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연세대 경제학부 신남희입니다.
일전에 ebs다큐 ‘공부의 배신’에 제 인터뷰가 악의적으로 편집되어 방송된 문제로 글을 썼었습니다. 당시에는 저에게 방송 캡쳐를 보여주며 농담을 했던 친구들이 혹시라도 저에게 미안한 맘을 가질까봐 가볍고 장난스럽게 글을 썼습니다. 하지만 ebs의 태도와 다른 피해자들의 사례를 반복해서 볼수록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되어 다시 자세한 글을 씁니다.
1. “한영 대원 이렇게 용인, 와 이러면서 보고 있는데 갑자기 도포자락이 이렇게 딱 지나가는거에요. 기 진짜 많이 죽었어요. 사실 좋은 학교일수록 학교 마크가 크기는 해요”
이 답변은 방송에서 만우절 날 대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노는 장면들 중에 삽입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터뷰 당시 “처음 대학교 입학 면접을 보러 온 날 어땠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지 “만우절날 학생들이 교복 입은 것을 보고 어땠는가”에 대한 답변이 아니었습니다. 대한민국 입시제도에서 수험생 시절 특목고생이나 재수생에 대해 막연한 불안함을 갖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를 마치 대학 내에서 출신 고등학교로 차별받은 것으로 둔갑시킨 것입니다. 저는 단언컨대 대학에 온 이후로 출신 고등학교에 대해서 아무런 차별도 받은 적이 없으며 서로가 서로의 고등학교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합니다.
2. “좋은 학교 소위 외고 특목고 이런 데는 학교에서 신경을 많이 써주잖아요? 그래서 스펙은 그 친구들한테 밀리고 수능 성적은 그 재수생들한테 밀리고 내신은 농어촌 친구들한테 밀릴 거 같으니까 난 뭘로 승부해야하나 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이것은 제가 실제로 고3 말에 하던 생각이 맞습니다. 일기장에 수시 접수 기간 제가 쓴 내용을 그대로 인용한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뒤에 그러나 대학에 막상 와보니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으며 ‘와보니까 전공 앞에 다 같이 멍청하더라고요’하면서 농담하며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말하고자 했던 핵심 또한 뒷부분에 있었습니다. 대한민국 교육방송에서 일하는 배울 만큼 배우신 분들이, 상대방이 하는 말에 어디에 방점이 있는지를 파악하지 못하시지는 않았겠지요. 못하셨다면 그것도 문제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3. “1등부터 20등한테 야자교실을 따로 줬어요”
이 인터뷰는 방송에서 고등학교들이 입시 실적을 위해 상위권 학생들에게 특별대우를 해주며 학생들이 그 대열에 끼지 못하면 좌절감을 느낀다는 내용에 삽입되었습니다. 그러나 저 발언은 제 고등학교 친구관계에 대해 설명하던 와중에 지나가는 말로 잠깐 했던 말일 뿐 특별반에 대한 제 의견과는 상관이 전혀 없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속해있었던 야자반은 어떤 특혜도 없었으며 야자 교실이 맘에 안 들어서 자유롭게 특별반을 나가는 친구들도 많았을 정도로 속하지 못해서 좌절할만한 그룹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를 마치 제가 과도한 경쟁에 노출되었던 것처럼 교차편집 한 것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4. ebs는 저의 인터뷰 뿐만 아니라 ‘신입생들의 열의에 찬 모습을 담겠다’, ‘선배와의 건전한 교류를 담겠다’는 말로 허락을 맡고 상경경영대 새터 영상을 촬영해 가서는 “외고 마셔” “특목고 마셔” 와 같은 말도 안 되는 나레이션과 함께 편집하여 방송했습니다. 학생회 측에서 항의하자 “그림이 예뻐서 그랬다” 라고 말도 안 되는 해명을 했습니다.
설마 교육방송이라는 곳에서 이런 악의적인 편집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인터뷰는 작가가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으면 같은걸 다시 물어보고 은근하게 원하는 답을 끌어내는 등 거의 유도심문에 가까웠습니다. 저는 방송된 발언이 크게 자극적이지 않아 운 좋게 살아남았습니다만, 많은 친구들이 힘들어하고 당황해하고 있습니다. ebs의 이번 행태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악의적인 편집으로 인해 자신의 의도와 다른 발언이 방송됨으로서 출연 학생들과 소속되어있는 학교들이 직접적인 비난을 받고 있다는 점. 둘째, 대학에 존재하지도 않는 생소한 차별을 마치 사실인양 보도함으써 많은 학부모들과 청소년들에게 절망을 안겨줬으며 그로 인해 더 큰 경쟁으로 그들을 몰아넣을 가능성을 만든 점.
셋째,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교육방송이라는 매체에서 사실과 전혀 다른 내용을 사실인양 조작하여 보도했다는 점입니다.
해당 다큐의 ebs작가는 인터뷰 학생 중 한 명에게 전화하여 “편집이 그렇게 되었고, 그런 반응이 온 건 유감이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상대방의 언어사용에서 상대의 책임감을 느낄 수 있지요. 저는 제 과외생들에게 수동태를 설명할 때 “얘들아 유리병이 스스로 자기를 깰 수 있니? 깸을 당한거지 그치?”라고 설명합니다. 영상은 본인들이 편집을 ‘했지’ 자기 혼자 편집이 ‘되지’ 않았겠지요. 단순히 선의로 인터뷰에 응했다가 변을 본 학생들에게 사과하는 것으로 끝날 일이 아님은 물론이지만, 적어도, “우리가 편집을 그렇게 했고, 그런 비난을 받게 해서 미안하다”라고 말했어야 했습니다. 저는 방송에 나온 내용은 사실이 아니며 제 발언이 타인으로 인해 왜곡되고 조작되었다는 점을 확실히 알리기 위해, 그리고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임을 알리기 위해 이 글을 썼습니다.
끝으로, 제가 더 신중하지 못해 간접적으로 비난을 받게 된 제 친구들과 저의 공동체에 죄송합니다. 사실도 아닌 내용으로 인해 비난받고 폄하되고 있으나, 맹세코 저는 이들로부터 소중하고 행복한 기억만 받았습니다. 또한 제 어머니께 울면서 전화하신 어느 학부모님처럼, 다큐멘터리 내용으로 인해 받지 않아도 됐을 상처를 얻고 좌절하신 다른 모든 분들께도 죄송합니다. 잘못은 전적으로 ebs에 있다고 많은 분들이 격려해주셨습니다만, 그래도 제가 인터뷰 같은 거 안 했더라면 이런 일이 없지 않았을까 하는 죄책감에서 자유롭기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더 깊은 생각 끝에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