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황후이기 때문에...
기황후를 둘러싼 역사적 논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 고려 출신으로 원나라의 황후 자리까지 오른 그가 과연 애국자인지 매국노인지에 대한 답이 아직 내려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고려인으로서 원의 황후 자리까지 오른 면은 진취적으로 높이 사겠으나 이후 야욕에 휩싸여 도리어 고려를 공격했던 악행 역시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드라마 <기황후>는 역사적 논쟁이 아닌 고려 출신의 여인 황후 자리에 오르는 과정에 초점을 맞췄다. 기황후가 고려 여인이라는 기본 설정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졌다. 사실(事實)과 허구로 된 팩션임에도 역사 왜곡 논란이 지속되는 이유는 사실(史實)과 다른 등장인물 때문이다.
드라마에서 기황후는 낯선 이국의 황실에서 자신의 조국을 잊지 않으며 고려의 자긍심을 지키는 여인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고려사절요>에는 “기황후와 기철 4형제는 갖은 횡포를 일삼고 경쟁적으로 악행을 벌였다”며 기황후의 악랄함을 드러냈다. 기황후와 기철은 남매로 기자오의 자녀들이다. 막내 여동생이 원나라의 황후가 되자 기철은 대표적 친원파가 돼 동생만 믿고 권세를 휘둘렀다. ‘과연 기황후의 악랄함을 어떻게 드라마로 표현할 것인가.’ 상상력과 사실(史實)간격은 여기서부터 벌어진 셈이다.
기승냥이 연심을 품는 가공인물 왕유를 보자. 원래대로라면 고려의 28대 왕, 충혜가 등장해야 했다. 기록에 따르면 충혜왕은 주색에 빠져 계모와 신하의 부인을 겁탈하고, 눈물을 흘리는 여자를 철퇴로 죽이는 등 악행이란 악행은 다 일삼는 폭군이었다.
하지만 배우 주진모가 연기할 충혜왕은 현명하고 나랏일을 걱정하는 남자 주인공이다. 기승냥이 연심을 품을 만한 인품이다. 이러한 상상력은 촬영 전에 논란거리가 됐고 제작진은 충혜왕을 가상인물 왕유로 수정했다. 그리고 첫 화에 ‘실제 역사와 다르다’란 내용의 공지를 자막으로 내보냈다. 하지만 자막만으로 다소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있다. 이들은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는 제작진의 입장과 달리 “팩션이라도 역사의 근본은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드라마 <기황후>가 높은 관심을 받고 있기에 더욱이 사실에 근거해야 옳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으면 시청자에게 혼란을 준다는 이유에서다.
대다수 역사학자와 전문가는 “연구되지 않은 부분을 미디어에서 소개하는 것은 시청자 또는 국민에게 역사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는 부분으로 이는 긍정적”이라면서 “하지만 사료에 있는 것과 다른 묘사는 시청자들이 그대로 인식할 수 있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제작진이 자막으로라도 설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출처: 역사와 문화를 깨우는 글마루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