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다리고기다리던, 돈 안쓰고 아이와 집에서 놀기, 글을 시작합니다. ^__^
네살박이 코난군도 그렇지만, 아이들은 엄마 마음을 몰라주고, 거금을 들여 사준 장난감이나 책을 안가지고 노는 일이 많지요? 또 반대로, 당장이라도 쓰레기통에 버리고싶은 허접쓰레기를 신주단지 모시듯 소중하게 가지고 놀기도 하구요.
그래서 저는 가능하면 장난감을 사주기 보다는 집에 있는 물건들을 가지고 놀게 해요. 물론 아이가 종일반 어린이집에 다니기 때문에 더욱 장난감을 안사주게 되는 이유도 있구요. 집에 있는 시간이라봤자 저녁 시간과 주말 동안 뿐인데, 굳이 비싼 장난감 아니어도 아빠 엄마랑 즐겁게 놀기만 하면 되니까요.
사실, 집안 곳곳을 아이의 눈으로 돌아보면 가지고 놀 수 있는 재미난 물건들이 참 많아요.
통 아저씨 (할아버지던가요?) 도 아마 어릴 적에 요렇게 놀다가 오늘날의 그가 된 것 아닐까요?
인형 정리해서 넣으라고 사준 통인데, 인형을 하나 하나 다 꺼내더니만 지가 들어가려고 하지 뭐예요? 그래서 앉으라고 하고 제가 통을 덮어 씌워주었어요. 어찌나 재미있어 하는지...
종이 상자에 골프 티를 가지고 망치질 하고 있는 모습이예요.
코난군이 들고 있는 건 장난감 망치이지만, 작은 진짜 망치를 주어도 괜찮아요. 엄마가 옆에서 함께 놀이하고 있다면요.
아이들이 물건을 망가뜨리는 사고 (가위로 책을 난도질 한다든지, 망치로 핸드폰을 내려친다든지) 는 대부분 어른이 제대로 감독을 하지 못해서 생겨요.
제대로 사용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옆에서 도와주고 지켜봐 주기만 하면, 아이들은 어른의 물건을 잘 가지고 놀 수 있답니다.
진짜 망치를 사용하게 하면 아이들 손과 팔 근육 발달에 도움이 되어요.
망치질만 계속하면 재미가 없어질 거예요 그죠? 놀이에 적절한 변형을 주어야 해요.
문득 종이 상자 안쪽이 궁금해져서 뒤집어보았어요.
또다른 망치질의 유혹...
못을 다 빼고나니 구멍이 뽕뽕 뚤린 상자 뚜껑을 얼굴에 쓰고 "로봇" 이라며 즐거워 했어요.
이번엔 자리를 옮겨 주방입니다.
냉장고에서 놀 거리를 하나하나 꺼내는 동안 호기심을 누르지 못하고 코난군이 기어이 가장 좋아하는 당근을 집어들었습니다.
그릇에 시럽, 샐러드 드레싱, 머스타드 소스, 잼 등을 담게 합니다.
뚜껑을 열고 닫는 것, 어떤 맛인지 손가락으로 찍어 먹어보는 것, 그러다가 흘리는 것, 이 모든 것이 놀이의 중요한 과정이므로 아이가 직접 하게 합니다.
엄마는 옆에서 거들 뿐...
손에 쥐기 좋게 자른 채소를 각종 소스에 담갔다가 찍기 놀이를 하는 거예요.
오늘 놀이의 목표는 각기 다른 채소의 질감을 손으로 느껴보고, 소스의 냄새와 맛을 경험하는 것이지, 멋진 미술작품을 창작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사실, 시럽으로 찍으면 채소에 새긴 무늬가 잘 살아나게 찍히지도 않아요.
그래서 아까운 새 종이를 쓰지 않고, 버리려고 모아둔 전단지를 내주었어요.
채소는 물에 헹구면 언제라도 식재료로 다시 쓸 수 있고...
그래서 지금까지 놀이의 재료비는 130원 (찍어먹고 버린 소스값... 제 맘대로 책정했어유...)
다 놀았으면 치우는 것도 놀이랍니다.
물을 틀고 그릇을 헹구는 척하면서 물놀이를 즐기고 있는 코난군이예요.
이번엔 무슨 놀이일까요?
비닐 봉다리에 주방용품이 가득 담겨있군요.
찬장과 씽크대 서랍을 하나 하나 열어서 코난군에게 가지고 놀고 싶은 것을 골라 담게 했어요. 엄마는 옆에서 아닌 척 하면서 안깨지고 가볍고 설겆이 하기 편한 놈으로 골라 담게끔 배후조종을 했을 뿐...
그리고 쌀통 대 방출, 파스타 대 개방.
스푼으로 쌀을 떠서 통에 담기...
집게로 파스타 옮기기...
거품기로 젓기, 컵에서 통으로 옮기기...
당신이 원하는 그 무엇이든지...
눈치 채셨는지 모르겠지만, 커다란 쌀통은 이미 제자리로 몰래 돌아갔어요. 파스타도 필요한 만큼만 남기고 집어넣었구요.
아이가 놀이에 집중한 동안에 엄마는 놀이를 보조해 주기만 하면서, 뒷정리를 미리 살금살금 해두면, 아이 입장에서는 '하고픈대로 실컷 놀았다' 하는 마음이 들고, 엄마는 '내가 이건 왜 시작해가지고... 궁시렁 궁시렁' 하는 일 없이 간편하게 뒷정리를 할 수가 있어요.
반찬통 뚜껑 여닫기도 눈과 손의 협응력을 키우는데 아주 좋은 활동입니다.
각기 다른 모양의 파스타를 관찰하면서 도형을 인식하게 되고, 투병한 컵에 쌀이 얼마만큼 들어있는지 비교하면서 대소비교 수개념을 익힙니다.
어디 그 뿐인가요? '노란 컵에 담아봐', '거품기로 저으면 되겠네', '저 쪽에 있어', '여기에 놓고', 등등의 대화를 통해서 어휘력을 신장시키고, 공간지각능력도 키웁니다.
무슨무슨 비싸고 좋다는 교재 교구의 선전문구 같지요?
그냥... 단지 다른 거 하나는... 돈이 하나도 안든다는 거...
단지 그거 하나... ^__^
파스타를 가지고 놀다가 문득 생각이 떠올라서 운동화 끈을 꺼내주었어요.
이렇게 구슬꿰기 놀이를 하면 좋겠더라구요.
이것도 역시 눈과 손의 협응력, 수개념, 어휘력... 에고 이제 그만 할께요 ^__^
오모낫, 코난군의 발달 상황은 아직 이걸 할 준비가 덜 된 거예요.
한 번의 손길로 꿰기엔 파스타가 너무 길었삼...
에미가 도와주마...
운동화 끈 한 쪽에 이쑤시개를 대고 테이프로 발라서 붙여주고 있는데... 코난군이 자기도 할 줄 안다면서 테이프를 이 따구로 발라놓고 있지 뭐예요... ㅋㅋㅋ
그래도 여차저차하여 이렇게 장난감 수선 완성.
요기서 돌발퀴즈!
아이가 놀이할 때 엄마는 무엇을 하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1) 우아하게 커피를 마신다. 엄마는 소중하니까.
2) 친정 엄마와 전화 수다를 한 판하며 아이의 놀이하는 모습을 생중계 한다. 난 효녀니까 우흣~
3) 아이에게 사사건건 지시하고 감독 통제한다. 안그러면 아이가 집을 어질르거나 물건을 망가뜨리니까. 난 개념엄마!
4) 놀이에 장애가 될만한 요소를 없애주고, 놀이가 발전해감에 따라 새로운 놀이감이나 아이디어를 더해준다. 가끔은 사진을 찍어서 이 다음에 82쿡에 올리기 위해 저장해 둔다.
정답 4번을 고르셨다면 당신은 지금까지 이 글을 매우 성실하게 읽으셨습니다. 상으로 덕담 한 마디: 이토록 눈부실지어다!
3번을 고르신 분은 완벽주의자 성향을 가지셨고 에이형일 확률이... 쿨럭...
이건 뭐... 심리분석 퀴즈도 아니고...
좌우당간에 중요한 것은, 아이가 놀이에 집중했다고 해서 혼자 놀게 두어도 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늘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놀이가 더 재미있게 발전하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는 조만간 놀던 것을 던져두고 "엄마~" 하고 달려와 놀아달라고 치댈 확률 93 퍼센트!
코난군은 위의 파스타 구슬꿰기에 재미를 붙이더니, 그것이 <비암놀이>로 바뀌고, <비암을 밟은 사나이가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는 놀이>로, 또 <비암을 잡아다가 애완동물로 기르는 놀이>로, 그렇게 발전시켰습니다...만, 글이 너무 길어져서 사진은 생략...할께요.
갖고 놀던 파스타는 한 번 헹궈서 진짜 파스타를 만들어 먹은 이야기도 생략하구요...
놀이의 마무리는 요걸로다가...
아이가 두어시간 신나게 놀았다면 휴식시간이 필요해요.
하지만 "어멋, 내가 넘 많이 놀았나봐, 쵸큼 쉬어야징, 난 소중하니까" 하고 지가 알아서 쉬는 어린이는 이 세상에 0.02 퍼센트!
손톱을 깎아 주거나 귀를 후벼주면, 아이는 엄마품에서 엄마 냄새를 맡으며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쉬게 되지요.
마침 주말이라 손발톱을 깎아주는 날이기도 하네요.
어린이집에서 놀다보면 긴 손톱에 긁혀서 얼굴에 상처나는 일이 가끔 있지요? 모두가 주말에 아이 손톱을 깎아주기만 하면 그런 일은 줄어들텐데...
주말에 손톱깎기 캠페인이라도 했으면 좋겠어요.
자라나는 손톱과 고 작은 귓구멍에서 나온 귀지를 보면 슬그머니 웃음이 나고, 코난군이 이렇게 또 자랐구나 하고 흐뭇한 마음이 듭니다.
모두들 또 좋은 한 주일 시작하시고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