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부모님이랑 등산을 다녀왔어요.
산에서 내려오는데 벤치 옆에 하얀 백구가 한마리 앉아있더라고요.
덩치는 큰데 되게 순해가지고, 좀 게으른 눈을 하고 느긋~허니
그냥 앉아서 사람들 구경하고 있었어요. 웃기기도 하고 귀여워가지고
산에서 먹다 남은 족발 살을 좀 줬더니 배도 안 고픈지 처언천히 느긋하게 먹더군요.
목에 끈은 메어있는데 근처에 주인인 거 같은 사람도 안 보이고
해서 뭐 근처 절에서 사는 갠가? 매점 갠가? 엄마랑 얘기하면서 개 한번씩 쓰다듬고 그러고 있었어요.
개가 정말 순하다 못해 점잖더라고요. 처음 보는 사람이 만지는데도 그냥 가만~히.
근데 역시 하산하는 듯하던 아저씨들 두세 분 무리가 저희가 그러고 있는 걸 보더니
그 중 한분이 다가오셔서 "어? 뭐예요? 들개예요?" 그러는거예요.
그래서 잘 모르겠다, 그랬더니 아저씨가 순간적으로 다가오더니 개 목덜미를 쥐려 하면서
"그럼 끌고 가야겠다" 그러는거예요.
그래서 저희 엄마랑 제가 깜짝 놀라서
어머 아저씨, 무슨 개를 끌고 가요, 됐어요, 저리 가시라고
이 개 근처 절에서 키우는 개예요. 그랬더니
우물쭈물 하면서 "아니 들개라고 하니까.." 그러면서
무슨 주인없는개=잡아먹는거=당연히 자기의 권리라는 듯이 막 계속 끌고 가려는거예요.
저희가 너무 놀라서 됐다고 아저씨 무슨 소리 하시냐고 막 기겁을 해서
결국 그 일행중 한명이 야 됐다고 그냥 가자고 말려서 가던 길 가셨지만..
물론 개가 커서 억지로 끌고 가려고 한다면야 물 수도 있고 도망갈 수도 있고 하겠지만
원체 느긋~허니 순한 개고 또 아저씨가 워낙에 덩치도 좋고 좀 뭐랄까 얼굴에 혈기가 벌개가지고
여차하면 몽둥이 들고 개 때려죽이고도 남을 거 같은, 그런 인상이었거든요.
정말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엄마랑 저랑.. 어떻게 그렇게 사람이 백여명 가까이 드글드글한
대낮의 국립공원 한 가운데에서 그냥 벤치가에 앉아있는 개를 잡아먹겠다고 끌고 가려고 하나요.
저로 말할 거 같으면 평상시 솔직히 보신탕에 큰 거부감도 없고,
제가 일부러 찾아 다니면서 먹지는 않지만 우리나라 가난한 슬픈 역사에서
불가피하게 가까이에 있는 개가 단백질 공급원으로 식용이 되기 시작한 거,
그래서 자랑스러운 문화는 아니지만 남들이 욕할 수 있는 무슨 광적인 식도락 풍습도 아니란 생각에
남 먹는 거 욕하는 사람들은 안 좋아하거든요. 외국과 비교되는 것도 불공평하다고 생각하고요.
그렇지만, 그건 정말 아니었어요.
등산 오는 사람들 중에 걸걸한 중년 아저씨들이 많아서 그런지
전에도 한번 엄마랑 산에 가는데 정말 바로 옆에서 한 아저씨가
개 잡는 방법, 개의 맛(?)에 대해서 한 2,30분을 주구장창 떠들어가지고
듣다 못해 엄마가 그 아저씨보고 '죄송한데 개 잡고 이런 얘긴 정말 듣고 싶지 않다'고 양해 구했었거든요.
막 정신적으로 고문당하는 기분 있죠. 말을 들으면 어쩔 수 없이 그 장면이 머리에 상으로 떠오르잖아요.
개를 생각만해도 침이 고인다는 둥, 그 일행부터도 개고기 안 먹는다는데
"개 안 잡수세요? 안 잡솨봤어요??" 해가면서 내내 개 먹는 얘기.
어휴. 아무튼 그 개 채가려던 아저씨는 돌아갔는데도 기분이 너무 안 좋고 불안해서
개보고 너 저리 가, 여기 있지 말고 저리 가, 막 쫓았는데도
개가 그냥 별 개의치 않고 계속 그 자리에 있더라고요. 다리쪽에 흉도 있고 전체적으로 지저분한게
그리 쉽게 살아온(?) 녀석도 아닌 거 같은데 너무 무방비상태인 거 아닌지.
짐승들이 사람을 경계하는 것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대요. 너무 순한 것도 안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