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저녁 상암 메가박스에서 벌어진 사건입니다^^
싱어롱 버전을 찾다가 집 근처에는 시간 안 맞아서 포기했는데 어제 누가 올려주셨잖아요?
그래서 부랴부랴 일반 예매를 얼른 싱어롱 극장으로 바꾸고 저녁까지 대기 중이었습니다.
영화 입장을 마치 콘서트 손님 들이듯이 하게 해주는데 일요일 저녁인데 완전 매진이더라구요.
아무리 봐도 퀸 노래를 잘 모를듯한 푸릇푸릇한 대학생들이 대부분인데 싱어롱에 굳이 의미를 두나 싶었는데 그게 뭐 사운드가 좋은 극장이라 그렇대요.
영화가 시작할 때가 되었는데 계속 빈 스크린만 대기중, 이때 직원인듯한 여성이 한명 앞에 나섭니다. 보통 이런 장면은 서프라이즈 게스트가 있는 시사회 때나 그런 건데. 아니 외국영화에 무슨? 하며 갸우뚱했죠.
이 직원왈, "싱어롱 편집본에 문제가 생겨 일반으로 틀어야겠다. 차후에 싱어롱 원하시면 초대권을 발급하겠고, 그것도 싫다면 환불해 드리겠다"
웅성웅성 난리났습니다(따라 부른 이가 거의 없던 거 생각하면 왜 웅성거렸는지도 의문!!)
저는 기다렸다 어렵게 시간나서 남편이랑 보러 온 건데, 초대권 받아봤자 다음 시간날때 싱어롱 버전이 있는지 알 수 없고 속은 상하지만 일단 보고 나서 초대권은 받아두고, 못 보게 된다면 남에게 주자고 했습니다.
이때 객석 뒤에서 어떤 여성분 간절하게 "노래는 따라 불러도 되죠?"라고 소리질러 주시는 바람에 모두 폭소가 터졌습니다. 얼마나 따라 부르고 싶었음 저랬을까요? 다만 그러려면 가사를 잘 알아야 되겠죠.
직원이 당연히 그러시라고 하는데, 이때 영사기 쪽에서 "됐어요!"인가 뭐라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영화 시작.
그런데요, 기적처럼 밑에 가사가 나오는 싱어롱 버전인 겁니다. 뭔가 뒤죽박죽 코미디가 연출된 이후 싱어롱은 무사 안착....
저는 사실 영화에 나오는 노래 절반은 가사 없어도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중학생 때부터 퀸 노래는 거의 다 외우다시피 했습니다. 세광출판사 오늘의 팝송 같은 거 사서 영어가사 적고 그걸로 외우고 따라부르고 할 정도로 좋아했어요.
그런데 퀸 노래 가사가 좀 난잡, 난삽하긴 합니다. 사전에도 없는 단어도 많고, 성적은유, 노골적 19금 가사가 꽤 많아서 이미 고딩 때 영어식 야시꾸리한 표현을 퀸을 통해 배워버렸단 말입니다..... 퀸 아니라도 록 명곡들 중 그런 가사들이 정말 많아요. 뜻을 알고선 차마 따라 부르기가 민망할 정도로.
보헤미안 랩소디는 심지어 제가 중고등학교 시절엔 방송금지곡이었는데 어느 순간 흐지부지 풀렸어요. Another one bites the dust나 Bicycle race도 무식한 관료들에 의해 금지곡이었고, 그외에도 몇곡 금지곡이 있어 부들부들댔었는데 이젠 기억도 안 나는 아득한 먼 과거 얘기네요.
라이브 에이드 공연도 대학 시절 여름방학 때인가 위성방송으로 봤었는데 180분짜리 비디오테이프로 녹화해 놓고 틈만 나면 돌려봤었는데 그것도 30년도 넘은 기억..... 당시 라이브 때 입었던 의상, 무대 매너를 어찌나 잘 재현했는지 다시 옛 추억 속으로 빠졌어요.
두 대륙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그 공연을 위해 당시 최고 인기였던 필 콜린스는 지금은 없어진 콩코드기를 타고 두 공연에 같이 섰던 기록을 세웠죠. 영화에서는 퀸에게 너무 비중을 맞추었지만 사실 그때는 퀸 광팬인 저조차도 퀸보다는 공연 전체에 관심가질 만큼 대단한 공연이었습니다.
We are the world 레코딩에 참여한 뮤지션 면면만 봐도 돈 주고는 못 만들 이벤트였죠.
지금에서야 퀸 음악도 객관적으로 평가하게 되고, 퀸보다 더 좋아하는 뮤지션도 있지만 가장 감수성이 예민하던 중고등학교 시절, 제 일상을 지배했던 뮤지션, 그것도 무대 위의 모습과 엘피 음반, 어쩌다 보게되는 뮤직비디오 등을 통해서만 접했던 이들의 숨어있던 뒷모습을 이렇게 접하니 참으로 만감이 교차하더군요.
몇년 전 런던에 갔을 때 퀸의 노래만을 가지고 얼기설기 스토리를 만든 We will rock you를 볼 때는 오히려 담담했어요. 퀸의 일생을 그린 뮤지컬이 아니라 그들의 노래로 이어나간 형식이라 '마마 미아'와 유사하거든요. 하지만 퀸, 특히 프레디의 일생을 다룬 영화이니 그가 고통받던 시절, 이미 팬으로서 열정이 식었던 저는 마음이 더욱 짜아하게 아파오더라구요.
고등학교 때는 그들의 생년월일까지 다 외웠을 정도라 문득 생각해 보니 프레디가 노무현 대통령과 동갑이란 생각이 났습니다. 영화 끝나고 확인해 보니 두 사람 생일은 딱 4일 차이..... 프레디와 노무현 대통령은 그 어떤 접점도 찾을 수 없지만 제게는 사춘기의 7-8년과 40세 이후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이들로 남아 있습니다.
영화 한번 더 보러 가야겠어요....... 그리고 1인 노래방도 다녀오렵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