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육아&교육

내 아이를 더 밝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
정보교환과 질문의 장

나도 한때는 처녀였다

| 조회수 : 2,360 | 추천수 : 231
작성일 : 2010-07-05 17:57:02
마을에 이르자 해녀의집이 보였다. 이제 스웨터를 벗을 때도 됐는데 한 할머니가 스웨터를 입고 서 계신다.
“안녕하세요!”
아이와 내가 함께 큰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우리는 올레길을 걸으면서 꼬박꼬박 인사를 했다.
올레꾼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에 인사, 제주 어른들을 만나면 감사의 인사.
“이리 좀 와봐.”
할머니가 손짓으로 우리를 불러세웠다.
“인사를 해줘 고마워서…….”
할머니는 이고 있던 바구니를 내려 이리저리 뒤지더니 밀감 두 개를 꺼내 내미셨다.
밀감농사를 짓는 사람이 할머니 먹으라고 준 건데 우리더러 먹으란다.
받고 보니 한 개는 물러서 먹을 수가 없다. 그래도 모른 척하고 껍질을 까서
맛있는 척하고 먹으려니 절로 얼굴이 찌그러진다.
“그거 못 먹겠는데.”
눈썰미가 좋으신 할머니다. 얼른 내 손에서 빼앗아 멀리 내던지신다.
에구, 올레길 걸을 때는 귤껍질 하나도 길가에 안 버리는데 동네 할머니가 마구 버리시다니!
아이와 나는 서로 얼굴을 보며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할머니는 해녀라고 했다.
물에 들어가려다 몸살기가 있어 그냥 집에 들어가는 길에 우리가 크게 인사를
해줘서 너무 고마웠단다. 보통은 그냥 지나간다며.
“나도 한때는 처녀였어. 나도 한때는 처녀였다고. 나 불쌍한 여자야.
나 스무 살에 시집와서 스물한 살에 우리 아들 낳았어. 남편은 다른 여자한테 가고…….”
해녀일을 해서 아들을 키웠다는 할머니.
어느새 할머니가 내 손을 잡고, 아이 손을 잡고 마른 눈물을 흘리신다.
일흔도 훨씬 넘은 할머니의 마른 눈물은 우리를 당황시켰다.
아이는 어찌할 줄 모르고 내 얼굴만 쳐다본다. 할머니는 노래 한 자락도 불러제꼈다.
무슨 노래인가, 나는 알지 못한다. 제주도 사투리까지 섞여 있어 사실 말 알아듣는 것도 쉽지 않다.
할머니를 뒤로 하고 걷는데 아이가 문득 말했다.
“엄마, 근데 누구나 다 한때는 처녀 아녜요?”
“그러게. 엄마도 한때는 처녀였지.”
처녀, 라는 낱말이 아주 낯선 단어처럼 느껴졌다.
나도 한때는 처녀였다.
할머니의 마른 눈물과 함께 처녀라는 단어를 생각하며 얼마를 걷고 있는데
‘어여어여’, 하는 소리가 났다.
뒤돌아보니 할머니가 정신없이 뛰어오고 계셨다.
우리는 깜짝 놀라 뛰어갔다.
“이거, 내 주머니에 있는 거 전부야. 가다가 이걸로 맛있는 거 사 먹어. 우리 예쁜 애기!”
할머니는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 지폐 두 장을 재영이 손에 쥐어줬다.
그 돈을 차마 받을 수 없어 재영이는 엉거주춤하고,
나는 나대로 됐다고 할머니 손을 뿌리쳤지만 할머니의 뜻을
꺾을 수 없었다.
“감사합니다, 할머니!”
우리가 큰소리로 인사를 하자 할머니는 우리보다 먼저 뒤돌아 노래를 부르시며 우리를 따라
뛰어왔던 길을 되돌아가셨다.
스무 살 처녀가 결혼을 해 이듬해 아들 하나 낳고 물질을 하며 살아온 평생의 세월이 할머
니 어깨에 고스란히 올라가 있었다. 저 작은 어깨, 저 작은 몸. 할머니는 덩실거리며 길을
걷는다. 길에서 만난 아이가 당신에게 인사를 한 것이, 길에서 만난 당신 며느리 같은 여자
가 이야기를 들어준 것이 즐거운 할머니. 할머니는 몸살기가 가시면 다시 물에 들어가시겠
지.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
    '10.7.7 6:21 PM

    마져요. 할머니들은 인사하면 굉장히 좋아하시더라구요. 동네에서도. 한편으로 좀 씁쓸하기도 해요. 어른께 인사하는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인데 말이죠. 하긴 요새는 학교에 가도 자기가 아는 선생님 아니면 인사도 안하더군요. 학교에서 조차.....
    "나도 한때는 처녀였다가"가 눈에 확들어와서 몇자 적습니다. 저도 한때는 처녀였거든요 ^^

  • 2. 올리브나무사이
    '10.7.7 6:31 PM

    그렇지요, 우리 모두 한때는 처녀였지요.^^ 재미있는 할머니였답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추천
5560 애들 간단히 간식으로 챙겨주기 좋네요 ㅎㅎ 나약꼬리 2024.10.24 650 0
5559 이화여대 최근 정보 achieve 2024.06.20 2,611 0
5558 이대 입결에 대한 오정보가 많아 바로잡고자 합니다. achieve 2024.01.22 4,050 0
5557 국토부에서 드디어 실행했습니다 층간소음저감매트 지원!! 2 맘키매트 2023.08.05 4,809 0
5556 [초등학생 정보] 무료 시골 한달살기 괴산 아이유학 프로젝트 너.. 2 julyjuly89 2023.07.03 3,882 0
5555 사주 명리학 강의 / 십천간의 순서증명 겨울이야기 2023.06.10 3,015 0
5554 층간소음매트 아파트 시공후기 1 아름다운부자 2023.06.05 3,696 0
5553 [영어공부] 대마초, 마리화나에 대해: 알아야 피할 수 있습니다.. Chiro 2023.03.06 3,416 0
5552 [영어공부] 중요 이디엄 -관용표현-50개 모음 1 Chiro 2023.02.13 3,345 0
5551 사탐 1타강사 이지영샘 jtbc 출연 실버정 2022.11.11 3,975 0
5550 미국 초등학교 5학년의 영단어 테스트 구경하세요 2 Chiro 2022.08.04 8,194 0
5549 ????영어표현법 50 모음**틀어놓고 귀로만 공부 가능**ep.. 1 Chiro 2022.07.20 6,153 0
5548 『우리아이를 위한 좋은 공부습관 만들기』특별 강연 개최 날으는비글 2022.07.13 5,630 0
5547 [영어속담] 미국에서 많이 쓰이는 속담 모음 Chiro 2022.07.12 6,475 0
5546 미국에서 정말 많이 쓰이는 표현들-책에서는 못배우는 표현들 2 Chiro 2022.06.29 6,422 0
5545 애들 보여주기 좋은 애니메이션 추천이요 나약꼬리 2022.05.06 8,345 0
5544 『우리아이를 위한 집중의 힘』을 주제로 하는 특별 무료 강연 신.. 날으는비글 2022.04.26 7,927 0
5543 이음부모교실 오픈합니다. 정영인 2022.03.09 8,970 0
5542 학생들이 제일 어렵다하는 소금물 농도 문제 풀어주는 유튜브 소개.. 3 앨리 2022.03.07 10,104 0
5541 서울 거주하는 양육자 대상 무료 원예치유 키트 신청하세요 나는새댁 2021.08.06 9,922 0
5540 "초등학생부터 시작하는 주식투자" 출간되었어요.. 2 지은사랑 2021.05.21 10,706 0
5539 아이들이 좋아할 재밌고 유익한 자연과학 유튜브 있어요! 1 러키 2021.01.29 10,911 0
5538 중학생 핸드폰 어떻게 해야할가요? 3 오늘을열심히 2020.12.12 12,334 0
5537 e학습터 샬로미 2020.08.25 16,012 0
5536 중2 아들 졸음 2 그대로좋아 2020.07.23 13,792 0
1 2 3 4 5 6 7 8 9 10 >>