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어느 할아버지께서 타시는데 아이가 인사를 안하더군요.
인사성이 밝은 아이인데 왜 인사를 안하나 싶어서 인사하라고 시키고 저도 인사를 했습니다.
흘깃 눈으로 인사를 받는 듯 하더니 아이가 들고 있는 도너츠 봉투를 보고 그게 뭐냐고 해서
도너츠라고 했더니 그런걸 먹으니 그리 뚱뚱하다고 너랑 너 엄마는 너무 뚱뚱하니 덜 먹어야
하고 그게 사람의 근본이고 도리라고 한참을 떠들다 내리시내요.
멍하니 서있다 그래도 일단은 인사하자고 해서 안녕히 가시라 했는데 그 와중에도 기어이
한마디 보태시네요. 사람은 도리를 지켜야 하고 근본을 알아야 하니 그거 먹지 말고 살빼라고.
사실 저는 뚱뚱한 편이고 아이는 통통한 편입니다. 아이가 살이 찌게 된데는 수술이라는
아픈 사연이 있구요. 저도 사정이 있지만 그래도 전 제가 관리를 못해서 살이 찐거지만
그게 인간의 도리와 관련이 있나요?
아이가 움직일수 없는 상태로 몇달간 회복하느라 살이 붙었어요. 그래서 스스로 속이 상해
하는데 운동도 시키고 하면서 아주 서서히 빠지고는 있지만 그게 확 빠지지는 않더라구요.
구구절절 답하기도 싫었지만 뚱뚱하면 인간의 근본과 도리를 못지키는 것인지 정말 말문이
막혔습니다. 아무리 외모중심의 사회고 자기관리가 중요한 세상이지만 외모때문에
인간의 근본과 도리를 못지키는 인간이 되다니요.
아이에게 혹시 저 할아버지를 만난적이 있냐고 물으니 자기만 보면 그런답니다.
저희 라인에 저희 아이보다 조금더 통통한 여자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한테는 화내면서
말한다고 하더군요. 할아버지 보면 기분 나빠서 인사 안하는거였다는데 엄마가 시켜서
했다는데... 그런 할아버지도 나이드신 분이니 일단은 인사를 해라고 말했습니다만
뭔가 이겐 아니다 싶네요.
아이에게 사람따라 특히나 나이가 든 사람들은 아무 말이나 하는 사람들이 있고 생각없이
툭툭 말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런 말은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야 한다고 했더니
아이가 어른이 말하면 주의깊게 들으라고 하지 않았냐는데.. 또 말문이 턱 막하네요.
왜 나이를 먹으면 그렇게 아무 말이나 꼭 한마디씩은 뱉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걸까요?
대접을 해주면 대접받고 점잖게 있으면 나이를 두배로 먹는 것도 아니고... 하..
정말 씁쓸합니다. 제 면전에도 뚱뚱하니 인간의 도리와 근본을 못지키는 거라고 그렇게
역정을 내는데 아이가 혼자 있을 땐 얼마나 그랬을지..
감기걸려 밥 안먹는 동생 준다고 도너츠 사오다 봉변당한 큰애에겐 뭐라고 일러줘야 하는걸까요?
씁쓸하고 짜증나다가 그래... 나라도 곱게 늙자...쉼호흡하지만 속은 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