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개 국립대병원의 지난해 적자는 5663억원으로 집계됐다. 수도권 상급 종합병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수술 건수 회복도 교수들이 힘겹게 당직과 진료, 수술을 병행한 덕분에 근근이 버틴 결과일 뿐 지속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지방은 더 심각하다. 서울의 대형 병원들이 전공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지방 병원의 인력을 임상교수로 빨아들이다 보니 지방의 대학병원들조차 당직 순번을 메우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은 고되고 나아질 희망이 없으니 탈출 행렬엔 오히려 가속이 붙는다.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아닌 병원들이 먼저 망하게 생겼다.
무엇보다 전문의가 될 예비 인력들이 사라진 점이 큰 걱정이다. 2023년 말 4080명에 이르던 레지던트와 인턴이 지난해 말에는 1200명 수준으로 줄었다. 대부분 일반의로 취업해 필수의료가 아닌 돈 되는 분야에서 개업할 준비를 하고 있다. 상황이 바뀌어도 이들이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한다.
의대생들은 2년째 휴학계를 냈다. 지금 면허를 따도 전문의가 되려면 5년 이상 수련을 거쳐야 하는데, 휴학하는 바람에 의사 면허시험도 치르지 못했다. 자칫 몇 년간 1만 명 이상의 전문의 인력이 감소하는 효과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필수의료와 지방의료가 살아나기는커녕 뿌리마저 뽑힐 판이다.
1년 전에도 지적했듯이 의대 정원을 늘리기에 앞서 상급 종합병원의 전공의 의존도 축소와 필수의료 분야의 수가 인상이 선행됐어야 했다. 대학병원과 동네병원이 외래환자를 두고 경쟁하는 기형적 전달체계를 손질하고, 실손보험 문제도 먼저 고쳤어야 했다. 그래도 부족한 의사 수를 정부와 의사가 머리를 맞대고 추산하는 것이 제대로 된 수순이다. 그런데 아무런 공감대 없이 2000명이란 숫자부터 던졌으니 반발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정부는 반발하는 의료계를 달래기 위해 똑같은 대책들을 두서없이 내밀었지만 제대로 된 효과를 내지 못했다. 잘못된 순서의 결과는 이처럼 엄혹하다.
이번 정부의 의료개혁은 실패했다. 시간을 끌어 봐야 상황은 개선되지 않고 더 나빠질 뿐이다. 실패를 인정하고 다음 개혁을 준비해야 한다. 최소한 증원 문제는 원점 재검토 이상도 수용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그런데 보건 분야 관료들은 이마저 강하게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 딱히 묘수가 남은 것도 아니다. 패배 선언만 미룬 채 그저 버티는 동안 파국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