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의 핵위협 국가, 미국
미국의 평화운동가 조셉 거슨 박사는 <제국과 폭탄: 미국은 세계 지배를 위해 어떻게 핵무기를 이용했나>라는 저서에서 '미국의 핵무기는 억지를 위한 것'이라는 미국 정치지도자들의 주장은 한마디로 '사기'라고 주장합니다. 다른 나라의 핵무기 사용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의지를 타국에 강요하기 위한 핵심 수단이라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1942년 이후 핵무기 개발 단계부터 미래의 적국인 소련 견제를 염두에 두었고, 이후 1946년 이란 주둔 소련군의 철수를 요구하며 핵위협을 가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수십 차례에 걸쳐 수십 개 나라에 핵위협을 가해 왔습니다. 그중에서도 미국의 핵위협을 가장 많이 받은 나라가 바로 북한입니다.
미국의 비판적 영화감독 올리버 스톤과 아메리칸대학 역사학 교수인 피터 커즈닉이 함께 쓴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라는 책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옵니다.
2차 대전 기간 동안 맨해튼 프로젝트의 총책임자인 레슬리 그로브스 장군은 "이 프로젝트 책임자가 되고 나서 러시아가 우리의 적이라는 생각이 퍼뜩 떠오른 것이 절대 아니다. 맨해튼 프로젝트는 바로 그런 토대 위에서 시작됐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1944년 3월 원폭 개발에 참여한 과학자 조셉 로트블랫과의 저녁 식사 자리에서 "이 프로젝트의 주요 목표가 러시아를 굴복시키는 것이라는 건 당신도 당연히 알고 있겠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2차 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5년 말 소련에 대한 핵 선제 공격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에 대한 원폭 투하가 태평양전쟁을 일찍 종결시키기 위한, 그리하여 무고한 인명 손실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는 미국 정부의 주장도 거짓말입니다. 이는 무수한 연구에서 드러났습니다. 일례로 미국 전쟁부(국방부의 전신)는 1946년 1월 작성된 보고서에서 "(일본의 항복) 결정에 이르는 토론 과정에서 미국의 원자탄 사용에 관한 언급은 거의 없었다. (…) 일본이 러시아의 참전에 직면하자 항복했으리라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고 밝혔습니다. 태평양 전쟁의 조기 종결과 원자탄은 관련이 없다는 미국 정부의 공식 견해인 셈입니다.
"나가사키 원폭 투하는 명백한 전쟁 범죄"
원폭 투하의 목적은 두 가지였습니다. 핵폭탄의 실제 위력을 시험, 과시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사흘 간격으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플루토늄형, 우라늄형 등 각기 다른 형태의 원폭을 투하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나치 전범에 대한 뉘른베르크 재판에 참여했던 미국의 텔포드 테일러 검사는 "첫 번째 원폭 투하는 그렇다 쳐도 두 번째 원폭 투하는 명백한 전쟁 범죄"라고 비판했습니다(미국의 원폭으로 조선인 4만여 명이 사망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다른 하나는 소련에 대한 무력 과시를 통해 전후 처리를 미국 마음대로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당초 소련은 대일전 참전 대가로 (독일과 마찬가지로) 일본에 대한 공동 점령을 희망했지만, 미국의 핵폭탄에 겁을 먹은 나머지 한반도 북부를 점령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미국이 서둘러 원폭투하를 감행한(첫 원폭 실험이 성공한 후 20일만) 것은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독점적 지배를 확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우선 한국전쟁 3년 동안 미국은 북한에 63만5000톤의 재래식 폭탄을 투하했습니다. 이는 태평양 전쟁 4년간 사용된 폭탄보다도 많습니다. 또 치명적 피해를 일으키는 네이팜탄을 3만2000톤이나 투하했습니다. 베트남전쟁 당시 미국의 네이팜탄 사용은 세계적 비판을 받았는데, 그때 사용된 양보다도 많습니다. '잊힌 전쟁(forgotten war)'이라는 말처럼 한국전쟁의 실상이 세계에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폭격 피해자들이었던 북한 주민들은 당연히 그 끔찍함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수력 댐이나 저수지를 폭파해 수많은 인명을 수장시켰습니다.
당시 북한 폭격을 지휘했던 커티스 르메이 전략공군사령관은 1984년 미 공군역사본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전쟁 3년 동안 북한 인구의 20%를 없앴다"고 자랑했습니다. 북한 폭격을 지지했던 국무부 관리 딘 러스크는 "북한의 움직이는 모든 것, 땅 위에 서있는 모든 건축물을 파괴했다"고 회고했습니다. 그야말로 북한을 석기시대로 되돌려 놓은 것이죠.
그뿐만이 아닙니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을 시작으로, 중공군에 밀려 미군이 퇴각하던 12월, 한강 이남에서 전선이 교착됐던 51년 4월, 휴전협상 중이던 53년 등 여러 차례에 걸쳐 미국은 북한에 대해 핵위협을 가했습니다.
리영희 선생에 따르면, 1945~80년 35년 동안 미국이 전 세계에 걸쳐 핵무기를 사용하기로 결정, 구상, 협박, 준비한 일이 26회인데 이 중 한반도가 핵폭탄 사용의 목표로 정해진 것은 5회나 된다고 합니다. 북한은 미국의 핵위협을 가장 많이 받아온 나라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