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 우연히 펼쳐 봤는데 앞에 1/3 읽는 동안 사실 좀 괴로웠어요.
자의식 과잉이 느껴져서 좀 괴로웠고.
열렬한 교육열을 가진 어머니에 대해 너무 솔직하게 묘사해서 쪼금 불편했고.
아버님이 개업의셨는데 그렇게 고학력에 안정적인 부를 쌓은 사람들이
그들만의 배타적인 써클을 맺는 것이 책에서 너무 자연스러운 거예요,
악의 없는 자연스러움.
하지만, 결과적으로 읽을 가치는 있었어요.
제가 음악에 흥미를 느껴 머릿속이 온통 음악으로만 가득차고 음악에 몰입해 가는 과정인데요,
중간부터 석교수 본인이 애착을 느꼈던 발레나 음악에 대한 묘사는 너무 좋더라고요,
자신은 어떻게 처음 몰입의 실마리를 찾게 되었는지,
약간 속물적인 관점을 가지신 어머니가 현실적인 이유로 제시해준 음악이나 발레가
어떻게 나중에 자기 안에서는 진짜 보석으로 변화하게 되는지, 그 과정이 너무 생생해요.
애착의 절정까지 갔다가 결국 부모님의 반대로 발레를 못하게 된 이후,
열심히 몰입하는 걸 두려워하게 되고 자기방어때문에 모든 걸 끝까지 밀어부치지 않고
대충대충하는 습관이 들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어요. 제가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요.
이분이 발레 예비학교에 있다가 아메리카 발레단의 입단을 코앞에 두고 딱 발레 그만두게 되는데,
너무 혼란스럽고 무기력하니까 긴 슬럼프를 겪는 동안 엄마와의 불화도 되게 심했어요,
너무 무기력한데 엄마도 본인도 처음엔 이유를 알수 없어 답답하고 복장 터지는 거죠.
그럴 때 사려깊은 선생님들이 조건없이 믿어주고 격려해 줘서 느긋이 기다려주고 그래서
결국 자기방어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는 묘사도 참 좋았고요.
엄마랑 싸운 얘기도 많이 나오고 너무 솔직해요.
( 10대 후반부터는 엄마의 영향력은 완전 약화되더라고요..)
남들이 보기엔 다 가진 사람처럼 보이지만,
극도의 내성성이나 무대공포증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고
에너지가 자기 안쪽으로 모이는 스타일이라, 명성을 쫓아가는게 아니라,
내부의 치열한 고민을 하다보니 그 자리까지 왔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26세에 이미 옥스퍼드에서 문학박사학위까지 받고, 저서 출판이란 무기까지 들고 귀국했는데,
자신은 시를 읽는 건 좋아하지만, 철저히 분석하는 것으로 행복을 느끼진 못한다는 걸 깨닫았대요.
그래서 좀더 현실적인 분야로 진로를 바꾸어요, 이루어 놓은 것을 모두 포기하고요.
( 물론 음악, 무용, 문학의 강인한 토대가 좀더 독특한 법학자로 만들어주긴 했겠지요.)
배움에 있어 어떻게 몰입이 진행되는지, 어떻게 배운 것들이 나중에 그물을 형성하는지
그런 것에 관심있는 분들에겐 유익할 거 같아요.
청소년기에 발레를 쉽게 이해하고 좋아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이미 초딩 때의 피아노, 바이얼린이란 토대가 있었기때문에 가능한거였고요.
발레를 좀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었던 이유가 어릴 때 독서광이었기 때문이예요.
이렇게 앞에 열심히 쌓아 놓은 것이 뒤에 분야의 든든한 토대가 되어요.
중요한 것, 이 분이 이렇게 예술하고 또 거기서 좌절하느라, 입시준비를 제대로 못했지만,
늦게 시작해도 빨리 흡수하고, 어쨌든 입학사정관이나 교수들이
자기를 받아들이게 만드는 유니크한 저력을 가지게 돼요.
미국이라 우리실정과는 조금 다르지만 ^^
이분의 결론은, 어릴 때 미치도록 흥분하고 몰입하는 경험을 아이에게 주는게 가장 좋은 교육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