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르다가 남편이랑 싸웠어요. 처음엔 아이들 재워놓고 제가 이야기 좀 하자고 시작했어요. 이불 뒤집어쓰고 있는 남편한테 가서 얘기 좀 하자고요. 존중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 부부 사이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냐.
길에서 친구를 만나면 어 얘는 내 아들이야 하고 인사시키면서 나는 아내라고 인사시키기는 커녕 지나가는 행인1처럼 대하던 에피소드, 시댁에 가서 잘때면 어머님이 봐준 이부자리에서 아이들 껴안고 코골며 자고, 샤워하고 나오니 골방에 덩그라니 내 몫의 이불이 내던져져있던 일, 함께 여행을 가도 투명인간 취급, 혼자 침대방에서 자면서 매일 아빠랑 잘 사람 하고 아들들 부르던 일, 출근할 땐 저녁 약속있어 한 마디 내뱉고 나가서 저녁엔 들어오자마자 나 잔다, 침대에 배깔고 핸드폰이나 하는 습관, 주말이면 정오가 넘어도 안일어나는 습관.... 서운했던 일들을 다 예로 들었어요. 부부간의 시간을 보내고싶어하는 마음이 조금도 보이지 않는 사람이랑 살기가 너무 힘들다. 나도 서로 의지하고 보듬어줄 어른이 필요하다. 당신은 이대로도 괜찮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지내는거냐...
그냥 그런 사람이다, 하고 기대하지 말고 포기하고 살라고 조언하길래 그렇게도 해봤는데 잘 안되고 힘들다. 애들 깰까봐 조근조근 얘기했어요.
입다물고 듣기만 하다가.. 내가 회사 얘기 집에 와서 하나도 안하냐? 말해도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데 그거까지 시시콜콜 다 얘기해야되냐? 내가 그렇게 다 잘못했냐? 듣다보니 내가 천하의 나쁜 놈이냐? 생각해보니 너는 애정있게 행동했냐? 부부침실엔 네가 안왔자나. 이렇게 몇 마디 변명하고..그제서야 자기도 서운했대요. 그럼 왜 말하거나 해결하려 하지 않았냐니까 그냥 애키우느라 바쁜가보다 했대요...
그러다가 애가 잠꼬대하면서 울길래 제가 아이방에 갔어요. 한참 후에 걸어와서는 문간에 서서 "좀 더 노력할게 자라" 이렇게 세 번 얘기해요. 십년 내내 똑같았어요. 제가 천마디 만마디를 해도 저렇게 말하고 되돌이표에요. 그 얘기 듣는 순간 미칠 것 같아서 제가 대꾸를 안했어요. 5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이었는데... 제가 안받아준다고 다시 이불 뒤집어쓰고 드러눕더군요. 그렇게 서운한 맘을 풀어줄 성의가 없냐고 뭐라 하는데 대꾸도 안하더라고요.
내 용기가 너무 아깝고, 대화하려고 시도한 것부터 "노력할게" 한 마디 안받아줬다고 다 물거품이 됐더군요. 남편은 누워서 이불 뒤집어쓰고 있고, 저는 그 앞에 서있는데 10년 내내 싸우면 이런 광경이었거든요. 진짜 제가 딱하더군요. 답답하고 화가 나서 옷을 챙겨입고 현관을 나와버렸어요. 그랬더니 세시간 동안 돌부처처럼 앉아서 외마디 말만 내뱉던 남편이 아주 전광석화처럼 일어나서는 다시 들어올 생각말라며 걸쇠를 걸어잠그고 그 새벽에 자는 애들을 깨워서 너네 엄마 집나갔다 문 열어주지마 시끄러 울지마 하면서 큰 소리로 소란을 피웠어요. 애들은 자다가 아빠가 지르는 소리에 깨서 영문을 모르고 공포에 막 울부짖었어요. 너무 놀라서 문 열라 했더니 애들을 앞에 앉혀놓고, 싸우다 나가는 건 잘못된거야, 너네 엄마 집 나갔어, 울지마, 너네가 왜 울어? 하면서 소리소리를 질러요.
여차저차 들어와서 애들을 안심시키고 니 맘대로 하라고 소리지르고, 내가 뭘 잘못했냐고, 너랑 나는 구조 자체가 다른데 니 기준에 맞추려고 하지 말라고 소리지르는 남편에게 거의 매달리다시피 해서 또 외마디 사과를 받아냈지만 전혀 기분이 나아지지 않네요.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까요? 진짜 시궁창이네요. 제가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은 뭘까요? 조언 받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