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릴 때부터 저 스스로도 좀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이 있었어요.
수양대군 이유를 아주 싫어했어요.
그리고 늘 단종이 안타까웠어요.
그가 그런 불행을 겪고 어린 나이에 비참하게 삶을 마친 것을 늘 되새기면서 마음 아파했어요.
제가 어릴 적에 타임 머신을 타고 싶어했는데 그 이유는
문종 치세 말기로 가서 이후에 벌어질 모든 흉사를 막아보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영월...저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곳인데 한번도 가 본 적이 없어요.
왜냐하면 한번 그곳에 가서 단종의 능을 참배하고 나면 돌아올 수가 없을 것 같았어요.
진짜 임금님이 그곳에 홀로 계신데 제가 어떻게 그냥 두고 돌아올 수 있겠어요.
그곳에 뿌리를 박고 그를 지키는 나무 한 그루가 되든지 아니면 망부석이 되어서라도
제가 그곳에 남아야만 한다고 생각했어요.
참배가 끝나면 돌아와야 하는데 그건 제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생각하면 참 이상한 마음이죠. 저하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수백 년 전의 사건인데
늘 이렇게 이 사람들과 그 일들을 생각하면 저는 이성과 판단력을 다 잃어버리고 마는 거예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이요.
며칠 전에도 방 안에서 맴돌면서 밤을 새웠어요. 그 모든 일들이 원통하고 분해서요.
이제 몇 년 있으면 제게도 절명운이 와요.
죽으면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하늘로 가기 전에 제가 할 일이 있어요.
제 영혼은 천 마리의 새가 되어서 광릉 수목원의 나무마다 내려앉은 거예요.
그래서 수양대군 그 자의 영혼을 불러내는 거죠.
그자가 일어나서 광릉의 재실을 나올 때마다 저는 달려들어서
그자의 영혼을 쪼아 피투성이 걸레로 만들고 갈기갈기 찢어줄 거예요.
양녕대군의 영혼도 함께 도륙낼 거예요.
이 작자는 지가 임금이 되지 못했다는 원망 때문에 조카를 꼬드겨서 패륜하게 만든 장본인이거든요.
이 모든 일을 마치고 나면 저는 이제 다음 생을 준비할 거예요.
나의 임금님인 단종은 그 때 그 시절에 그렇게 뼈아프게 떠났지만
다음에 이 세상에 올 때에는 그렇지 않을 거거든요. 그에게도 못 다한 꿈을 펼칠 권리가 있어요.
그때 그 시절에는 제가 불운하고 불충해서 제대로 해내지 못했지만 다시 태어난다면
저는 나의 임금님을 곁에서 도울 거예요.
높은 관직이 아니어도 상관 없어요. 운전기사나 가사도우미여도 좋아요.
다시 만나게만 되면 제 뼈를 갈아서라도 그를 돕고 싶어요.
50년 가까이 살면서 한번도 누군가에게 이 마음을 말해보지 못했는데 여기 고백하고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