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자유게시판

드러낼 수 없는 고민을 풀어보는 속풀이방

인생에 꽃길만 걷지 말길

ㅁㅁㅁ 조회수 : 4,570
작성일 : 2024-09-03 10:25:01

아이 둘 낳고 가족 전체가 해외에 1-2년 체류하게 되었는데

원래는 4계절 태양 나라에서 휴양하듯이 보내려했으나

후에, 생각했던 곳과 거리 있는 이름없는 작은 타운으로 결정되었다.

기후를 검색해보니 우울했다.

우기가 거의 일년의 3분의 1.

매우 실망한 마음으로 갔던 변두리 마을에서의 생활.

소문대로 우기는 길었으나

뜻밖에에 초록의 생명력이 엄청난 곳이어서

미대륙 전국 각지로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내는 곳이었다.

 

잠시 여행으로 들른 해가 4계절 내내 내리쬐던 어떤 도시.

누렇게 뜬 나무 잎사귀와 말라가던 잔듸.

(딱 식물에 관해서만 말하는 것이다.

각 지역마다 다 장단점은 있음)

아하..인생에 우기가 필요하구나.

 

다시 돌아와서 그 우기 긴 도시에서 사는데

바람이 좀 세게 분 날(한국 여름 태풍보다 훨 약)

쉽게 나무들이 넘어가고 뿌리가 뽑히고..

그 몸통이 한 아름인 나무들이 막 뒹굴고 난리.

지역 주민 얘기 들어보니

여기는 토양이 좋고, 비도 많고 , 기후도 마일드해서

식물 성장에 최상인데

그렇다 보니 오히려 깊이 뿌리내릴 필요가 없단다. 

뿌리가 수원을 찾아 깊이 여기저기 헤맬필요가 없다보니

야트마한 곳에 뿌리 대충 내려 쑥쑥 자라던 나무는

(나무 입장에서는 금수저 입지)

조금만 바람이 불면 잡아주질 못해

쑹덩 뽑히고, 넘어간다는 것이다.

입지는 고를 수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깊이 뿌리내리는 것인데

환경이 좋으면 그 훈련의 기회가 없다.

 

겨울엔 눈이 거의 안오는데

한 번 (이곳 기준) 폭설 내린 적이 있었다 . 

여기에 대비가 안되있던 나무들.

가지에 눈과 비가 섞여 프로즌 겨울왕국처럼 보석이 주렁주렁.

그날 밤새도록 나는 소리,

뚝 촤르르르르 뚝 촤르르르르

약한 가지가 눈얼음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뚝 부러진 다음에

그에 이어진 큰 가지 전체가 넘어가며 잔얼음끼리 부딪혀 나는 소리.

그 이질적 소리를 자장가삼아 아이들과 잠을 잤던 기억이 난다.

아침에 일어나니 도시 대마비...

 

인생이 양광찬란한 일만 계속되면 좋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수원 바로 곁에 자리잡아 갈증날 새도 없이 물 빨대 꽂을 수 있으면

좋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가물어도 봤다가, 물에 쓸려도 봤다가, 바람에도 휘청거리며

살아남을 때 내공이 깊어지는 나무들.

생노병사, 희노애락이 있다는 건

내 인생에 나이테와 뿌리깊음을 더하는 축복의 기회였더라는 걸

그때 쬐금 배웠다. 

 

나도 한때는 왜 나만 이리 산전수전공중전까지 겪고

더러운 꼴 많이 봐야할까 억울했다

인생의 사계절을 고루 경험한다는게

오히려 나를 단단하게 해준다고 느껴서 지금은

아무 원망이 없다. 

참 마음 졸이며 살았다 싶었는데

그 덕에 홀로그램같은 여러 감정을  다 맛봤고 다뤄봤다.

그 덕에 정서적으로 유기방짜 수저 정도...되는 듯하다.

좀 손은 가나,

나름 멋도 있고, 의미도 있는...

일단 풍파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만으로

성공한 인생이라는 의미를 부여해본다.

존재 자체가 의미라는 말이 맞나 보다.

 

 

 

IP : 222.100.xxx.51
4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24.9.3 10:30 AM (27.119.xxx.162)

    아!
    아침에 좋은 글 하나 읽었다..
    좋아요 100개...^^

  • 2. 로그인
    '24.9.3 10:31 AM (58.97.xxx.88)

    일부러 로그인했어요. 감사해요.

  • 3. ..
    '24.9.3 10:35 AM (211.218.xxx.251)

    머리로는 알겠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꽃길만 걷고픈 마음이 있는데.. 도인의 포스가 느껴집니다.

  • 4. ..
    '24.9.3 10:36 AM (222.117.xxx.76)

    그러게요
    다 힘든것도 이유가 있고 배움이 있는데
    너무 달콤하고 이쁜것만 찾는 시대라 씁쓸하죠
    모든것엔 다 배울점이 있네요 감사합니다~

  • 5. 동감입니다
    '24.9.3 10:37 AM (112.153.xxx.46)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밤도 길어지고
    그런가봐요
    그저 묵묵히 살아갑니다.

  • 6.
    '24.9.3 10:43 AM (221.145.xxx.192)

    묵직한 글입니다.
    원글님 내공 크시네요.
    좋은 글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 7. ...
    '24.9.3 10:46 AM (211.114.xxx.19)

    저도 늦은나이에 새로운 직업을 찾았고 어려움이 너무 많았어요
    희한하게 그 어려움이 지나고 나면 평화가 오고 내면은 더 단단해 지고
    또 전투력이 생겨요. 또다른 어려움이 오면 또 힘들고 어쨋든 해결이 되고 또 평화가 오고
    다시 그 어려움이 오면 좀 덜 두려워요. 그치만 여전히 꽃길만 있었음 하네요
    그냥 무리하지 않고 순리대로 열심히 살아가야지 하고 있어요

  • 8. teatree
    '24.9.3 10:51 AM (211.243.xxx.192)

    필력 좋으시네요
    단숨에 읽어내려갔어요
    허세 가득한 난독불가 글이 아니고
    단순명요하니 머리에 쏙쏙 박히는 글이네요

  • 9. 좋은
    '24.9.3 10:53 AM (218.53.xxx.110)

    좋은 말씀이네요. 저도 님 말씀에 다시 한 번 동의하고 갑니다. 우리 아이들도.미래 세대도 이런 진리를 깨달을 수 있으면 좋겠네요

  • 10. 하!
    '24.9.3 10:54 AM (222.234.xxx.241)

    저장해두고 종종 다시 읽으렵니다.
    위로와 용기를 구체적으로 꼭 집어 받은 기분입니다.
    역시 82만세

  • 11. oo
    '24.9.3 10:55 AM (211.223.xxx.220)

    오레곤주 가셨나보네요.
    저도 잠시 살았었는데~
    좋은 글 감사합니다.^^

  • 12. 879
    '24.9.3 10:58 AM (1.225.xxx.214)

    원글님
    이 글 키친토크 게시판에 올리시면 어때요?
    그 시절의 사진도 넣고 음식 사진도 좀 같이 올리고 해서
    그냥 이대로 넘어가기에는 아까운 좋은 글 이어서 건의해봐요.^^

  • 13. 역시
    '24.9.3 11:03 AM (223.62.xxx.110)

    좋은 글 감사합니다.
    힘들 때마다 읽고 싶네요.

  • 14. 격려감사합니다
    '24.9.3 11:05 AM (222.100.xxx.51)

    오늘도 존버(비속어 썼다고 혼나려나) 하세요.
    존중하며 버티기의 약자라고 우겨봅니다.

  • 15.
    '24.9.3 11:05 AM (106.101.xxx.132)

    좋은글 감사합니다
    인생에 꽃길만 걷지말길~저장해요

  • 16. 얼음
    '24.9.3 11:05 AM (61.105.xxx.4)

    좋은글
    가끔씩 다시 읽으려고 저장합니다

  • 17. 네맞아요
    '24.9.3 11:08 AM (222.100.xxx.51)

    오레건주!! 포트랜드에서 조금 떨어진, 기러기 나는 변방의 마을이었어요. ^^

  • 18. 좋은글
    '24.9.3 11:08 AM (175.208.xxx.213)

    다시 읽어보고 싶은글이네오

  • 19. ...
    '24.9.3 11:09 AM (125.132.xxx.171)

    좋은 글 감사합니다~
    우리 까칠한 82회원을 위해
    ( ) 해주신것도 재미있구요.ㅎㅎ

  • 20. 좋은 글
    '24.9.3 11:24 AM (182.212.xxx.174)

    잘 읽었습니다
    눈 앞에 펼쳐지는 풍광들이 보여요

  • 21. ㅇㅇ
    '24.9.3 11:37 AM (112.146.xxx.223)

    저는 주로 원하시던 휴양지같은곳에서 오래살고 우기가 긴곳에서 반년을 그 우기를 겪으며 지냈습니다
    저도 원글님과 비슷한 경험들에서 비슷한 생각을 했답니다
    제 인생도 쉽지가 않아서 일까요
    글 잘읽었습니다

  • 22. ...
    '24.9.3 11:42 AM (124.195.xxx.185)

    나이 들고 아이들 크니
    결핍이 반드시 필요하구나 느낄 때가 많아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23. 한반도
    '24.9.3 11:49 AM (116.12.xxx.179)

    원글님 글을 읽으니 우리나라가 떠오르네요. 항상 외세의 침략을 받아서 밑으로부터 다져진 버티는 힘. 그 넘겨받은 DNA 가 있어 앞으로 희망과 미래가 밝겠죠.

  • 24.
    '24.9.3 12:02 PM (1.241.xxx.48)

    이 말 정말 너무 너무 멋있어요.

    그 덕에 정서적으로 유기방짜 수저 정도...되는 듯하다.
    좀 손은 가나,
    나름 멋도 있고, 의미도 있는...
    우와 멋있다~

  • 25. ^^
    '24.9.3 12:04 PM (223.62.xxx.64)

    저도 최근에 아주 작은 일을 겪고 새옹지마에 대해 생각했더랬습니다^^
    삶이란 늘 나쁜 일만 있는 것도 아니고 늘 좋은 일만 있는 것도 아니구나..
    원글님
    인생에 통달한 분 일것 같아요
    긴 긴 인생을 살면서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살겠습니다.

  • 26. 오늘의수필
    '24.9.3 12:05 PM (211.192.xxx.103)

    언어의 힘이있다고
    꽃길이라는 단어가 유행하면서
    최고의 덕담처럼 주고 받게 되었죠.ㅜ

    사시던 곳을 상상하면서 너무 부러운 마음이 드네요 ㅎ
    딱 내스타일인데 ~
    요즘 생로병사의 굴레를 느끼는 일들이 너무 많아
    마음이 무거운데 덕분에 큰 숨을 들이켜봅니다 ^^

  • 27. 글을
    '24.9.3 12:08 PM (119.193.xxx.189)

    쓰시는 분인 줄 알았어요. 표현력이 좋아서요.
    좋은 글이네요

  • 28. 피오니
    '24.9.3 12:12 PM (121.145.xxx.187)

    좋은글..그림 그려가며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29.
    '24.9.3 1:20 PM (211.36.xxx.247)

    좋은글 감사합니다^^

  • 30. 모닝
    '24.9.3 1:25 PM (39.114.xxx.84)

    원글님 좋은 글 잘 읽었어요

  • 31. ..
    '24.9.3 1:37 PM (1.240.xxx.19)

    좋은글 감사합니다.
    내 마음속에 저장~♡

  • 32. 와~~
    '24.9.3 2:05 PM (118.221.xxx.81)

    좋은글 감사합니다... 여러번 읽어 봤습니다~~

  • 33. 엄지척
    '24.9.3 2:30 PM (106.101.xxx.240)

    인생의 깊은 의미를 이렇게 글로 잘 나타내 다른사람의 마음에 울림까지 주는건 대단한 재능같아요
    리스펙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34. 꽃다지
    '24.9.3 2:38 PM (211.213.xxx.76)

    어머!
    좋은글 감사합니다.
    저장하고 가끔 꺼내 보려구 저장합니다.

  • 35. ...
    '24.9.3 4:10 PM (123.215.xxx.145)

    정말 이런 글 하나 읽고 싶어서 매일 82 드나들어요.
    좋은 글로 큰 기쁨을 주신 원글님께 감사드립니다.

  • 36. ....
    '24.9.3 4:39 PM (1.236.xxx.80)

    좋은 글, 저장해 놓고 볼게요

    하지만 너무 길었던 나 자신을 잃어버렸던 시간을 긍정하기는 아직도 어렵네요

  • 37. 어머
    '24.9.3 4:48 PM (86.181.xxx.89)

    이런글 너무 좋아요

  • 38. 저장 글
    '24.9.3 5:18 PM (61.43.xxx.79)

    좋은글 다시 읽어볼께요

  • 39. 멋진글이네요
    '24.9.3 5:41 PM (222.99.xxx.166)

    감사해요 꽃길만 걷지말자

  • 40. ..
    '24.9.3 6:25 PM (58.239.xxx.186)

    인생 꽃길만 걷지 말자는 말
    자녀에게 들려 주고 싶네요
    저 자신에게도 힘 내라고
    다시 읽고 싶은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 41. 보석같은 글
    '24.9.3 6:30 PM (68.172.xxx.186) - 삭제된댓글

    여긴 미국이구요.
    이민생활 20년 조그만 자영업 하면서 겨우 겨우 살고 있었는데요.
    5월달에 남편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두아이와 어떻해 이 힘든 세상을 살아 내야 할지
    극심한 두려움과 불안으로 하루 하루를 힘들게 견디며 지내는데 오늘 이런 삶을 지혜롭게 바라 보는 엄청난 내공의 글을 일고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원글님 글솜씨도 대단하고 지금 딱 내상황에 맞는 힘을 주는 글이라 저장하고 힘들때 보려고 합니다. 고난을 통해 역경을 극복해야 인생이 단단해진다는 원글님 보석같은 글 읽고
    감사함을 전합니다.

  • 42. 보석 같은글
    '24.9.3 6:45 PM (68.172.xxx.186)

    여긴 미국이구요.
    이민생활 20년 조그만 자영업 하면서 겨우 겨우 살고 있었는데요.
    5월달에 남편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두아이와 어떻해 이 힘든 세상을 살아 내야 할지
    극심한 두려움과 불안으로 하루 하루를 힘들게 견디며 지내는데 오늘 이런 삶을 지혜롭게 바라 보는 엄청난 내공의 글을 읽고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원글님 글솜씨도 대단하고 지금 딱 내상황에 맞는 힘을 주는 글이라 저장하고 힘들때 보려고 합니다. 고난을 통해 역경을 극복해야 인생이 단단해진다는 원글님 보석같은 글 읽고
    감사함을 전합니다.

  • 43. ㅇㅇ
    '24.9.3 7:04 PM (58.227.xxx.32)

    멋있는 글이네요
    원글님 감사합니다

  • 44. 에머랄드
    '24.9.5 8:17 AM (125.141.xxx.161)

    너무 좋은 글 감사합니다

  • 45. .,.
    '24.9.5 4:54 PM (39.125.xxx.67)

    멋진 글 감사합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621311 미국 비자 관련 잘 아시는 분 2 미국 2024/09/03 774
1621310 걱정이 많은 나 9 ㅇㅇ 2024/09/03 1,560
1621309 파킨슨 치매 궁금합니다. 17 치매 2024/09/03 2,268
1621308 인생에 꽃길만 걷지 말길 44 ㅁㅁㅁ 2024/09/03 4,570
1621307 300줘도 시어머니랑 밥먹기 싫은 이유 82 ... 2024/09/03 14,662
1621306 밋없는 자두 처치중인데 맞는지 한번 봐주세요 4 ... 2024/09/03 739
1621305 불륜 찐사랑 19 09866 2024/09/03 5,842
1621304 돈많은 부자들 한국이 살기 제일좋다란말들 하는데 좀..틀린게 43 제가 2024/09/03 4,375
1621303 네이버 메일 잘 아시는 분~ 1 llllll.. 2024/09/03 464
1621302 다우렌의 결혼(이주승,구성환) 넷플 2024/09/03 2,086
1621301 인터넷,티브이 약정 만료됐는데 4 흐음 2024/09/03 695
1621300 요즘 20대 여자(일부) 특징 35 00 2024/09/03 6,357
1621299 오이지 오이 굵으면 2 ... 2024/09/03 702
1621298 부산에 허리통증 잘보는 병원좀 알려주세요.. 7 명절 2024/09/03 770
1621297 잘 되는 개인의원은 정말 잘 되더라고요 6 ㅇㅇㅇ 2024/09/03 1,277
1621296 10월 1일 국군의날 쉰다... 정부, 임시공휴일 의결 47 ... 2024/09/03 6,548
1621295 엄마가 너무 돈을 안 아끼시는 건가요? 20 f 2024/09/03 4,696
1621294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세가지 11 모임 2024/09/03 5,168
1621293 의사 4명 동시에 사직... 세종충남대병원 야간 응급실 '붕괴'.. 19 결국 2024/09/03 2,882
1621292 2세 유아, 1시간 응급실 찾다 의식불명, 병원은 “119 있잖.. 12 ㅇㅇ 2024/09/03 1,340
1621291 지하철 임산부석에 앉는 사람들 16 .. 2024/09/03 2,501
1621290 오디오북과 두유제조기 1 편하게살자 2024/09/03 678
1621289 나이든 분들 경복궁 야간개장 비추천합니다 11 ㅇㅇㅇ 2024/09/03 5,296
1621288 땅임대 관련 문의 4 ... 2024/09/03 530
1621287 공대를 파괴한 이유가 10 이놈들이 2024/09/03 2,5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