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글 피곤하면 스킵하시길 바래요.
솔직히 전 최근 오은영 금쪽이 보고 좀 놀랐어요. 어떤 아이가 게임을 지나치게 하는 건 누가 봐도 맞고 못하게 말리면 폭력적으로 나오는 것도 수위가 지나친데 엄마가 잘못이라는 의견이 대다수더라고요. 물론 원인 제공이 엄마의 지나친 공부 압박이었다는 논리는 이해가 가는데 아이가 게임을 너무 많이 하는 것도 사실이잖아요. 제 아이도 그래요. 항상 정신이 반쯤 나간 느낌, 나머지 반은 가상세계에 가 있어요. 학업도 게을리 일상생활도 게을리 누가 무슨 말을 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고 뭘 해도 게임 이외에는 재미없고 바디 스내쳐가 와서 아이를 반 쯤 뺏어간 느낌이에요.
어제도 그 문제로 가족 모두 크게 싸웠어요.
중2 아이가 지난 1주일 방학이었는데 (미국 봄방학) 아무것도 안 하고 일주일 내내 게임만 했어요. 문 밖에도 한 번 안 나가고요. 게임 공간에서 친구들과 만나서 놀기로 약속한 거라고 말리지 말아달라고 했고 저와 남편도 각자 일이 바빠서 별로 통제하지 않았어요. 남편은 항상 당신이 몰라서 그렇지 저것도 다 공부의 일종이다 말리지 말라 그래요.
어제 방학 마지막 날 선생님한테 이메일을 받았어요. 다음 주부터 다 같이 읽는 책이 한 권 있는데 꼭 사서 지참해 오라고요. 오후 두 시쯤 서점에 가려고 아이랑 문 밖에 나서다가 제가 잠깐, 2분만 있다 나와, 아이한테 말하고 서점 스탬프 카드도 챙기고, 화장실 한 번더 다녀오고 나가 보니까 아이가 아직 안 나왔길래 마당 의자에 앉아서 기다렸어요. 근데 30분이 지나고 한 시간이 지나도 아이가 안 나오더라고요. 아 또 게임을 시작했구나. 갑자기 오기가 생기기도 하고 데모하는 의미로 그냥 거기 앉아서 계속 기다렸어요. 어둑어둑 해지고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결국 아이는 나오지 않았어요. 얼마나 몰입을 해서 게임을 했으면 방금전에 엄마랑 서점가기로 하고 옷 입고 신발신고 문밖에 나섰던 것도 잊었을까요. 이번엔 그냥 넘어가면 안 되겠다 결심했어요.
결국 8시가 넘어서 남편이 나오고 아이를 불러달라고 해서 얘기를 했어요. 난 이 상황이 많이 잘 못 된 것 같은데 네 생각은 어떤지 얘기해 달라고요. 근데 남편이 먼저 쫓아 나와서 이게 그렇게 애한테 화낼 일이 아니다 서점 가고 싶었으면 니가 집에 들어와서 애한테 가자고 재촉했으면 됐을 일을 이렇게 크게 키우냐. 아이한테 다시 물었어요. 너 이게 엄마한테 사과할 일 아니라고 생각해? 그랬더니 곰곰히 생각하더니 두 가지 말을 하더라고요. 엄마는 살면서 누구한테 사과한 적 있어요? 자기도 사과를 안 하니까 아빠랑도 싸우고 가끔 직장 동료들이랑도 싸우나봐. 제가 알던 스윗한 아이가 아니네요. 엄마의 제일 아픈 급소를 찌를 수 있는 방법이 뭘까 잘 생각해서 말 한거죠.
공부 못해도 다정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성정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면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게임세계에서만 살고 싶고 그걸 막는 건 다 적으로 보는 괴물이 되어가는 건 아닌지 너무 걱정이 돼요. 남편은 제가 갱년기라 문제를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거라고 하네요. 그런가요? 갱년기와 사춘기의 부딪힘 거기에 게임이 섞이니 정말 힘드네요. 선배님들 생각은 어떠세요, 그냥 이것도 지나가리라 넘겨야 할 일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