 의미에서는 이 '에피파니'가 뭔지를 알게해준 작품이라고 해야하나... 뭐 그렇습니다
이 작품들을 보면서 저는 '맥베스'의 실제 핵심 주인공은 맥베스가 아니라 레이디 맥베스, 맥베스의 부인이 아닌가 하면서 그 인물이 가장 인상에 남고 어떤 맥베스의 변형 작품을 보더라도 레이디 맥베스를 위주로 보게되는 습관이 생길 정도로 소설, 영화, 드라마 전체를 통틀어서 제가 가장 인상깊은 캐릭터가 되었습니다
'이강에는 달이 흐른다'의 좌상의 딸은 순간적으로 레이디 맥베스를 연상시키더군요
여자라서 드러내놓고 욕망을 실현할 수 없던 시기와 상황에서 주변을 움직여 본인의 의지를 관철시키려는 독립적이고 과감한 시도를 하는 여인이라니, 레이디 맥베스가 아닐 수가 없다는 ㅎㅎㅎ
처음에는 총쏘는 여주인공이라니 좀 어이가 없다 싶었으나, 그 총이 이렇게 쓰여서 그녀의 의지를 보여주는 매개가 될 줄이야...
그러나 레이디 맥베스와 달리, 단순히 권력의 야욕이 아닌, 살인조차 우스운 무자비한 적으로부터 자신과 정인, 그리고 자신의 대의를 지키기 위한 순정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정은 다소 만화같지만, 드라마의 낭만성을 지키고 드라마가 너무 무거워지지 않도록 만든 작가와 연출의 의도인 것 같아서 그 정도는 이해해 줄만하더군요
앞으로 어떤 식으로 전개되고 마감될지 모르겠으나, 저는 이강과 달이보다 제운대군과 김우희를 중심으로 보게될 것 같고, 제발 끝까지 실망스럽지 않게 전개되었으면 하고 기대하면서 보렵니다. 특히 우희 캐릭터 제대로 유지해주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